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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baikkj

 

 나는 사계절이 있는 캐나다를 좋아한다. 이곳에 와서 커다란 문제없이 계절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조국의 향수를 잊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캐나다의 여름을 좋아한다. 한국처럼 장마철이 없는 이곳 여름은 따갑게 내리쬐는 열 자체가 긴 겨울 후에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아침에 닫혀있던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고 여름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부엌에서 갓 뽑아낸 아침 커피향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곳은 한국과 달라서 긴 겨울 후 봄을 느끼기도 전에 짧은 여름이 찾아오지만 6월부터 7월이 가장 뜨거운 시기이다. 


 잔디가 파릇파릇 해질 때 봄은 가고 강렬한 햇볕이 우리 몸에 와 닿는 즐거움. 모든 생물이 왕성하게 숨쉬고 자라는 이때, 농부들이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면서 봄에 뿌려 가꾸어 놓은 수고의 결과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장거리 여행길에 오르는 흥분감과 아무 곳에서나 쉴 수 있고, 지붕이 없어도, 거주지가 없어도, 고민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모험의 계절이다. 이곳에 살면서 가족과 장거리 휴가를 떠날 때 여름을 택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플로리다에 위치한 원더랜드와 엡코센터 구경도 땀 흘리면서 여름에 이루어졌다. 


 내가 남편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데이트를 하던 시절도 생물이 무르익은 검푸른 여름 일기였다. 남편이 타고 다녔던 다갈색 파리젠은 우리의 발이 되어서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들을 찾아서 한없이 달리던 시절도, 미래의 장모님이 될 어머님께 환심을 사기위해 나이아가라 폭포 돌담 곁에서 정중하게 카메라로 어머님의 모습을 담아 두었던 때도 여름이었다.


 그런데 여름엔 두려움도 함께 온다. 지구의 몸부림의 모습들이 더운 일기와 함께 나타나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상기온에서 몰려오는 회오리 태풍,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물 사태, 이곳 저곳에서 원인모를 산불들로 인한 자연과 인명 피해는 산들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이어진다.


 잊지 못할 어린 시절 조국에서 보아왔던 젊은이들의 피 끓는 민주항쟁 운동도, 6.25동란도 추운 겨울이 아닌 땀 흘리는 여름에 일어났다. 


 그러나 여름은 모든 생물에게 왕성한 시기다. 에너지가 넘쳐 어딘가 소모할 요소를 찾아서 쏟아내야만 하는, 그래서 하루의 활동량은 일년 중 어떤 시기보다도 많고, 수면부족을 경험하는 계절이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낮 시간이 가장 길기 때문에 즐거움도 슬픔도 모두가 긴 하루이다.


 젊은 시절 에어컨이 없는 병원에서 혼신을 다해 다양한 환자들을 간호할 때 감당해야만 했던 그 많은 땀 흘림, 입은 유니폼이 땀에 젖어 내 몸을 휘감던 계절도 여름에만 체험했던 유산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에어콘이 없어 찜통 같은 방에서 밤잠을 뒤척이던 시절은 지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생에 가슴깊이 남을 나만의 귀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때 나는 무더운 여름이 싫었다. 그러나 요즈음 의학자들이 말하는 비타민D를 흠뻑 받을 수 있는 시기도 태양과 가장 가까이 만나는 여름이란 계절이다. 모든 생물에게 부여하는 혜택은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 자연을 최대로 가꾸어서 도시 곳곳에 녹화 작업을 해놓은 이 땅에서 자연을 즐기고, 한 시민으로서 나의 몫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게 나의 의무이다. 반면 뜨거운 여름철만 일년 내내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즐기는 사계절에서 맛보는 기쁨은 없으리라! 


 이곳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여름 음식 또한 다양하다.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물냉면, 오이냉채, 팥빙수, 시원한 냉커피 등의 음식을 생각하면 열기로 찬 가슴속에 시원함이 느껴온다. 


 반면 겨울철만 있는 곳에 사는 북극의 원주민들은 뜨거운 날씨를 평생 동안 한번 경험해보지 못한 채, 태어나면서 입기 시작한 두꺼운 털옷을 평생 벗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곳에 사는 나는 철마다 즐기는 다양한 음식과 의복, 그리고 여행길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중의 하나이다. 내가 선택한 이 땅에서 사계절을 경험하고 있으니, 어려운 이민 삶에서 큰 부분의 원동력과 신체적 적응에도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삶의 변화를 만들 수 있고, 새로운 계절의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변화에 삶의 지루함도 덜어주는 사계절에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여름동안 한번쯤은 반나체로 나의 팔등신을 노출할 수 있는 이 계절이 내 마음을 젊고 기쁘게 만든다. 


 여름은 자연의 생물들이 완성을 향해서 가는 시기이기에 다가올 긴 겨울을 떠올리며 마냥 여름밤 하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잠들고 싶다. (201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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