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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baikkj

 

 1983년 우리가 이 집에 이사 온 일년 후에 ‘신디’라는 3살짜리 치와와 강아지 한 마리가 양녀로 들어왔다. 그 사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성당을 통해서 오랫동안 알고 있고, 또 우리와 인연을 맺은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다. 오랜만에 인사차 하는 전화에 자기 집에 멕시칸 종의 강아지가 한마리가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우리에게 2년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는 이유를 묻지 않고 그 집으로 달려가서 정신적으로 불안해하는 어린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 이 강아지는 사람을 피하고 도망 다녔다. 그리고는 후들후들 떠는 게 첫 증상이었다. 사람 같으면 몹시 정신적 학대로 심한 상처를 받은 그런 정신 불안증에서 온 증상들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옮겨진 이 개는 가는 곳마다 똥, 오줌을 정신없이 쏟아놓고 이리저리 숨어다니며 실수를 거침없이 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피해 다녔다.


 우리 아이들이 십대로 들어가던 연령 이었는데 이 개는 이미 아이들에 대해서 방패막을 치고 있었다. 이유가 어쨌든 누구에게도 신뢰를 잃은 상태였고 내가 안아주면 무릎에서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정신적 불안증을 보아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학대에서 오는 것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 할 수 있는 일은 신디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사람처럼 많이 사랑을 보여주고, 안아 주고 자기를 해치지 않고 따뜻하게 해줌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집안 카펫에 여기저기 싸고 흘리고 다니는 대, 소변이 커다란 문제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 휴가를 10일간 신청하고 신디를 가족으로 만들기 위한 훈련으로 들어갔다.


 나는 매일 하루하루 일정을 짜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2시간마다 소변을 밖에서 보게 하는 훈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디, 피 피” 라는 언어를 써서 개가 무엇 때문에 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이 매일 계속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니 신디는 어느 정도 알아듣기 시작했다. 


 밤에는 훈련이 끝날 때까지 세탁기가 있는 1층 방에서 잠을 재웠는데 그것이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였다. 왜냐하면 밤이면 우리 곁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밤마다 문을 두발로 긁어서 발톱 밑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문에 발라놓은 피를 제거하는 일도 나에게는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만약에 내가 중단하면 신디는 훈련을 끝마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일간의 훈련이 끝나면서 우리와 언어가 소통되고 칭찬받는 일이 계속되면서 신디는 우리식구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우리와 한 방에 준비해놓은 자기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점점 우리의 노력의 대가가 신디의 신뢰로 보답 되면서 그녀와 가족간의 관계는 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신디는 입안에서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빨이 썩어가고 있었다. 전 주인이 개음식이 아닌 양념 든 음식을 먹임으로서 생긴 질환이었다. 우선해야 할일은 개를 수의사한테 데려가는 일이었다. 제일 먼저 수의사가 하는 말이 이빨 6개를 제거해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개를 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를 받은 후에 데리러 갔더니 입원비를 포함한 거금의 치료비를 내야했다. 일년이 지나서 같은 문제로 결국 나머지 이빨 모두를 제거하고 나니 어린 할머니가 되었고 그래도 암컷이라고 매달 치르는 주기는 잊지 않고 찾아왔다. 


 신디가 우리식구가 되면서 일거리가 많이 생겼다. 음식은 내손을 거처야 먹게 되고, 신디의 털로 인한 집안청소, 매주 목욕시키는 일, 발톱을 깎아주는 일, 산보하는 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예방접종 하는 일 등으로 더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 


 대신 신디는 우리 식구에게 정서적으로 즐거움을 줘 마음속에 지금까지 기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들이 피아노를 치면 어디선가 달려와서 의자 위에 올라가 박자에 맞추어서 머리를 치켜들고 노래를 함께 잘 불렀다. 이렇게 아들하고 친구가 되어갔다.


 이상한 광경은 어릴 때 자기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기억하고 슬그머니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신디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힘들었던 일들을 사람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좋아서 온갖 재롱을 다부리고 혓바닥은 한자나 빼고서 자기가 얼마나 외로웠는지의 심정을 갖은 표현으로 나타낸다. 그 모습들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 거린다. 내 일거일동에 참여하고 저녁식사 후에 가족실에 와서 앉으면 반드시 내 무릎은 그녀의 안식처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세월 사랑을 나누었다. 신디가 우리식구가 된지 10년이 지난 후 수명이 다 되어 3일간을 앓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전날 밤 자기가 떠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부부를 쳐다보고 꼭 할 말이 있다는 듯 목을 빼서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정말 아무도 믿지 못할 이 행동을 남편과 내가 함께 지켜보았으니 신디가 우리에게 주고 간 사랑의 고백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그날 밤 신디는 나의 품에서 눈을 감았고, 동물병원에서 화장 되었다. 신디는 우리와 잠깐의 약속이 아닌 그토록 긴 세월의 인연을 끝맺었다. 지금도 가족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신디. 우리 딸과 아들이 보내오는 카드 속에 잊지 못할 양녀로 태어나 있다. (201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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