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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정?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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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 한국사회에는 하버드대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 교수가 쓴, 'JUSTICE(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었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생들이 꼽은 명품강의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센델 교수는 이 책에서 정의, 공동선, 시민의 의미 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옳고 그름은 무엇이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는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키워드로 ▷복지의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를 꼽았다. 저자는 복지의 극대화를 주장했던 공리주의자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표적으로, 제러미 벤덤이다. 벤덤은 행복의 극대화, 즉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 보다 많게 하는 데 도덕의 최고 원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센델 교수는 과연 모든 삶의 가치를 돈으로, 비용/편익 분석으로 수치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제기하며 공리주의의 허점을 공박한다. 

 센델 교수는 이어 '자유'라는 개념을 통해 정의를 이해한 사례로, 독일의 철학자 이매뉴얼 칸트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를 등장시킨다. 칸트는 인간 자체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라고 가르쳤다. 인간의 의지가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자신이 지배될 때만이 나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공동체의 목적은 행복이며, 여러 사회제도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센델 교수는 당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큰 기대를 보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공감하는 듯 이야기를 풀었다.

 최근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슈 중 하나는 '정의와 공정'이다. 올바른 정의구현을 통해 무너진 한국사회를 바로 세우자는 움직임이다. 이는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과정에서 크게 불거졌다. 그의 자녀가 이른바 '부모 찬스'를 이용해 의과대학에 합격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어느 지방대학의 표창장을 둘러싼 의혹은 70여 곳을 압수수색하는 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이런 사태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버무려지면서 20~30대 젊은층이 문재인 정권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정의'라는 이슈는 오는 3월9일 실시되는 한국 대선판에도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맞서다 사퇴한 검찰총장이 정치권으로 진입한지 불과 몇 개 월 만에 야당 대선 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의 사도처럼 추앙을 받으며 급부상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센델 교수와의 온라인 인터뷰를 발 빠르게 성사시켰다.

 마이클 센델 교수는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여러 키워드를 거론했지만, 단언컨대 복지든, 자유든, 미덕이든, 어떤 측면을 보더라도 인류 역사에서 정의가 완벽하게 실현된 사회는 없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도 여러 사례를 나열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단편적이고 지엽적이다. 혼돈의 현대사회가 콕 찍어 본받을 만큼 정의가 구현된 시대나 정치체제는 찾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어떤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정의와 공정의 실현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후보 검증과정에서 그들의 흠결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만 타인을 향해 들이댔던 잣대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원칙이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와 공정이란 단어 속에는 기본개념, 다시 말해 정의의 기준조차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조국 사태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30대의 젊은 야당대표는 후보 부인의 각종 경력 위조 의혹에 대해 "결혼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방어막부터 쳤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학교폭력 의혹 만으로도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력까지 마감하는 것이 한국 시민들의 기준점이다. 조자룡 헌 칼 쓰듯 정의와 공정이란 단어를 아무 때나 마구 뱉지만 권력을 탐하는 그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훨씬 정의롭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눈여겨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었던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은 정의가 실종됐던 대표적인 시대다.

 오해 마시라. 한국 선거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을 짧게 규정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로마서 3장). 

이는 양심과 도덕적 진보를 향한 인간의 열망조차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좀 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체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죄에 젖어버린 인간의 뿌리 깊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게 성경의 관점이다.

 표창장 때문에 불같이 들고 일어나 정부를 비판하던 서울의 소위 명문대학생들이 그것보다 더 추악한 일에는 입을 닫고 있다. 내 앞길에 손해가 될 수 있고, 나와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반칙을 저질러 이익을 취한다면 목숨을 내걸고라도 덤벼 바로잡고 싶어하지만 나와 관계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기와 위조, 불법 탈법이라면 눈을 감고 외면해 버리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갖고 있는 정의와 공정의 잣대이다.

 심지어 가장 공정하게 공권력을 집행해야 할 수사기관조차도 선택적 정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코로나19 방역상황을 보자. 거리두기 등 고삐를 죄면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이다. 학생들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방역패스를 포기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하지만 방역규정을 완화하면 중증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고 의료진의 희생도 커진다. 

 이렇듯 각자가 처한 삶의 영역에 따라 요구하는 정의는 천차만별이다.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는 기준점은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잣대에 따라 원하는 정의가 달라지는데 무슨 수로 그것을 이뤄낼 것인가.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가 되더라도 그것 자체로 정의와 공정의 실현이라는 인간 공동체의 정치적 목표를 완벽하게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저 각자가 원하는 정의와 공정을 누군가는 더 많이 챙기고, 어떤 이들은 더 많이 빼앗길 뿐이다. 정치는 이런 불합리를 최대한 조정하는 역할이라도 맡아야 하지만 정치인들이 오히려 정의를 앞장서 무너뜨리는 게 현실이다. 갈수록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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