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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목사)에게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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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는 하버드대 출신의 유명 승려 때문에 한바탕 시끄러웠다.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최고급 승용차에다 서울 남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단독주택까지 소유하는 등 평소 알려진 것과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방송 후 비판이 거세자 이 승려는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푸른 눈의 수행자’로 불리던 승려도 이 논란에 가세했는데, “기생충, 도둑놈” 등 격한 표현으로 비난하다가 하루 만에 돌연 “그의 순수한 마음을 존중한다. 나의 영원한 진리의 형제”라고 감싸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지난 10월 유튜브에는 한국 기독교 대형 교단의 총회장에 취임한 목사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는 취임 감사예배에서 ‘교회다움, 목사다움, 기독교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한 뒤, 장로 몇 명을 불러내 감사패를 수여했다.

 수여식에서 이 목사는 “좋은 자동차도 빼주시고… 장로님 요즘 돈이 부족합니다. 조금 더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또 다른 장로에게는 감사패를 주면서 “3억짜리 입니다. 더 바치세요”라고 멋쩍게 웃는가 하면 대학총장 출신 장로에게는 “돈을 바쳐서가 아니라 마음을 바쳐서 감사패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들 승려와 목사를 나무라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대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승려 중 성철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공직자와 기업인, 대학총장 등 많은 유력인사와 불교신도들이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3천 배를 먼저 하라”는 조건을 내걸며 사람들을 잘 만나주지 않았다.

 훗날 법정스님이 성철스님과 대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질문 중의 하나가 “왜 찾아온 사람들을 잘 만나주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성철스님은 “나를 찾지 말고 부처를 찾으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저 사람일 뿐”이라면서 “3천 배를 하고 나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버리거든”이라고 답했다.

 성철스님은 밀려드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수행하던 곳 주위에 철조망까지 쳤다. 스님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당시 상황을 설명했는데, “사람들이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한 말씀만 해달라는 것이다. ‘진짜 내 말을 들을 참이냐’고 물었더니, ‘듣겠다’고 했다. 그래서 해준 말이 ‘중한테 속지 말라는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다. 나는 중이다. 나한테 속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기독교는 낭패감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무엇인가 자신에게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있음을 자각한 인간이 종교를 찾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런 심성은 신과 자신 사이에 중재자를 원한다. 신이라는 두려운 존재를 직접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성직자(무당)-신’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종교나 무속신앙에 작동한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은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종교범죄나 사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두려움과 낭패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본 일부 삐뚤어진 사기꾼들은 종교행위를 빌미로 자기의 이익을 챙긴다.

 목사나 승려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도 한낱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성경의 지적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다. 멀쩡한 외모에 화려한 언변으로 “나를 따르면 건강, 출세, 돈을 벌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성직자 조차도 본질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이다. 성철스님의 표현에 따르자면 “중한테 속지 말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종교활동이 위축됐다. 예전에는 일요일 교회예배에 한번만 빠져도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개월째 예배당에 얼씬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절망에 빠져 있기 보다 이런 때일수록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자신이 믿는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의 믿음이 진짜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기독교를 예로 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꿔 말해 나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하는 종교행위, 또는 목사를 매개로 한 어떤 일을 추구하고 의지하기 보다, 그리스도 예수가 ‘다 이루었다’며 성취한 구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너희 중에서 주 예수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했으며, “세상이 추구하는 기적이나 지혜가 아닌,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선교요, 복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종교의 본질을 정확히 붙들고 있다면 일부 탈선한 성직자에 대한 뉴스를 보고 분개할 이유가 없으며, ‘돈 내놓으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갈 위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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