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3 전체: 62,988 )
‘기레기’들의 위기
allellu

 

 대학동문 선배 가운데 공공기관 홍보담당자가 있었다. 한국신문사 편집국은 보통 1년에 한 번 출입처 인사이동을 한다. 그곳에서는 2년 넘게 머물렀고, 그 선배와는 인간적인 친분관계가 제법 깊어졌다.

 

 어느 날, 퇴근길에 저녁을 함께 하는데 그 선배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똑같은 내용으로 기사를 써도 김 기자 글은 좀 더 느낌이 강하다. 특히 당사자 입장에서는 단어 하나하나 때문에 훨씬 아플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내 기사가 좀 날카롭다는 뜻인가’ 약간 우쭐하면서 지나갔다. 하지만 언론사 연차가 쌓일수록 기사 한 줄 때문에 삶이 망가지거나 수십 년 구축한 토대가 무너지는 것을 자주 봤다.

 

 아픈 기억 한 토막.

 2000년대 초 한국정부는 지역경제와 수출활성화를 위해 곳곳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했다. 농지와 산지, 시골마을 등을 공업지역으로 용도를 바꾸고, 산업단지 지원시설을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당연히 그 지역에는 땅값 상승과 토지 수용에 대한 보상 기대도 커졌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방치돼 있던 나대지에 갑자기 작물을 심거나 심지어 못 보던 주택이 하루아침에 뚝딱 신축되는 경우도 있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갔다. 현장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주민은 “한 번만 모른 척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이미 데스크에 취재계획을 보고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현장 사진을 찍은 뒤 기사를 작성했고, 이튿날 화들짝 놀란 관계 당국은 현장조사를 나갔다.

 

 여러 주민들이 벌금을 물게 됐다. 몇몇은 전화를 걸어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때로는 ‘가만두지 않겠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기자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은 기자들끼리 언론을 ‘3D 직종’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언론고시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몇몇 언론사를 제외하면 기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업무 강도는 높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언론사의 신입기자 연봉은 대체로 대기업 이상이었다. 하지만 IMF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언론사 경영이 어려워졌고,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신문과 방송이 가져가는 광고도 줄었다. 설 자리가 더 좁아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위기가 외부적 요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영국 옥스포드대학 연구소에서 주요 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40위, 5년 연속 부동의 꼴찌를 차지했다.

 

 기자에 대한 신뢰 추락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시민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부정과 비리, 권력을 비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한국언론은 특히 어느 집단보다 정치와 권력에 비판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나 조국 전 법무장관 논란,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논란 등 이슈가 벌어지면 수많은 단독기사가 쏟아진다. 가히 ‘광풍’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문제는 권력을 향해 휘두르는 칼날이 자신들의 치부에 대해서는 무디다는 데 있다. ‘대문짝 만하게’ 1면에 오보를 내도 2,3면 구석에 잘 보이지도 않는 크기로 ‘바로잡습니다’를 게재하면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권력과의 짝짜꿍은 더 큰 문제다.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는 표현을 인용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에드워드 불워 조지 리튼이 1839년에 쓴 사극 ‘리슐리외 추기경’에 처음 나왔는데, ‘글쓰기가 무력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펜과 칼은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 칼이 펜을 지배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본다. 검찰이 불러주는대로 받아쓰기 하는 언론이다.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한편을 먹는 장면도 흔하다. 수사 대상에 오른 언론사 사주가 검찰 고위 관계자와 어울려 폭탄주를 마시고 비밀회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도 대부분의 언론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레기’들의 위기는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