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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호와 처벌
allellu

 

 “00신문, 김00 기자지요?”

 “네, 맞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00경찰서 앞에서 당장 만납시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볼 시간도 주지 않고 전화는 뚝 끊겼다.

 

 시작은 1단짜리 사건기사였다. 고작해야 200자 원고지 1장 남짓의 짧은 기사다.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비슷한 사건기사를 적어도 수십 번은 썼을 것이다. 그날도 시경캡에게 보고한 뒤 기계처럼 써내려갔다. 10여 일 전 실종된 여대생 A양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경찰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건경위를 수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퇴근시간, 경찰서 정문에서 마주친 A양의 모친은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았다. ‘나도 지금 물에 빠져 죽을테니 내일 신문에 똑같이 내라’며 소리를 쳤다. 수많은 경찰관들의 이목이 집중된 마당이라 당황스러웠고, 우선 흥분을 가라앉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서 형사계장실로 안내했다.

 A양의 모친은 땅을 치며 통곡했고 울부짖었다. 주먹으로 내 등을 때리기도 했다. 거의 2시간동안 A양 모친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보다 못한 형사계장이 중간중간 사무실에 들어와 말렸지만 내보냈다. 가슴에 맺힌 그녀의 한이 이렇게라도, 조금이라도 풀려야 끝날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그녀의 흥분 상태는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거센 항의는 지켜보던 경찰관들이 끼어들면서 끝났다. 형사계장은 “기자는 잘못이 없다. 기사 내용에도 시비를 걸기 어렵다”며 정중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1990년대 말까지 한국의 신문기사에는 주소와 나이가 필수로 표기됐고, 이름도 실명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사 생활 초기에는 개인정보 확인을 깜빡 하는 바람에 인터뷰한 사람을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화재현장에 경찰과 소방서가 출입금지 테이프를 쳐놓았음에도 시경캡의 지시를 받고 피해자 가족의 얼굴 사진을 확보하러 집안으로 몰래 들어가 장롱을 뒤진 적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한국사회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명예훼손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언론을 상대로 한 피해소송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결국 언론사들은 실명 대신 가명이나 김모씨, 박모씨 등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김모(여.55)” 식으로 ‘여’자로 따로 표기했지만 이런 표기법도 대부분 사라졌다. 민감한 사건기사에는 아예 이름의 성씨를 바꾸거나 나이를 한두 살 다르게 쓰기도 했다.

 

 문제의 실종 사망사건을 쓸 때도 여대생의 주소와 나이를 조금 다르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딸을 잃은 엄마의 애끓는 마음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캐나다에 와서 놀랐던 것 가운데 하나가 경찰의 사건 리포트에 용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언론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 기사를 쓴다.

 

 한국은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었다.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재범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경찰은 이 법규를 근거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건에는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운영한다.

 

 캐나다 문화에 익숙하다면 한국의 이런 제도는 인권을 지나치게 앞세워 범죄자를 비호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 안에서도 피해자의 아픔과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해 중범죄자의 얼굴을 빨리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캐나다경찰처럼 수사 단계에서 용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최근 토론토 한인청년이 성추행 용의자로 몰려 개인정보가 공개된 것이 대표적이다. 언론도 경찰 리포트를 인용해 기사를 썼지만 결국 그 청년은 무혐의로 드러났다.

 

 어떤 제도가 더 나은지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공권력의 집행은 엄정하되, 절제되어야 한다. 언론도 법원의 재판이나 적어도 사법당국의 수사에 앞서 용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더라도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열 명 도둑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피해자 한 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을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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