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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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칼럼(112)-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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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젊었을 땐 새벽녘에 아내가 여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상쾌도 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서늘한 바람이 쌀쌀한 바람으로 느껴지며 몸을 움츠리게 한다. 상쾌했던 바람이 변한 게 아니고 늙어버린 내가 변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지만 우리 모두 매일 변해가고 있다.

 

 일부 철학자나 소설가들은 우린 모두 나이가 들수록 익어간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늙어가는 것을 듣기 좋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는 늙어가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 우선 육체가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보니 이제 자식들과의 관계 역시 미묘해지는 것이, 자식들이 떠난 것도 같고 아님 남의 자식이 들어온 것도 같은 새로운 가족체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엔 부모가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당시엔 가족계획을 누구도 잘 알지 못하였고, 그저 아기가 생기는 대로 많이 낳다 보니 적게는 넷에서 많게는 열 명이 넘는 가족들도 있었다.

 

 어찌 보면 애들을 키운 것이 아니고 저희들끼리 자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 그땐 한국사회가 농경이 생활수단이었고 따라서 아들은 집안 농사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아들을 낳으려 계속 노력하다 보니 식구가 많아지고, 또 먼저 태어난 아이들이 아우들을 많이 돌볼 수 있었기에 아마도 대가족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자기의 핏줄이나 가문을 이어가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반면에 요즘 아이를 하나만 낳아 그 아이에게 올인하는 부부가 대다수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한국의 출산율이 여성 1인당 1.2로 세계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라니 머지않아 한인의 핏줄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부부가 학교 교육은 물론 무리한 예능, 체육 등 많은 과외를 시키다 보니 이것저것 바빠진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은 엉망이 되고 그저 로봇처럼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 같다.

 

 지난 1983년에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이 2.0을 기록한 뒤 수십 년간 계속 내려간 신생아 출산율에 대한 이유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아마도 맞벌이를 해야만 살 수 있는 요즘 세상의 경제적인 이유가 아닐까?

 

 요즘엔 인간의 수명이 많이도 늘어나 남자는 80세, 여자는 85세 정도라 하는데 이렇게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부부 중 남자의 나이가 4살 정도 많으면서 수명은 5년 정도 짧기 때문에 여자는 9-10년 정도를 혼자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의 경로당이나 실버타운에 가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모아놓은 재산이 있을 경우엔 워낙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보니 자식들이 부모의 재산을 미리 받으려 하고, 부모의 입장에선 오래 쥐고 있어야 황혼의 삶이 그나마 여유로울 수 있기에 여러 가정에서 재산의 배분 또는 유산 상속에 대해 시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가정은 자식들의 직업이나 생활력이 월등해 부모의 유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요즘 젊은 가정들은 그렇지 못하다.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아주 없다면 자식들이 기대할 것도 없고 때로는 그것이 형제간 불협화음을 적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돈을 벌지 않거나 또는 있는 재산을 모두 남에게 기부해버리고 빈손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다.

 

 황혼에 빈손으로 자식들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은 자식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 세상이 되었는데, 자기들 살기도 힘이 드는데 손을 벌린다면 그 어느 자식이 좋아할까?

 

 한 부부가 몇 십 년을 함께 살면서 문제와 사연 없는 부부가 어디에 있을까마는 어쨌든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 오래 쌓이고 쌓인 정은 이제 그 누구도 끓을 수 없는 굵은 인연이 되어버려 이젠 둘 중 누가 먼저 간다 해도 남은 이에게 찐한 아픔으로 남을 것을 생각하면 누가 되었든 남아있는 사람의 마지막 생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이 살아왔던 삶과 현재 자식들의 삶을 비교하며 잔소리를 할 때가 많은데 때로는 그 비교로 인한 판단이 잘못된 것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우리를 이해 못하고 때론 우리가 자식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식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을 땐 아내에게 핀잔을 맞곤 하는데 자꾸만 나의 젊은 시절 고생한 생각을 하며 자식들과 비교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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