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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4)
Imsoonsook

 

 강변 휴게실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다시 트레일에 오른지 한 시간 여 됐다. 잠깐 빤짝했던 일행들의 걸음걸이가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려 온 만큼 오르기만 해야 하는 난코스에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까지 폐부를 파고들어 속도는커녕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 했다. 그때마다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보면 한 발 두 발 걸어온 길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였다. 신통치 않은 한걸음의 실체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휘청거리는 다리에 더욱 힘을 가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그랜드캐년 트레킹은 단 반나절 만에 수십억 년 세월을 거슬러 내려갔다가 다시 그 세월을 밟아오는 과정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지루했던 풍경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암석의 색깔에 따라, 지층의 두께에 따라 수십만 년 서로 다지고 엉겨붙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까이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편적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세월이라는 길고 긴 캔버스 위에 간간이 스쳐가는 바람, 눈과 비 등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역작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매년 그랜드캐년을 찾는 많은 여행자 중 열에 아홉 명은 몇 군데 정해진 지점에서 그 엄청난 풍광을 잠깐 감상만하고 돌아선다고 한다.


 방문자 대다수가 엄두조차 못내는 일을 우리가 해 내고 있다는 자긍심에 울컥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솟구쳤다. 가장 고생 많은 나의 두 다리에게, 건강함에, 함께 한 남편과 일행들에게.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카이밥 트레일’에 비해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지형이 완만하고 물 흐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중반부 트레킹에 힘이 되었다. 남은 거리는 십 이 삼 킬로미터 남짓, ‘인디언 가든’에서 적당히 휴식을 취한 다음 열심히 오르면 예정된 시간 안에 충분히 캐년 림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 해도 기울고 계곡의 기온도 서서히 내려가는 시점이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후반부 트레킹이 기대되었다. 단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는 지름길 팀의 두 여인이 ‘인디언 가든’까지 잘 버틸 수 있을 지 염려되어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자신만 바라보며 투정 부렸던 약한 마음이 함께 하니 안심도 되고 서로 격려도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체력은 내 마음과 달리 점점 하향 길에 드는 듯 했다. 수시 쉼은 물론 물과 간식을 권하며 독려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단지 몇 걸음 옮기고선 ‘인디언 가든’이 얼마나 남았냐며 묻고 또 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초행길이어서 뾰족한 수가 있을 턱이 없었다. 더구나 거리 표시 사인도 전무했으니 남은 거리를 유추해 내기도 난감한 실정이었다. 


 그때 문득 장거리 하이킹을 몇 차례 함께했던 K 대장이 생각났다. 산길을 오르느라 지친 대원들이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이 ‘5분만 더 가면 되요. 저기 저 앞이에요.’ 이었다. 그 5분이 때론 한 시간도 되고 두 시간도 되었지만 듣는 순간은 힘이 불끈 솟아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살려 ‘5분 만 더, 10분 만 더’ 하며 무책임한 회유로 그들의 한계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행은 조그만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모처럼 달콤한 휴식에 들었다. 뒤쳐진 두 커플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페이스로 걸었더니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일부는 편편한 돌에 누워 쪽잠을 청하고 또 일부는 무리한 여정에서 온 후유증을 달래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토록 험난한 코스를 십 여 시간 강행 했음에도 부상자가 없어 다행이었고,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인디언 가든’이 가까웠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그들이 나타나지 않아 서서히 걱정이 되었다. 때맞춰 트레일 입구에 붙어있던 경고문이 떠올랐다. 


 “Do not attempt to hike from the canyon rim to the river and back in one day" 


 당일에 강까지 다녀오는 것을 시도하지 말라는 빨간 사인이 아른거려 더 가슴을 조려야했다. 


 위급한 상황에선 직감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사람이 쓰러졌다는 전갈이 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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