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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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 ‘바라아제’
Hwanghyunsoo

 

 우리 집 정원에서 기르고 있는 꽃들 중에 고국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꽃이 있는데, 바로 만데빌라(Mandevilla)라는 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화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정집 정원에서 키우는 만데빌라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10여 년 전에 멕시코로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였다. 호텔 로비를 화려한 만데빌라 꽃으로 인테리어를 해놓았는데 열대 지방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마치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당당히 자신의 외모를 뽐내는 서구적인 여인의 느낌이 들었다.

그 뒤에도 몇 번 이 꽃을 마주할 때마다, “저 꽃 이름이 뭐지?”하며 주위에 물어보곤 했는데, 워낙 외우는데 소질이 없어서 남아프리카 흑인 대통령인 ‘만델라’, 중국어 ‘만다린’ 등으로 기억하다가 작년 겨울에 화분을 직접 키우면서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됐다.

 

 

겨울 내내 실내에서 키우다가 봄이 되어 정원에 화분을 내놓았더니, 덩굴만 무럭무럭 자라고 꽃은 피지 않았다. 7월이 되면서 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더니 요즘에는 줄기마다 빽빽이 꽃을 피우고 있다. 만데빌라는 나팔꽃처럼 생겼지만, 나팔꽃보다는 크고 꽃잎이 비로드 옷감 느낌이 들 정도로 두껍다. 대개 꽃 색은 빨강과 연분홍이고 노란색도 있다는데, 나는 직접 본 적은 없다. 꽃을 피우기 전에 마치 긴 펜촉처럼 봉우리를 뽑아 올린다.

 ‘천사의 나팔 소리’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3~5 송이가 피어나고 7송이까지 피면 ‘천사가 평화와 행운을 준다’고 할 정도로 의미를 둔다. 원산지는 붉은 꽃처럼 정열의 나라 브라질이다. 잎은 동백나무 잎을 닮았는데, 뜨거운 오후의 햇빛을 받으면 꽃들이 활짝 피고 윤기가 흐른다.

잎에서 나오는 수액은 약한 독성을 품고 있고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어 사람들은 괜찮지만, 반려 동물들은 옆에 가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곤충과 질병이 없이 잘 자라는 편이다.

나는 ‘만데빌라’ 꽃을 보면 엉뚱하게 ‘바라아제’가 떠오른다. ‘만나빌라’나 ‘바라아제’, 두 단어는 처음 들었을 때 영어도 아니고 힌디어 같았다. 사실 힌디어는 한마디도 모르지만, 그저 그런 비슷한 이미지를 느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gate gate paragate)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모지사바하’에서 따온 말로 일반적 문장이 아니라 진언이나 주문 같은 것이다.

아제(gate)를 직역하면 가버린 것을 의미하는데, 괴로움에서 해탈로 가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아제 아제’는 가버리고 또 가버린 것이다. ‘바라아제’는 아주 먼 저곳 끝, 파라다이스까지 가버린 것을 말한다. 다시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라는 뜻이 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1989년에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다. 강수연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세인트 조지 황금상’ 후보에 올랐고, 주연 여배우인 강수연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요즘은 한국 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받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그것 자체로 큰 뉴스고 이슈였다. <모스크바 영화제>는 <칸>, <베니스>, 그리고 <베를린>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큰 4대 국제영화제의 하나였다. 그러기에 24살 강수연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굉장히 큰 이야깃거리였고, 그녀의 삭발 장면과 수줍어하는 인터뷰 장면 등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1966년생인 강수연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 등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신드롬일 정도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른스럽고 착하고 심지 깊은 스타일이었다.

대개의 아역 배우 출신들이 나이가 들면서 정체성의 혼돈이랄까, 성인 배우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녀는 로맨틱 청춘 스케치의 주연으로 톱을 찍는다. 1987년에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국내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당시 청춘 스케치라는 영화가 별게 아니었다.

 


1980년대의 한국 영화계는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비참할 정도로 관련 산업 전체가 궁색하고 보잘것없었는데, "방화를 돈 주고 보나?" "뭔가 허접하지만, 우리 영화를 우리가 봐줘야지" 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은 장면 몇 개 보자는 생각으로 보자" 등의 분위기였다. 그런 중에서도 강수연이 출연한 청춘 멜로물은 그나마 인기가 있었다.

 한국 영화가 새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바로 강수연이 출연한 <씨받이>와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면 서다. 이 두 영화로 강수연은 국민 배우로 사랑이라기 보다 존경을 받았고, 카리스마와 대배우로서의 자존감 같은 것을 지니게 된다.

당시, 강수연의 국제 영화제 수상은 한국 문화 위상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동력으로 이용되는 듯했다. 그전까지 "코리아가 어디 있는데, 저 배우 의외로 연기를 잘하네?"라는 분위기였다면, "코리아라는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요즘 떠오른다지. 거기에서 영화를 만들었어, 어디 한번 볼까?" 이런 느낌으로 바뀐다.

1990년대에 들면서 영화계에는 제대로 공부한 감독들과 배우, 스텝들이 많이 등장한다. 강수연은 한창 일할 수 있는 젊은 나이였지만, 그들에게 원로 대접을 받게 되며 영원한 주연으로 남기를 원했다. 그렇게 1990년대를 보낸 후,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 캐스팅되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그 이후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없게 된다. 대신 배우로서 보다, 다양한 활동으로 영화계를 지원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갑자기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된 후 뇌사 판정을 받은 거다.

강수연은 마치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당당히 자신의 외모를 뽐내는 서구적인 여인의 느낌을 지닌 <만데빌라> 같은 배우였다. 그녀를 기리며,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를 빌어 본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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