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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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전에 ‘애랑’ 보러 오세요
Hwanghyunsoo

 

10월 14일(금), 페어뷰 도서관(Fairview public library)

 

‘남편이 죽자 부인이 곡기를 끊고 따라 죽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그것도 임금의 딸이 그렇게 죽었다.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는 월성위(月城尉) 김한신에게 시집가면서 처음으로 대궐을 떠나게 됐는데, 정숙하고 유순하였으며 검소해 의복이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남편 김한신과 서로 마주하며 항상 청렴하고 신중하게 자신을 지키니, 사람들이 ‘어진 부마와 착한 옹주는 훌륭한 배필이다’라고 하였다. 남편이 죽자, 옹주가 따라 죽겠다고 결심하고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주상이 옹주의 집에 친히 거동하여 미음을 들라고 권하자, 옹주가 명령을 받들어 한 번 마셨다가 바로 토하니, 주상이 그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탄식하면서 돌아왔다. 음식을 끊은 지 14일이 된 날, 마침내 목숨이 다하였다.” <영조실록 34년 1월 17일〉의 기록이다.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부부가 깊은 슬픔으로 그 자리에서 자결하는 것은 상상이나마 할 수 있지만, 화순옹주처럼 열흘이 넘게 음식을 먹지 않고 죽는 것이 가능할까? 조선의 가부장제는 남성 가장이 가족들을 통솔하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레 위계질서가 생기는데, 가장은 자손을 이어야 하는 의무와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자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성에게서 만들어지는 자손이 자신의 ‘씨’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남성은 여성을 억압할 필요가 있었고 끊임없이 의심했다.

조선을 지배한 유교는 ‘세련된 방법’으로 여성을 지배하는데, ‘정절(貞節)’이라는 이념을 이용한다. 정절은 신념이나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않는 강직한 태도를 말하지만, 일반적인 의미는 여자가 정조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한번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먼저 죽더라도 다른 남성과 다시 결혼하지 않기를 바랐다.

조선왕조는 죽은 남편을 위해 절개를 지키거나 희생적인 삶을 산 여인을 ‘열녀’라 하고, 가문에 열녀문을 세우고 재물을 내리는 혜택을 주었다. ‘열녀문’은 서민들도 간혹 받았지만, 주로 사대부 여성에게 주었다.

열녀문이 세워진 가문은 세금도 감해 주고 자식들의 군대 징집도 면제해 주었다. 그렇기에 이 점을 악용하여 멀쩡한 사람을 죽여 놓고 열녀로 둔갑시키는 일들도 벌어졌다. 홀로 된 과부는 시집 식구들에게 자살을 강요 받기도 하는데, 이것이 두려워 스스로 자해를 할 정도였다.

 물론 시댁에서의 강요나 눈치였지, 친가의 부모들은 여식이 죽거나 자해를 바라지 않았다. 영조도 화순옹주의 죽음을 애통해해, 신하들이 ‘열녀문’을 내리기를 청하였지만, “아비가 되어 자식에게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는 것)를 주는 것은 자손에게 올바른 법도를 물려주는 도리가 아니다”며 못하게 했다.

이처럼 여성에게 가혹하게 요구되는 ‘정절’은 정작 남성에게는 요구되지 않았다. 도리어 정절하지 않고, 바람 피우는 행위를 ‘풍류’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조선 여성들은 이른 나이에 간 시댁에서 낯선 환경과 엄한 위계 속에 살아야 했다. 그 시대 여성들은 그런 억압적인 일상에서 어떻게 견디었을까? 서민은 물론 사대부가의 부녀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조선 중기에 들어서 그들에게 새로운 신문화가 싹튼다. 바로 소설 읽기다. 소설을 보며 ‘상상으로만 저지르는 염문’은 여성들의 갑갑한 마음을 해방시켜 주었다. 지금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심정으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조선시대의 소설은 15세기에 <금오신화>가 그 길을 열었지만, 한자로 제작되어 일부 양반들 만이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0여 년이 지나, <홍길동전>이 한글로 출간되며 이른바 ‘평민 소설’이 등장한다. 같은 시기에 유입된 중국 소설은 광적인 독서 열기를 만든다. 이를 한글(*언문)로 번역한 책들이 인쇄되어 비교적 싼값에 배포된다. 조선 후기에는 무려 858종의 국내 고소설이 생산되어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준다.

한평생을 좁은 집안에서 갇혀 지내며 반복적인 가사 노동과 육아에 묶여 있던 여성들에게 소설들은 생활의 활력소였다. 18세기 중반, 성행한 소설의 고객은 주로 사대부 여성이었지만, 점차 상인 계층과 천민, 노비까지 확장된다.

<구운몽>, <임장군충렬전>, <조웅전> 등의 영웅 소설에서 판소리의 인기를 업고 나온 <춘향전>, <심청전>, <허생전> 등 가정 소설도 등장한다. 판소리를 소설화한 것들은 여성 고객의 입맛에 맞춰, 주로 남성의 도덕적 타락을 다루는 내용이 많다. 절개 있는 남성을 타락시킴으로써 절개를 우스운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소설 중에 대표적인 것이 한글로 쓰인 <배비장전>이다.

 

 

작가 미상의 조선 후기 작품인 <배비장전>은 판소리 <배비장 타령>을 소설화한 것이다. 판소리 열두 마당에 속하지만, 아깝게도 판소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배비장전은 조선시대 남성 중심 사회의 모순과 균열을 다룬다. 배 비장과 같은 인물을 통해 남자들의 여색 탐닉을 풍자하고, 양반들의 치부를 표현한 작품이다.

배 비장은 배 씨 성을 가진 비장(裨將), 즉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한 ‘감사’와 ‘수령’ 등을 보좌하는 ‘무관 벼슬아치’를 말한다. 배 비장은 아내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여색 따위에 유혹당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다. 제주로 발령이 난 신임 사또를 모시고 제주로 떠난 배 비장. 제주에 도착해 지나치게 여심을 경계하는 배 비장의 모습에 사또는 ‘네가 여자를 돌로 본다고? 웃기는 소리!’ 하며 배 비장의 허위의식을 벗기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배 비장을 유혹하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공포하자, 제주 최고 절세미인인 기생 ‘애랑’이 나서고 평소 배 비장의 주색에 진력이 난 방자 또한 사또의 계교에 합류하면서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애랑과 놀아나던 배 비장이 남편 왔다는 말에 허겁지겁 알몸으로 쌀 궤에 숨었다가 동헌 마당에서 망신당한다.

<배비장전>의 주인공은 배 비장인 것 같지만, 실은 기생 애랑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성춘향>에 등장하는 춘향은 애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키는 형이지만, 애랑은 돈만 알고 변절을 밥 먹듯 하는 개방형 기생이다.

<배비장전>은 지배 계층의 이중성과 위선을 해학으로 보여주고, 양반 계급의 남성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든다. 정절을 강요한 것은 남성이지만, 그 남성도 정절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비꼬는 작품이다.

이제까지 <배비장전>은 뮤지컬, 마당놀이, 연극, 창극 등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졌다. 벌써부터 이곳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토론토에서도 <배비장전> 같은 공연을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번에 캐나다 <전통예술 공연협회>의 금국향 단장이 용기를 내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캐네디언과 2세 교포들을 대상으로 해 영어 버전으로 공연을 할 계획이다. <배비장전>이 영어 대사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마 처음 있는 일이고, 그것이 토론토의 한인 2세 배우들에 의해 제작되어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또한 캐나다 주류 사회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단장은 “대본의 번역은 벌써 진행되고 있고, 주요 출연진들도 이미 섭외에 들어갔다”라고 말한다. 날짜는 올해 10월 14일(금), 장소는 페어뷰 도서관(Fairview public library)에서 할 예정이다.

금국향 단장은 2020년에도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성공적으로 연출해, 한인 사회에 민족의 자긍심을 북돋아 주었는데, “이번 공연에도 한인 동포들의 관심과 많은 격려를 바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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