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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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Hwanghyunsoo

 

 토론토시는 지난주 폭설로 쌓인 눈 4만 5천 톤을 치웠다고 하는데, 이는 트럭으로 1만4천여 대 분량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면 단독주택의 진입로와 보도에 쌓인 눈은 주택 소유자가 치울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지난주처럼 55cm의 폭설이 내린 경우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다.

눈이 온 첫날은 아예 집 밖에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다음날 오후부터 치우기 시작했지만, 제설기가 사용 2분 만에 작동이 안돼 삽으로 치워야 했다. 2시간 정도를 아내, 아들과 함께 삽질을 해도 겨우 길을 낼 정도로 힘이 들었다.

“아빠, 무슨 눈이 이렇게 무거워”

“습기가 많아서 눈이 오자마자 바로바로 치우지 않으면 쌓여서 무겁지,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그만하자”며 집으로 들어왔다.

 캐나다 원주민인 이누이트가 눈(snow)을 표현하는 말은 네 가지로 내리는 눈, 쌓인 눈, 날리는 눈, 바람에 한 곳에 쌓인 눈이라 하는데, 우리말은 가랑눈, 가루눈, 길눈, 도둑눈, 숫눈, 솜눈, 떡눈, 쇠눈, 마른눈, 밤눈, 사태눈, 설눈, 소낙눈, 싸락눈, 자국눈, 잣눈, 포슬눈, 풋눈, 함박눈, 진눈깨비 같은 다양한 이름이 있다.

 지난주에 토론토에 왔던 눈은 함박눈이다. 눈송이가 굵고 탐스러운데다 솜 모양의 눈이 마치 함박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떡처럼 잘 뭉쳐져서 떡눈이라고도 한다. 눈 사람을 만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굴리기만 해도 잘 뭉쳐지고 물기가 많아 무겁고 척척하다.

나무에 얹히면 아주 멋있지만,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하 15도 정도에 내린 떡눈은 온도가 내려가며 겉은 얼어붙고 딱딱해져 시간이 지나면서 밑의 눈을 누르며 떡처럼 된다. 반면, 영하 30도 이하의 찬 공기에서 만들어지는 싸락눈은 건조하고 가루 모양을 하고 있어 잘 뭉쳐지지 않는다.

 나이 들면서 눈이 내리면 “저걸 언제 치우지?”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어릴 적에는 눈이 내리면 너무 좋았다. 지난주 눈을 치우며 어렸을 때 불렀던 겨울 동요 <눈>이 생각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멜로디가 생생하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이태선은 1914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노랫말을 보면 그가 자란 사리원에도 ‘함박눈이 많이 내렸겠다’는 짐작이 간다. ‘눈은 선녀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선녀들은 눈을 뿌려 축복해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린이들의 생각과 눈높이에 맞춘 동화적 상상력이 녹아있는 시다.

이태선은 평양 요한학교에서 공부하였고 ‘꽃가지에 내리는’, ‘시냇물’, ‘가을밤’ 등 1천여 편의 동요와 어린이 찬송가를 지었다. 다수의 시와 동요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아직도 아이들이 즐겨 부른다. 1945년에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해방 후, 월남하여 경기도를 중심으로 목회 활동을 하다가 2002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또 다른 동요 <눈꽃송이>를 불렀던 생각도 난다. 초등학교 담임이며 동요 작가였던 한성균 선생님이 “배에 힘을 주고 입을 달걀 모양으로 크게 벌리고 불러라”는 발성 요령은 아직도 요긴하게 써먹는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합창 연습을 해서 무슨 <어린이 합창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지붕에도 마당에도 장독대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이 노랫말은 서덕출이 지었다. 이 시는 ‘하느님은 하얀 눈꽃을 나무에나 뜰에나동구 밖이나, 큰 기와집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골고루 나눠준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차별하지 말고 사랑을 골고루 나눠주자는 뜻이 담겨 있다.

서덕출은 1906년에 울산에서 태어나 5살 때 대청마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한글을 배워 동요를 짓기 시작했다.

1925년 <어린이>지에 동요 ‘봄편지’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지만, 살아생전에는 동요집을 내지 못하고 사후 10년이 지난 뒤에나 유작을 모아 출판된다. 194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울산에서는 <서덕출 창작동요제>가 열리고 있다.

 겨울 동요 <눈>과 <눈꽃송이>, 이 두 노래의 작곡가는 박재훈이다. 박재훈은 지난해 8월 토론토에서 99세로 돌아가셨다. 그가 살아온 삶의 흐름은 우리나라 역사와 같다. 일제 강점기의 암흑시대, 제2차 세계대전, 해방 1945년, 건국과 6.25 전쟁, 남북의 끊임없는 긴장 등이 함께한다.

1922년에 강원도 김화군에서 태어난 그는 17세에 평양 요양학교에 입학한다. 동요 <눈>을 작사한 이태선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이후 동경제국 고등음악학교에 유학하지만, 전쟁의 위협 속에 졸업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평안남도 강서 금양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 23세의 나이였지만 아이들이 일본 군가 밖에 부를 노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어린이 잡지에 실린 동시에 곡을 붙여 ‘산골짝의 다람쥐’, ‘눈’, ‘시냇물은 졸졸졸졸’, ‘눈꽃송이’,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등 지금도 널리 불리는 동요 50여 곡을 작곡한다.

그는 북한 공산 정권의 압제를 피해 작곡했던 원고 뭉치를 들고 1947년 월남한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어머님 은혜’도 그때 작곡했다. 처음 이 노래는 찬송가로 만들어졌지만, 교과서에 수록되며 동요가 된다.

전쟁 후 대광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영락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했고, 미국으로 유학 후, 1964년부터 <교회와 음악>을 창간하고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의 지휘도 맡는다.

한양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오페라 <에스더>를 작곡했고,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음악 위원장을 마무리한 후, 이민을 떠난다. 잠시 미국에 체류하다가 캐나다에 정착해 1977년에 ‘토론토한인연합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첫 사역을 시작한다.

1982년 60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큰빛교회’를 8년간 일으키시고, 1989년에 조기 은퇴한다. 그는 목회 당시에는 예배 집전뿐만 아니라 성가대 지휘도 겸했다.

 인생 후반에는 오페라 작곡에 힘썼다. 1999년 오페라 <유관순>을 만들고 이후, 오페라 <손양원>과 <함성 1919>를 만들었다.

<박재훈 목사의 이야기>를 쓴 문성모 교수는 “그의 동요들이 사랑받는 주된 원인은 서양적 멜로디의 아름다운 서정성에만 있지 않다. 그와 더불어 그 노래들의 바탕을 이루는 민족성이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그의 서양적 멜로디조차 외래적이기보다 오히려 한국적인 음악처럼 느껴지고,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박재훈의 작품은 하나하나에 독특한 시대적, 역사적 배경이 저변에 깔려 있고, 그 작품을 통하여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의 장례는 코비드 방역 지침 때문에 교인과 지인들만 참석하여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그가 토론토뿐만 아니라 세계 한인 사회에 남긴 문화적 업적은 기리고 추모할 일이다.

박재훈의 가치와 업적을 유지하고 자랑하는 문화 행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캐나다 교민의 몫이다. 그를 기릴 <박재훈 동요제(가칭)> 정도는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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