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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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무용, 그림을 그리며 놀다’
Hwanghyunsoo

 

지난 12월 22일(수요일)에 재미난 공연이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재미난 공연이 있을 뻔했다’가 맞다. <한국전통예술공연협회>가 주최하는 <시무화유(詩舞畵遊)>라는 공연이다. 풀이하면 ‘시와 무용, 그림을 그리며 놀다’라는 컨셉인데, 6개월 전부터 금국향 선생을 비롯해서 고전무용팀과 GoGo장구팀이 주축으로 공연을 준비한 것이다.

코비드 시대에 ‘과연 이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노스욕(North York)에 있는 굴딩 커뮤니티센터(Goulding Community Centre)에서 공연 허가를 해 주었다.

 그런데 공연 5일 전에 ‘<긴급> 온타리오 사실상 준 락다운 돌입’이 발표되고 모든 실내 모임은 10명으로 제한되는 등 관객을 모시고 공연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준비를 해 온 출연진과 스텝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행부는 “그러면 관객이 없이 공연을 해보자. 대신 모든 과정을 촬영해 영상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자”며 비대면으로 예정된 장소와 시간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차가운 바람이 마음을 선뜻하게 하면 누구나 조금은 시인이 된다. 자음과 모음을 요리조리 버무려 외로움이나 쓸쓸함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진다. 시인과 세상을 잇는 다리는 ‘글자’다. 외로움, 슬픔, 사랑과 같은 감정을 시어(詩語)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 이 같은 정서를 무용가는 춤으로 표현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보여준다.

시에서 춤, 그림으로 매체가 바뀐다면 어떤 느낌일까? 시인과 화가, 무용가는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까? 소통할 수 있을까? 이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으로 <시무화유(詩舞畵遊)>공연은 설계를 한다.

시에는 있는데 춤이 표현하지 못한 정서도 있고, 그림만이 나타낼 수 있는 감성도 있다. 같은 감정이라도 그것을 담아내는 매체가 글자, 춤, 그림이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시인과 화가, 그리고 무용가가 만나 같이 협업, 공연을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특히 무용가가 판을 벌리고 시인과 화가들을 초대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옛 예술가들의 흔적을 따라 가면 그들이 꿈꾼 문화 예술의 풍요로움을 찾을 수 있다. 한발 앞서갔기에 때로는 ‘현실성이 없다’고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같은 꿈을 꾸는 예술 동지들이 있어 의지가 된다.

1950년대 초, 1세대 남성 현대 무용가 김상규의 무용발표회에는 여러 예술인들이 함께했다. 김상규는 구상, 모윤숙, 유치환, 마해송 시인 등의 작품을 무용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공연에는 조지훈과 구상이 종종 함께 한다. 김상규의 무용 발표회 팸플릿을 보면 구상의 협업 흔적을 볼 수 있다.

백태호 화백 등 여러 화가들이 공연 포스터를 그려 주거나 무대 디자인을 도와준다. 이런 협업은 예술가의 속성이자, 각 장의 영역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격동기, 선배 예술가들의 협업 사례를 보며 <시무화유(詩舞畵遊)>는 용기를 얻고, 차츰 다듬어 지고 완성되었다.

 

 

무(舞) 공연 컨셉에 맞게 첫 번째 출연은 ‘금국향 고전 무용단’의 입춤으로 시작했다. 7명의 단원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마치 나비 같은 자태로 군무를 추었다. 고전무용은 마음속에 있는 덕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서로 간의 조화를 중시하며 손과 발끝을 접고 피며 질서를 지키니, 절제와 예의가 묻어 난다.

시(詩) 사회를 맡은 서한준의 소개로 홍성철 문인협회 회장과 김원희가 시 낭송을 했다. <디셈버> 나의 이 노래를 너의 귓가에 가 닿아/ 머물게 할 바람 한줄기 찾고 있네/ 황량한 벌판을 맨 살로 지나고/ 때론 바이칼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 밤하늘 별들의 밀어를 품고 있는/ 그런 바람을 찾고 있네

‘명사 초대석’ 코너에는 이장성 얼-TV 회장의 시를 이영남이 낭송한다. <동백섬> 내가 빨며 자랐던/ 할머니 빈 젖처럼 한 줌 나체로 누워있다./ 동백꽃은 다 저서 없지만/ 눈을 감고 쓸듯이 오르면 한 숨/ 고운(孤雲)선생이 햇님이려니 좌상하고 있다/ 동백꽃은 다 저서 없지만

 탈북자 출신 김민주가 ‘걸어서 100리 길’을 회고하는 동안, 한오영의 무용이 슬픈 사연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회심곡을 부른 황원자에 이어, 금국향과 정미선의 ‘살풀이 춤’이 이어졌다. 살풀이 춤은 ‘살을 푼다’라는 의미다. 가는 해의 ’살’을 풀고 새로 맞이하는 해의 ’흥’을 맞이해, 코비드로 희생된 넋을 기리고 달랬다.

춤사위의 멋스러움은 한국 음식에서 주로 표현되는 ‘감칠 맛’이란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발효된 음식의 ‘삭다’, ‘곰삭다’와 같은 의미가 춤사위에 녹아 있다.

화(畵) 다가오는 2022년은 호랑이해다. ‘새해에는 호랑이의 기상으로 힘차게 시작하자’는 컨셉으로 차세대 예술가들의 현장 스케치 퍼포먼스가 있었다. 카디널 카터 아트 하이 스쿨(Cardinal carter Art high school) 재학생 6명의 예비 화가들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30여분 동안의 집념으로 그린, 붓 자국들이 모여 차츰 호랑이 형상이 나타나는 진귀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마지막으로 호랑이 눈을 그려 넣으니 ‘호랑이 울음’ 효과음이 공연장을 포효한다.

 

 

유(遊) 마지막 코너로 Go Go 장구팀의 신나는 장단에 맞춰 ‘청춘이어라’와 ‘찔레꽃’이 연주되었다. 흥이 깨질 것을 걱정하듯, 이어서 ‘전사은의 음악 세계’가 펼쳐졌다. 드러머 권순근이 리듬을 보태니 출연자들과 스텝들의 어깨가 흥에 겨워 들썩거린다. 커튼콜에 맞춰 전 출연자들이 인사를 하며 <시무화유(詩舞畵遊)>는 막을 내렸다.

 공연을 마치고 기획을 한 금국향 선생과 인터뷰를 했다. “너무 아쉽지만, 그나마 영상으로 여러분들을 찾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죠. 장소나 음향, 조명 시스템 등이 열악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출연자들과 스텝분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주셔서 무사히 마쳤습니다.”라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며 “내년에는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모시고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해서, 속으로 이제 막 공연을 마쳤는데, 내년 공연할 생각이 들까 싶어, “내년에는 무슨 공연을 할 계획이세요?” 물었다. “내년에는 <배비장전>을 꼭 해보고 싶어요.”하며 <배비장전>에 대해 한껏 설명한다. ‘아, 이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싶었다.

 토론토 <한국전통예술공연협회>에서 만든 <시무화유(詩舞畵遊)>는 유튜브에서 ‘시무화유’를 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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