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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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뻥 뚫리는 겨자 소스로 버무린 양장피에 ‘빼갈’
Hwanghyunsoo

 

“그래도 올해 가기 전에 다들 한번 봐야지?” “아, 좋죠. 어디서 뵐까요?” “그 거야, 맛있는 거 잘 아시는 분이 알아서 정해 주셔야지.” 벌써부터 미루고 미뤘던 지인들과의 모임이었다. “그럼, 중국 요리 어떠세요? 빼갈에다가…” “어~우! 좋지. 벌써 입맛이 확 당기네.” 이렇게 해서 지난 일요일에 한 중국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졌다.

 중국 요리는 지역에 따라 북경, 광동, 사천, 상해요리로 구분된다. 북경요리는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수도였으므로 궁중요리를 비롯하여 여러 사치스러운 요리가 발달했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광동요리는 아열대에 위치하고 있어 재료가 가진 맛을 잘 살려내는 담백함이 있다.

또한 사천요리는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 매운 요리가 발달해서 마늘, 파, 고추를 많이 쓰며, 상해 요리는 해산물에 설탕과 간장으로 요리를 해 달고 진한 맛이 강하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이 하는 중국 음식점은 중국 북방, 특히 산동요리의 영향을 받은 한국 음식이라고 하는 게 옳다. 특별한 외식 문화가 없던 조선에 1876년 제물포가 개항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식점이 생기는데, 가장 먼저 생긴 것이 상인이나 고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중국 요릿집이었다.

이후, 1898년에 산동반도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며 많은 산동 사람들이 제물포(인천)로 이주해 정착하며 대중적인 음식점이 생긴다. 당시 산동과 제물포 사이에 정기 항로가 왕래했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는 조선에 살던 화교들이 청요리집을 운영하며 지금의 한국식 중국요리로 발전하여 자리 잡는다.

우리는 코스요리를 시켰는데 누룽지탕과 양장피, 탕수육, 유린기, 쟁반짜장이 나왔다. 그날 저녁은 양장피가 별미였다. 일단 화려하게 야채, 고기, 해산물을 접시 가장자리에 예쁘게 담고, 가운데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피를 놓아, 보기만 해도 식욕이 돋았다. 거기에 매운 겨자 소스를 버무려 먹으니 고량주 안주로는 더 이상 좋은 게 없는 듯했다.

사실 양장피 맛의 비법은 코가 뻥 뚫리는 겨자 소스에 있다. 연겨자와 조림장, 다진 마늘, 땅콩버터, 설탕, 식초, 요구르트를 섞어 만드는데, 주방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다.

 

 

오랜만의 외식 자리인데다가 독한 고량주가 몇 순배 돌아가니 취기가 올라, 여기저기서 두서 없는 대화가 툭툭 오간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군만두에다가 이 빼갈을 마실 때…” “아니, 군만두는 비싸서 먹지 못했죠. 양파에다가 춘장 찍어 먹으면서…” “아니야, 짬뽕 국물에다가 이 빼갈 한잔하면 죽여줬지.” 서로들 옛날 중국집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안주 삼아 식사를 마쳤다.

다른 날 같으면 “한잔 더 해 야지?”하며 2차를 갔을 텐데, 이날은 눈보라와 강풍이 예고되어 더 이상 호기를 부리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 술이 모자라 아쉬웠는지, 고량주 양조장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붉은 수수밭’이 문득 생각났다.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은 1930년대 중국 산동성에서 고량주를 만들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앞에 이야기했듯 우리 한국식 중국 음식의 원조가 영화의 배경인 산동 지역이다.

 여주인공인 18세 처녀(공리)가 50세 양조장 주인의 아내로 팔려 가는데 그는 문둥병 환자였다. 아버지가 나귀 한 마리에 딸을 팔아버린 것이다. 가마에 실려 시집가던 날, 젊고 건장한 가마꾼 장웬과 눈이 마주친다. 결혼을 하고 3일 뒤, 친정으로 나들이 가는 풍습으로 친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수수밭에 숨어 기다리던 가마꾼 장웬과 마주친다. 그는 공리를 덮치려고 수수밭으로 끌고 가는데, 공리는 반항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깊은 정사를 나눈다.

그 후 집에 와 보니 문둥이 남편이 죽어 있었다. 졸지에 과부가 된 그녀는 죽은 남편을 대신해 양조장을 꾸리고 고량주를 만든다. 이 여주인이 만든 술이 ‘18리 홍’이다.

이 ‘붉은 수수밭’은 감독인 장이머우도 유명하지만, 국민배우 공리의 첫 출연 작이라는 것과 원작 소설의 작가가 모옌(막언)이라는 점이다. 그는 14억 인구의 중국에서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붉은 수수밭은 중국어로 홍 고량(紅高粱)이다. 그러니까 고량은 수수를 말하고, 고량주는 수수를 주원료로 사용하여 만든 증류주다. 본래 백주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백주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된다. 속칭으로 '빼갈'이라고도 불린다.

오래된 백주 중 노 백건(老白乾)을 '빠이간'이라고 부르는데, 베이징식 발음으로 빠이걸(白干?)이라 하였다. '빠이걸'이란 발음이 한국에 들어와 '빼갈'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은 모든 이야기가 수수밭을 둘러싸고 펼쳐지고 다양한 욕망들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욕망부터 사회적, 국가적 욕망이 녹아져 색다른 시선으로 중국의 숨겨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양조장에서 평등하게 일하며 즐거워하는 노동자, 일본군의 잔인함을 담아 20세기 초반의 비극적 역사를 축소시켜 보여준다.

 장이머우 감독은 특유의 색채 감각을 이용하여 환상적인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 붉은 가마, 붉은 수수, 붉은 황토, 붉은 석양 등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멋지게 표현한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 ‘붉은 수수밭’으로 국제무대 신고를 마친 후, 중국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시킨다. 하지만, 장이머우 감독은 자기가 데뷔시킨 공리와 불륜에 빠져 조강지처와 이혼을 하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혹시 있을 연말 모임에는 고량주를 한번 드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지만, 고량주는 53도나 되는 독한 술이다. 독한 술을 마시다 보면 자칫 흥에 취해 말이 많아질 수도 있다.

‘붉은 수수밭’ 원작자의 필명은 모옌(막언/莫言)이다. 문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필명으로 사용하는데, 없을 막(莫)에 말씀 언(言) 자로 ‘말을 삼가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는 ‘말조심’, 특히 정치, 종교 이야기는 제발 안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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