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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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편이냐?
Hwanghyunsoo

 

며칠 전 미국 뉴저지에 있는 친구가 단톡방에서 “이거 한번 해봐. 동아일보에 ‘진보’인지 ‘보수’인지 정치 성향을 테스트하는 것이 있어서 해보았더니, 결과가 이렇게 나왔네. 어? 정말 의외의 결과야. 내 생각에는 꼴통은 아니더라도 보수 쪽으로 한참 가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너희들도 <dongatest.donga.com>으로 들어가서 해봐.”라고 문자가 왔다.

 친구의 결과는 ‘진보에서 51번째, 보수에서 50번째’로 나왔고, 나도 해보았더니 진보가 52, 보수가 49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실 이 정도면 진보나 보수인지를 따지기보다 ‘중도’라 할 수 있는데, 꼭 2파로 편 가르기를 하는 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보수와 진보가 부딪치는 이유는 대개 ‘경제 이슈’이지 싶다. 전통적으로 보수는 경제 성장과 시장 원리를, 진보는 분배와 국가의 개입을 강조한다. 세부적으로도 입장 차가 있다. 최근에는 ‘복지’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은 이런 보수와 진보의 철학과 활동을 주로 정당을 통해 받아들인다.

고국의 경우는 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 사이에 ‘친북’이라는 이슈가 하나 더 들어간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느냐?’ 또는 ‘이념적으로 친북이냐?’로 구분한다. 친북이면 진보이고, 아니면 보수라고 편을 가른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정치 이야기로 다투다 보면 ‘너, 빨갱이지?’, ‘극우 꼴통이냐?’ 하는 앞뒤 없는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이 ‘틀’ 안에서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진보, 국민의힘은 보수당이라고 한다. 언뜻 맞는 것 같지만, 요즘 보면 양당 모두 진보 같지도 않고 보수 같지도 않다. 어느 학자는 ‘권력 지향적인 보수당’이라 하는데 그 말이 옳아 보인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집권과 당선이다. 이를 위해 선명한 철학 없이 보수와 진보를 왔다 갔다 하고, 그러다 보니 국민의 90%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보건복지부 장관직 제의를 뿌리친 송호근 포스텍 교수는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이란 책에 자신은 '중도파’라고 이렇게 밝힌다. "영역과 대상에 따라 좌우를 진자(振子) 운동하는 자유 부동적 인간이다. 어떤 정권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이타적 유형이 아니다. 다만 진자 운동하는 그 폭이 중도를 기점으로 좌우 얼마쯤에 걸쳐 있을 뿐이다. 중도파라 불러주면 고맙다. 좌파정권이 집권하면 중도우파로, 우파정권이면 중도좌파로 변신을 거듭했다."라며 ‘권력에 맹종하지 않는 사람은 장관 해먹기 어렵다’는 생각을 우회적으로 고백한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도파를 이렇게 말한다. “한국리서치와 한국갤럽의 최근 2년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중도의 비율이 전체 유권자의 40~45%에 이른다. 보수(25% 내외)나 진보(30% 내외) 비율보다 훨씬 더 많다. 이렇듯 중도의 수요는 높지만 정치권의 공급은 형편없다. 중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괴리야 말로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인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중도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 영역에선 중도는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이를 때마다 소환되곤 한다. '중도의 세력화'가 이루어져야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파괴적 정치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라고 말한다.

이 지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양대 정당은 분열의 중심에 있다.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고, 무조건 상대방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이해와 공감은 없고, 중간에 있는 사람은 ‘너는 회색이다’라며 몰아간다. 하물며 개인적으로 보면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정당 소속 의원만 되면 개인의 주장은 없어지고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투쟁한다. 그러지 않으면 속한 정당에서 쫓겨나게 되고 다음 선거에서 공천도 받지 못한다.

요즘은 이런 보수와 진보의 틀에 젊은이들까지도 끌어들여 편을 나누려 한다. 젊은 유권자들의 표가 탐나기 때문이다. 여, 야는 상대당에서 나온 모든 의견을 무조건 반대한다.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추진했던 일에도 반대를 하고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도 모두 제자리걸음이고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이곳 해외에서도 하나 생기는 것도 없는데 보수, 진보로 편을 가르는 경우가 많다. 새로이 단체장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은 진보야! 아니야, 지난 보수 정권에서 한자리 했잖아?” 등 말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해외 동포가 '왜 모국 정치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나?' 하실 텐데, 요즘은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고국의 주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정치인이나, 대권 주자들의 가십 뉴스가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대화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라고 하면 자기주장이 없어 보이고 기회주의자 같아 보인다. 사실 편 가르기를 하려면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중도파는 그러질 못한다. 그러다 보니 대충 이쪽저쪽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그렇다고 양 쪽의 주장을 다 믿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수웅 칼럼니스트는 어느 지식인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중도는 설 땅이 없죠. 좋든 싫든 한 진영을 선택해야 발언과 영향력, 자리와 계급을 보장받거든요."라며 중도파가 처한 상황을 묘사했다.

늘 그랬듯이 편 가르기에 동원되는 명분은 '정의'와 '이념'이다. 자기편이 권력을 잡아 더 많은 이익을 누려보겠다는 욕심이 클수록 말은 그럴듯하고 더욱 화려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계속 묻는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중도로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다시 처음의 <보수, 진보 정치 성향 테스트> 이야기로 돌아 간다. 단톡방의 다른 친구가 궁금했는지, “너는 어떻게 나왔어?”하고 물어 왔다. “어, 나는 양파인데…”했더니 “ㅋㅋㅋ 벗겨도 벗겨도 속을 모르는…”라고 해서 그냥 웃고 말았다.

친한 친구일수록 정치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늘그막에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 이야기로 얼굴 붉힐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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