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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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애의 아름다운 ‘안구 기증’
Hwanghyunsoo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15여 년 전부터 신부전증을 앓고 계셨다. 신부전증은 신장, 다시 말해 콩팥 기능이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해 생기는 병. 초기에는 손발이 붓고 소변에 거품이 많이 생기거나 황갈색으로 변한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주요 원인인데, 처음에는 약물 치료를 하다가 오래가지 않아 보름에 한 번 혈액 투석 치료를 시작한다.

투석은 인공 신장기를 이용해 피를 뺀 뒤, 노폐물이나 과도한 수분을 걸러낸 다음, 다시 몸 속으로 넣어주는 치료다. 그러다가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시기 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까지 투석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오빠, 엄마가 아무래도 오래 사실 것 같지 않아”하고 연락이 오면 서둘러 가야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면 어머니는 신기하게 기운을 차리셔서, 그런 왕래를 대여섯 번을 하게 된다. 투석은 보통 3시간 정도 누워서 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이런 치료를 힘없는 노인이 이틀에 한번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한 번은 투석 치료를 마치고 기운이 좀 있으신 것 같아 점심 식사를 하자고 했다. 원래 신부전증 환자는 짠, 단, 매운 것을 먹으면 안 돼서 외식을 거의 못했지만, 그래도 토론토에서 온 아들이 모처럼 하자고 하니 흔쾌히 따르셨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네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내가 죽으면 장기 기증을 하려고 해. 그런데 자식들 확인을 받아오라고 하니, 네가 온 김에 사인을 좀 해줘라”고 하신다. 타국에 떨어져 어머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일 때가 많았는데, 무슨 소린지 짜증이 났다.

“어머니! 어머니는 투석을 하시는 분이… 여기저기 장기가 상해서 누구에게 기증할 것도 없어요. 심장 수술도 하시고 무릎 연골… 그리고 멀리서 온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른 애들은 뭐래요?” 하니, “현숙, 현실이도 펄쩍 뛰지. 그러니까 네가 잘 이야기해서 사인 좀 해줘라.” 하신다.

‘힘들게 투석까지 하시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데 장기 기증이라니,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 몸에 수술 자국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식사가 어머니와 단둘의 마지막 자리였는데, 겁도 나고 그저 화만 내서 너무 후회된다. 그 뒤 어머니는 치매가 오는 바람에 ‘장기 기증’에 대해 더 이상 조르지 않으셨다.

며칠 전, 한국에서 같은 직장, MBC 방송문화연구소에 다녔던 후배 사우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20대 말쯤 직장에서 만났으니 토론토 시절까지 합하면 이래저래 30여 년은 됐고 아내와는 ‘언니, 동생’ 하는 절친이다.

그녀는 1999년에 이민 와 비디오 대여점을 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육종암이 발견되어 갈비뼈 3대를 자르는 큰 수술을 한다. 그리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꾸준히 해서 완치가 되는 것으로 본인뿐만이 아니라 가족도 알고 있었는데, 한 달 전 ‘암이 온몸에 퍼졌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도 몇 달은 더 시간이 있겠지?’하는 희망을 가졌는데, 1주일 만에 응급실로 가 숨을 거둔다. 이제 겨우 60세를 넘겼는데, 너무나 허망한 일이어서 소식을 듣고 슬프기 이전에 머리 한 곳을 둔탁한 둔기로 맞은 듯 멍했다.

 그녀의 카톡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그래도 환갑은 넘겨 살았으니 감사해야지. 모두 행복합시다. 매 순간…”이라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듯한 문구가 있다. 그녀는 평소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소로 사람을 대했다. 침착한 성격으로 한 번도 흥분하거나 목소리가 커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를 추모하는 단톡방에는 ‘착하고 지적이고, 고우신 이민애 님’,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가슴이 먹먹하네요’ ‘보고 싶습니다’ ‘같이 했던 시간들이 너무 생각나요’ ‘참담하군요’라는 추모의 글이 채워지고 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 집 근처에 있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폐에 차 있는 복수를 체스트 튜브로 1.5리터 정도를 뺐고, 다행히 호흡이 돌아왔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가족들이 다 함께 있을 수 없기에 그녀의 남편은 딸과 아들에게 간호를 맡기고 밤 2시경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마자 병원에서 비상 전화가 와서 달려가 보니 바로 숨을 멈춘다. 허망하고 정신이 없는 경황 중인 남편에게 약 2시간 후에 어디선가 전화가 온다.

“고인의 가족 되시죠?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이민애 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장기를 기증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족분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고인은 장기 기증을 하셨지만, 그동안 암 투병을 하셔서 장기들이 거의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안구는 정상이어서 지금 필요로 하는 대기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안구는 6시간 내에 수술을 하여야만 재활이 가능합니다. 힘드시더라도 가족들이 서둘러 동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예, 알겠습니다. 가족들과 상의한 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남편은 아내의 ‘장기 기증’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딸과 아들에게 “엄마가 장기 기증을 했는데, 너희들의 동의가 필요해. 어떻게 생각하니?” 하자, 딸은 바로 “엄마 뜻에 따라야지”라며, 동생에게 ‘네 생각도 그렇지?’라는 눈 빛으로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인은 안구를 기증하게 됐고, 5시간 후 병원으로부터 “기증하신 안구는 수혜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을 마쳤습니다. 덕분에 수혜자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 형태의 이웃 사랑 중에 장기 기증이야 말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장기 기증에 대해 인색한 것 같다. 부모가 주신 몸을 잘 보존하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것이 불효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뜻 용기 내지 못하고 어렵게 기증을 서약해도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식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아, 나부터도 어머니의 장기 기증에 동의 안 하고 ‘화’부터 냈었다.

2019년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에서 장기 기증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스페인인데, 100만 명당 49명이 장기 기증을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캐나다는 절반도 안 되는 20명이라는 보잘것없는 수치를 기록했는데, 온타리오 주에 살고 있는 캐네디언의 85%는 기증을 지지하지만, 장기 기증을 서약하는 사람은 3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2021년 4월 기준으로 온타리오 주에 1,6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제때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3일에 한 명꼴로 생명을 잃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절박해지기 전에는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고인도 죽음의 문턱에서 이웃 사랑을 몸으로 실천했다. 이민애 님의 장기 기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자꾸 여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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