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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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네디언이 만든 ‘바스켓볼(Basketball)’
Hwanghyunsoo

 

 요즘 TV를 보면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출연한다. 이들을 ‘스포테이너’라 부르는데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재능과 끼가 있는 스포츠 선수 출신의 방송인을 말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들이 글자 그대로 스타이기 때문이다. 스타도 그냥 스타가 아닌 국민 영웅이다. 중년 이상의 시청자는 요즘 나오는 탤런트나 가수, 개그맨은 잘 모르지만 스포츠 스타는 나이에 상관없이 대부분 다 안다.

 각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은 대개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 진정성이 우러나는 투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호감을 준다. 더불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많이 해봐서 적극성과 ‘끼’까지 지니고 있다.

 나는 일요일이면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모여 농구하는 JTBC의 <뭉쳐야 쏜다>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허재와 현주엽을 감독으로 내세우고 축구 선수 안정환과 이동국, 야구의 홍성흔과 김병현, 배구의 방신봉, 체조의 여홍철, 테니스의 이형택, UFC의 김동현과 윤동식 등 선수들의 우스꽝스러운 농구 도전기는 자연스럽고 리얼리티 한 예능이어서 좋다. 이 <뭉쳐야 쏜다>를 보다, 그동안 잊었던 농구에 대한 기억이 떠 올랐다.

 1990년대는 한국 농구의 전성시대였다. 농구가 이렇게 인기를 갖게 된 것은 1994년에 방영한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 때문이지 싶다. 이 드라마는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던 여학생들을 농구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게 된다. <마지막 승부>는 MBC 미니시리즈로 장동건, 심은하, 손지창, 이종원, 허준호, 박형준, 이상아, 신은경 등의 청춘스타들이 출연한 최초의 농구 드라마였다. 최고 시청률이 48.6%나 될 정도였고, 따라서 대중들의 농구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마지막 승부> 덕에 당시 최고의 농구 대회였던 <농구대잔치>의 인기도 함께 치솟았고, 덕분에 스타 농구 플레이어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대접을 누렸다. 물론 <마지막 승부>가 나오기 전에도 대학 농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실업팀들을 압도하는 실력으로 한국 농구를 이끌었다. 연세대는 ‘국보급 센터’ 서장훈, ‘컴퓨터 가드’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등이 있었고, 고려대는 ‘매직 히포’ 현주엽, ‘에어본’ 전희철, 김병철 등의 호화 멤버로 <농구대잔치>의 정규 리그를 휩쓸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그 앞, 1980년대 말에는 중앙대의 전성시대였다. 허재, 강동희, 김유택 트리오는 대학리그뿐만 아니라, 실업팀들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실업팀 기아가 창단되면서 모두 함께 간다. 거기에 한기범, 강정수 등 중앙대 출신이 합류하고 연세대 출신인 유재학, 정덕화마저 창단멤버로 확보하며 기아의 독주시대가 시작된다.

 경기내용 면에도 쉴새없이 터지는 3점슛과 번개같은 속공, NBA 선수들만 가능한 줄 알았던 덩크슛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농구대잔치>는 90년대 초반부터 명실상부한 겨울 스포츠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이곳 토론토에도 1995년에 창단한 랩터스(Raptors)라는 농구팀이 있다. NBA 중에선 유일하게 연고지가 캐나다인 팀으로 2019년에 NBA 파이널 우승을 할 정도로 실력이 있다. 물론 창단 후 첫 챔피언 등극에 성공한 것이지만, 기라성 같은 미국팀들을 제치고 우승을 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토론토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였다. 틈만 나면 독립시켜 달라고 조르는 퀘벡(Quebec) 마저도 잔칫집 분위기였다.

 하지만, 샴페인을 딴지 얼마 안되어 스타플레이들이 ‘돈의 유혹’에 못이겨 미국팀으로 이적하게 되어 지금은 전력이 예전같지 않다. 올해 랩터스는 캐나다정부의 방역지침으로 토론토에서 경기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번 시즌동안 미국 탬파베이(Tampa Bay)를 임시 연고지로 사용하고 있다. 타지역을 1년 내내 홈으로 쓰게 되면서 기존의 홈 어드밴티지 이점을 거의 누리기 힘든 것도 경기력 저하의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랩터스는 다른 팀에 비해 스타플레이어는 비록 없지만 나름 주머니 사정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하여 최상의 결과를 내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토론토가 미국의 변방이지만, 캐네디언이 ‘농구’하면 괜스레 자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바로 농구를 만든 이가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이라는 점이다. 농구가 탄생하게 된 것은 북미지역의 추운 날씨 때문이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YMCA 직업학교 체육교사였던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는 직장 상사로부터 학생들이 겨울철에도 즐길 수 있는 놀이를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는다.

 당시만 해도 겨울철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고작해야 체조나 무용 등이었는데, 학생들은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말썽을 피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네이스미스는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실내놀이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다 마침 어린시절에 동네친구들과 했던 놀이가 생각났다. 온타리오 알먼트(Ontario Almonte)라는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는 종종 친구들과 주먹만한 돌을 바구니에 던져 넣는 놀이를 하곤 했다. 네이스미스는 이를 응용해 야채 바구니를 나무에 매달아 놓고 축구공을 넣는 놀이를 만들었다.

 네이스미스는 학생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럭비나 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이 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볼을 갖고 달리면 수비자가 이를 막으려고 태클로 저지할 것이 분명할텐데, 그 때문에 드리블 대신 패스로 볼을 골대 근처까지 옮기도록 규칙을 정했다. 공은 던지거나 튀기도록 하고, 슈팅은 머리 위에서 곡선을 그리도록 했다.

 1891년 12월, 대망의 첫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규칙을 이해시킨 네이스미스는 그때서야 가장 중요한게 빠진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축구공을 넣을 박스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체육관 관리인에게 “박스 2개만 급히 구해달라”라고 부탁했다. 한참을 찾아 헤맨 관리인은 박스 대신 복숭아 바구니 2개를 내밀었다. “뭐, 그것도 좋겠군.” 네이스미스는 복숭아 바구니를 3미터 높이에 매달았다. 농구가 오늘날의 ‘바스켓볼(Basketball)’이 된 결정적 이유다.

 그렇게 탄생된 농구는 세월이 지나 1932년에 국제농구연맹이 결성되고 통일된 농구 규칙을 만들어 세계에 보급한다.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지금의 겨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된다.

 토론토의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집 앞마당에 설치한 농구대에서 농구를 하는 10대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학교에 가야만 농구골대가 있었다. 그나마도 농구장 양쪽 링을 수백 명이 나눠 사용해야 했으니 수업이 끝나면 경쟁하듯 농구장으로 뛰쳐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농구장에 도착해도 벌써 수십 명이 다닥다닥 몰려들어 있었기 때문에 볼을 몇 번 던지다 보면 쉬는 시간이 끝나 버리곤 했다. 운동 후, 아무리 땀을 뻘뻘 흘리고 놀아도 수돗물에 얼굴 한번 씻어내면 세수 끝이다. 나에게도 농구를 땀냄새 날만큼 좋아했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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