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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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습, ‘매작과’
Hwanghyunsoo

 

 신입사원 시절, 일년에 두번 정도 돌아가며 숙직을 섰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근무했는데, 주로 시청자들의 민원전화를 받거나 비상시에 담당부서에 연락하는 것이 주업무다. 경력사원과 신입사원이 2인 1조로 숙직을 했는데, 전화는 주로 후배가 받았다.

 

 밤 11시경에 벨이 울렸다. “네, 엠비씸니다.” 상대방이 대뜸, “야, 사장 바꿔!” 놀라서, “네? 누구시죠?” 술을 한잔 드신 듯 무턱대고 “느네가 이렇게 드라마를 엉망으로 만드니까, 나라꼴이 이 모양이지. 무슨 고려시대에 시녀들 옷이 다 조선시대 것이니 말이 되냐?”하며 시비조로 시작한 대화가 20여 분이 지나도 끊지를 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선배가 그냥 끓어 버리라고 사인을 계속 보낸다.

 그래서 “네, 예~ 알겠습니다.” 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끓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전화해댔다. 그 목소리다 싶으면 바로 끊었다. 그렇게 5~6번째 벨이 울리자 참다못한 선배가 전화를 받아 “여보세요. 누구신지 성함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십시오?” “뭐, 내가 누군지, 니가 알면 어떡할 거야” 선배가 “성함을 말씀하셔야 저희가 조치를…”

 “뭔, 개수작이야. 나랑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엠비시를 안 보는 거야.” 선배가 “뭐라고요? 어르신, 말씀이 지나치신 것…” 하자, “야, 이 새끼야! 이제부터 다시는 엠비시 안본다…”며 욕을 하자 선배가 화가 나서 “그러면 보지 마세요” 하며 수화기를 던져 버렸다. 나는 놀라 재빨리 전화선을 뽑아 버렸다.

 1980년대의 웃지 못할 방송사 숙직실 모습이다. 당시 사극 드라마 경우에는 제작비가 충분치 않아서 주요 배역들이 아닌 시녀, 포졸 같은 단역배우의 의상은 시대와 상관없이 거의 비슷한 의상을 돌려가며 입었다. 무대 배경도 지금처럼 야외 촬영이 아니라 스튜디오 촬영이 대부분이어서 무대 배경이나 소품들이 시대에 맞지 않게 엉뚱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극 드라마가 방영된 날에는 이런 비슷한 항의 전화가 많았다.

 지난주에 SBS 퓨전사극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역사 왜곡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누리꾼들의 압력을 버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SBS에 따르면 애초 16부작으로 기획됐던 드라마는 80% 촬영을 마친 상황이라고 한다. 제작비도 320억 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구마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태종과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악령에 맞서 벌이는 혈투를 그린 판타지 드라마다. 첫주 방송이 나가자마자 중국풍 논란에 휩싸였다. 첫 회에 방송된 연회장면이 문제가 됐다. 중국 명나라를 통해 조선에 들어온 가톨릭 구마 사제를 맞이한 식탁에 월병, 삭힌 오리알, 중국식 만두 등이 올랐고, 극중 의상과 군사들이 사용하는 검(劍)이 중국 것이란 지적을 받았다.

 동북공정으로 커지는 반중 정서에 불을 지피며 시청자 불만이 폭발하자 주요 광고주들이 광고 철회를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조선구마사>의 해당 내용을 지적하면서 "한국은 중국문화를 베껴갔다"는 식으로 공격한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서둘러 드라마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무슨 판타지 드라마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둘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은 페이스북에 “한국 TV 역사 드라마는 몇몇 등장인물 외에는 완벽한 판타지”라며 “<대장금>에 나오는 음식은 조선에 있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볼까”라며 “조선 왕이 장금이 같은 궁녀가 요리한 음식 먹으며 이게 맛있네 저게 맛없네 품평을 했다고 생각하나? 판타지면 판타지로 보고 말지”라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나는 아무리 판타지 드라마라도 조선 식탁에 중국의 대표과자인 월병을 놓은 것은 세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 지나간 일이지만 월병 대신, 조선다과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다. 조선다과인 매작과(梅雀菓) 말이다. 매작과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과자다. 밀가루에 참기름, 꿀을 넣고 기름에 지져서 만드는 후식이다. 옛날에는 제사, 혼례, 연등회 등에 많이 쓰였고 주로 명절에 만들어 먹었다.

 


 매작과는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 만드는데 여러가지 천연재료를 섞어 다양한 색상과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매작과는 이름부터 아름답다. 매화 매(梅), 참새 작(雀)을 써서 매작과(梅雀菓)라고 부르는데, 과자의 모양이 ‘마치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양과 같다’는 뜻을 갖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밀가루로 튀긴 유밀과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는 불교국가라 살생을 금했기에 어육류를 제사상에 올릴 수 없었는데, 그것 대용으로 물고기 모양의 유밀과나 매작과 따위를 제사상에 올렸다. 튀김 과자의 소비량이 지나치게 많아지자 제사상에 유밀과 대신 과일을 올리게 했다고 한다. 그만큼 밀가루와 기름이 비싸고 귀했던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매작과를 좋아했다. 그 당시 고려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지금도 몽골의 과자 중에는 이 때의 교류로 영향을 받은 매작과와 모양이 비슷한 과자가 있다고 한다.

 또한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출두할 때 변사또가 한손에 매작과를 들고 깨작거리고 있는 장면이 있다. 변학도는 남원(도호) 부사인데 도호부사는 종3품 관직이다. 현대 군대로 치면 준장급이다.

 당시 밀가루나 조청이나 모두 사치재로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정승급조차도 사사로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일개 도호부사가 매작과를 먹어댔으니 얼마나 부정부패와 수탈로 얼룩진 자인지 알만한 노릇이었다.

 한편에 20억 정도를 드린 드라마가 누리꾼들에 의해 바로 내려지는 시대가 되었다. 셀폰의 인공지능 앱으로 중무장한 똑똑하고 적극적인 시청자들 때문에 이제 과자 하나라도 허투루 놓았다가는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그때그때 검증과 확인을 거쳐 뜻을 같이 하는 누리꾼들을 모아 여론을 모은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숙직실에 전화를 했던 누리꾼들은 진정한 열성 사극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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