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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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 기생 ‘세리’
Hwanghyunsoo

 

만화가 조주청의 <밤의 여인>이라는 글을 보고 ‘이거, 영화로 만들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에 각색을 좀 해봤다. 이야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초기 개항인 제물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제물포에는 노동 계층을 상대로 하는 목로주점이나 방술집이 고작이었다. 조금 발전한 곳이라야 술시중을 드는 여자가 있는 정도였다.

이후 미곡 수출이 증가하고 화물 유통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부유한 객주, 일본 상인들이 생겨났다. 거기에다 현물 없이 쌀을 팔고 사는 미두꾼들까지 모여들면서 이들의 돈이 요릿집 탄생을 부추기고, 기생집까지 등장케 했다. 물론 이런 유흥 시설을 만든 것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의 성적 취향과 습벽이 워낙 그러해서, 우리에게는 없던 시설인 기생집과 유곽을 들여놓은 것이다.

 

발단: 여자 아이가 대장간 굴뚝 옆에서 거적을 덮고 밤을 새우고 국밥 집 앞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지나가던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뚫어지게 내려다본다. “어디 보자.” 거지 아이가 놀라서 일어서자 그 여인은 아이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거지 아이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더니 두말없이 따라갔다.

그녀가 들어간 집은 포구에서 멀지 않은 한옥이다. 먹을 것을 챙겨 주고 물을 데워 목간을 시켰다. “이름이 뭐냐?” “오미화 예요.” “촌스럽다. 몇 살이냐?” “열한 살.” “못 먹어서 여덟 살 골격이다. 쯧쯧….” 그 여인은 미화의 몸을 씻으며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더듬었다.

목욕을 마치고 안방으로 와 감싸고 온 치마를 치우고 “일어 서거라.” 여인은 미화의 엉덩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미화는 덜컥 겁이 났다. “너는 오늘부터 이 집 식구다. 나를 이모라 불러라.” “오늘부터 너의 이름은 세리다, 오세리. 알았지?” “네. 이모님.”

 

전개: 이모네 집은 제물포의 최고급 요릿집으로 하루에 딱 두 번, 예약 손님만 받았다. 이모 풍매는 제물포에서 알아주는 기생이었다. 천하의 명기도 세월한테는 이길 수가 없어 서른이 되자 눈 밑에 자글자글 주름이 지고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 들던 손님들도 더는 찾지 않았다. 풍매는 영리했다. 벌과 나비가 찾아들 때 돈을 모았다가 새파란 기생들한테 밀리자 서슴없이 그 바닥에서 나와 요릿집을 차린 것이다.

자식도 없고 서방도 없는 풍매는 늙고 병들었을 때를 대비해 딸 하나를 만들어야 했다. 일 년이 지나자 세리가 꽃처럼 피어났다. 어느 날 풍매는 세리를 앉혀 놓고 “오늘부터 나를 엄마라 불러라. 너는 내 딸이다”라고 했다. 감격한 세리가 일어서더니 큰절을 세 번 올렸다. 세리는 일곱 살 때까지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워 글 솜씨가 있었다. 풍매는 요릿집 치부책을 세리에게 맡겼다.

세월이 흘러 세리는 아리따운 여인이 됐다. 세리는 색 끼가 있으면서도 지적이었다. 그녀의 미모와 재기 넘치는 화술에 혀를 내두르지 않는 손님이 없었다. 그때 제물포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기생집이 매물로 나왔다. 풍매도 잘 아는 주인 여자의 기둥서방이 소금 장사를 한다고 통 크게 놀더니 쫄딱 망해 넘어진 것이다.

풍매가 얼른 계약금을 찔렀다. 요릿집을 팔아 중도금까지 치렀는데 잔금 천이백 냥이 모자랐다. 잔금 치러야 할 날짜는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쫓아다녀도 팔백 냥이 모자랐다. 이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돈놀이하는 큰손들이 일부러 돈줄을 막아버렸다. 기진맥진한 풍매가 드러누웠다.

 

그 와중에 세리는 가출을 했다가 사흘 만에 돌아온다. 드러누운 엄마, 풍매 손에 팔백 냥 돈표를 쥐여줬다. 요릿집에 들락거리며 머리를 얹어주겠다고 진작부터 세리에게 마수를 뻗쳤던 갑부 황 선주(船主)에게 첫날밤을 조건으로 팔백 냥을 얻은 것이다.

제물포 한복판 천여 평 대지에 연못을 가운데 두고 별당이 일곱 채나 빙 둘러앉은 기생집이 풍매 품에 안겼다.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기생들의 창 소리와 고수의 흥겨운 장단 덕에 손님이 넘쳐났다.

청나라 광저우로 가는 황 선주를 졸라, 무역선에 세리가 동승한다. 용왕호는 높새바람을 안고 남서쪽으로 떠난 지, 스무 하루 만에 광저우에 닿았다. 황 선주가 충칭으로 자전거 사업을 하러 간 사이에 세리는 거기서 멀지 않은 천하의 색향 둥관으로 구경을 간다. 둥관은 화류계에 몸담은 여인이면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유흥의 성지였다.

두 달 후, 용왕호가 출항하는 때를 맞춰 세리가 짐꾼을 앞세우고 포구로 돌아와 승선했다. 그때 둥관 유곽에서 만났다는 박차정이라는 여인과 함께 온다. 박차정은 색향에서 배운 기상천외한 유흥업소 운영 기법을 세리에게 전수하고 이 소문을 들은 한량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세리는 광저우에서 유곽만 보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친구인 독립운동가 김석을 만나, 나라의 독립을 위한 밀정 교육을 받았다. 세리의 부모도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셨는데,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길거리를 헤매는 신세가 됐던 것이었다.

 

위기: 세리 엄마 풍매가 드러누웠다. 백약이 무효. 병은 점점 깊어가 곡기를 끊더니, 가을바람이 스산한 시월상달에 풍매가 눈을 감았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탈상을 했다. 기생집을 다시 열자, 사십구재 때 언뜻언뜻 봤던 이십 대 중반의 젊은 선비가 나타나 집문서를 보여주며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풍매는 세리를 이용만 해먹고 재산을 물려준 사람은 결국 친정 조카였다.

세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네 주인 나으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그믐날에 치부책 결재를 해주십시오.” 스물다섯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골방에 처박혀 책만 보느라 세상 물정도 모르는 선비가 복잡한 기생집을 떠맡았으니 세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벌써부터 기생집 수익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해지고, 일본 상인들의 고급 정보가 상해의 임시 정부로 보내졌다.

그믐날이 되자 시골에서 주인 선비가 올라와 치부책을 결재하겠다고 기생집을 찾아왔다. 쉰 여명의 기생들이 제 옷을 찾아 입고 화장을 하느라 부산하고 드넓은 부엌에서는 땅땅 칼질 소리에 얼이 빠진 젊은 선비는 내실로 모셔졌다.

 술상이 들어오고 세리가 들어오고 문이 잠겼다. 이튿날 아침, “서방님 잘 주무셨습니까?” 젊은 선비는 최면에 걸린 듯 세리에게 집문서를 넘겼다. 그 후 젊은 선비는 세리의 설득으로 상해와 제물포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다.

 

결말: 제물포에 거지들이 자취를 감췄다. 황 선주의 염전으로 가고, 조기 잡이 배를 탔다. 광저우에서 온 박차정은 사실 조선 독립군 비밀 요원이었다. 그녀는 제물포 부두 노동자 총파업, 성냥공장 방화 사건 등을 배후에서 조종했고, 다리 밑 움막집 거지들을 계몽시켜 요원으로 포섭한다.

그들은 세리가 마련해준 열두 채의 집으로 들어가 살며 제물포 거상들 밑에서 일하며 신분을 숨기고 활동했다. 제물포 기생 세리의 독립군 지원은 1945년 해방 때까지 계속된다.

 

등장인물 배역: 영화의 흥행은 캐스팅이 중요하다. 이왕 각색을 했으니 배역도 재미 삼아 구상해 본다. 물론 내 맘대로의 꿈같은 캐스팅이다. 일단 감독은 봉준호여야 한다. 그래야 배우 캐스팅이 자유로울 수 있다. 정작 봉준호는 팔짝 뛰겠지만…

주인공 세리 역에는 배우 수지(1994)나 설현(1995) 중에 결정하면 좋겠다. 풍매는 손예진(1982), 황 선주는 류승룡(1970), 젊은 선비는 차은우(1997), 독립군 김석 역에 박중흥(1966)이다. 이외에 인천 출신 최불암, 성동일, 김구라, 이소라, 유인영, 지상열, 효린, 정다빈, 고경표, 민호, 염경환, 정석원 등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일단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봉준호 감독에게 연락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투자자를 찾고, 프로듀서를 선정해야 한다. 기획자는 항상 머리에서 마음까지가 힘들다. 물론 마음에서 발까지는 더 힘든 여정이다. 그나저나, 혹시 봉준호 감독 연락처 아시는 분 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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