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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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
Hwanghyunsoo

 

“요즘 뭐 볼만한 거 있어?” 하는 안부 전화를 자주 받는다. 팬데믹으로 집 안에서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남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궁금한 거다. 나라고 별 다를 게 없는데, 몇 주 전부터 재미있게 보는 방송이 있어 소개한다. 바로 JTBC에서 매주 월요일에 하는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시작한 새로운 예능으로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한 방송이다.

참가 조건은 단 하나인데, 한 장이라도 앨범을 낸 적 있는 가수라면 누구나 도전이 가능하다. 설 수 있는 무대와 길을 잃어버렸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의 장을 준다.

 ‘다시 나를 부른다’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얼굴은 본 듯한 가수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더불어 트로트 일색인 2020년대의 음악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발라드, R&B, 포크, 락,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출연해 신선하다. 그 동안 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 이런 형식의 오디션이 가능할까 했는데, 효과적으로 장르와 인물들을 추려 맛을 냈다.
 

▲ <싱어게인>은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서 한번 본 듯한 가수들을 만날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착한 예능'이라는 것이다. 1회당 약 1시간 45분 정도로 구성되지만, 서바이벌로 떨어지는 출연자가 4분의 1 정도여서 다른 오디션처럼 출연자의 반씩 떨어지는 불안감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앨범을 발매해 본 경험이 있는 가수들이어서 그다지 실수가 많지 않고 품격 높은 가창력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오디션에 참가하는 가수들에게는 그 동안 못 나왔던 애절한 사연이 있어 재미 있는데 슬픔이 연출된다.

나처럼 7080 세대들은 요즘 아이돌이 출연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공장에서 찍어 내는 상품을 보는 것 같다. 노래나 춤은 세련된 것 같은데 어쩐지 특성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 노래가 그 노래이고, 그 춤이 그 춤인 듯하다. 여러 명이 맞춰 추는 떼 춤은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각이 딱딱 맞는다. ‘아, 참 기가 막히다’고 느낄 때쯤, 다음 그룹이 더 어려운 춤을 춘다. 그러다 보니 혼자 외로이 노래 부르거나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는 왠지 초라한 느낌마저 들어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없다. 그렇게 길을 잃은 가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싱어게인>은 그런 잊혀진 가수들을 모아 만든 것 같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보장되기에 벌써부터 각 방송사들은 비슷한 포맷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해 왔다. 그 원조 프로그램 중 하나가 <MBC 대학가요제>이다. <MBC 대학가요제>는 스타 발굴의 장으로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1977년 9월,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MBC 대학가요제>의 사회자는 이수만이다. 이후 몇 년 동안 단골 사회를 본 그는, 훗날 대중 음악계의 마이더스의 손이 된다. 1회 대상인 서울대 밴드 샌드페블즈가 '나 어떡해'를 히트 치면서, <MBC 대학가요제>의 명성도 동시에 높아진다.

이후 매회 실력을 갖춘 가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배철수, 심수봉, 유열, 김창완, 노사연, 신해철, 전람회, 015B, 조갑경, 김경호, 원미경, 이한철 등이 대표적인 <MBC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당시에는 가수 데뷔를 위해서는 <MBC 대학가요제>를 도전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동양방송에서도 비슷한 <TBC 해변가요제>를 만들었지만, <MBC 대학가요제>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조금씩 과거의 명성을 잃기 시작한다. <MBC 대학가요제>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가요 기획사의 전문화와 연관이 깊다. 아이러니하게도 초창기 사회를 보던 이수만이 만든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가요 기획사들이 생기면서다. 가수 데뷔를 위한 전문적인 창구가 생긴 것이다.

<MBC 대학가요제>의 경우 수상 뒤에는 MBC 가요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정도가 특전의 전부였다. 하지만 기획사는 전문적인 서포트를 통해 H.O.T, 젝스키스, 신화 등 아이돌 그룹을 척척 키워냈다. 가수가 되기 위해 대학생이 되기까지 기다릴 필요 없게 된다.


▲제1회 <MBC 대학가요제>의 사회자인 이수만과 명현숙(1977년)

 

결정적으로 <MBC 대학가요제>가 막을 내린 것은 2010년대 이후 케이블 방송사 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히트 치면 서다.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은 창작곡이 아닌 가창만을 심사해 참여의 폭을 넓혔는데, <MBC 대학가요제>는 ‘작곡이 가능한 대학생’이라 참여자의 규제가 많았다. 따라서 실력파 뮤지션들은 종적을 감춰 버리고 아마추어 음악 지망생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되어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게 된다.

결국 2012년에 폐지된 <MBC 대학가요제>는 지난 2019년에 다시 열린다. 7년 만의 공백에도 참가팀이 300팀이 될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웠다. 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이돌 위주로 흐른데다, 그마저도 조작 논란에 휩싸여 <MBC 대학가요제>가 상대적으로 빛을 본 셈이다. 하지만, 올해 또다시 팬데믹으로 개최할 수 없게 되어 ‘한번 더’ 원조의 부활을 노렸던 MBC로서는 참 아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무대에서 잊혀진 가수들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싱어게인>은 출연자의 애절함이 묻어 있고, 시청자는 그 속에서 나를 찾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하는 소망이 있다. 특히 무대에서 잊혀진 가수들에게 그 애절함은 더욱 강하다. 그래서 그런지, <싱어게인>를 보며 내가 이루지 못한 꿈도 다시 기억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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