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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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코인 라운드리에 빨래하러 왔어”
Hwanghyunsoo

 

 3년 간의 기러기 생활을 정리하고 토론토로 온 11월 초쯤, 아는 사람은 없고 뭘 어떻게 해야 가족들하고 먹고 사나? 이런저런 고민을 할 무렵인데, 한국 직장동료가 해밀턴 근처에서 컨비니언스를 하고 있다고 해서 만나 보고 싶었다. 같이 근무한 적은 없지만, 비슷한 나이로 직장 예비군 훈련도 같이 받았고 구내식당에서 만나면 눈인사도 주고받던 사이였다. 벌써 5년 전에 왔으니 나에게 필요한 맞춤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전화로 안부를 나눴고, ‘한번 날을 잡아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몇주를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나름 신경이 예민할 때라서 ‘날 만나기 싫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전화 목소리가 나를 그리 반기지 않았던 것 같았다’는 등의 섭섭함도 생겼다. 그렇다고 다시 전화하긴 그렇고,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1월 어느 날 아침, 옥빌에 살고 있는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황 선배! 노승우 선배 아시죠?” “알지, 그러지 않아도 그 사람 한번 만나려고 전화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 수화기에서 아무 말이 없다. “… 저기, 노~승우 선배가 돌아가셨어요.” “뭐? 무슨 소리야… 그 사람 몇 달 전에도 전화 통화했는데…” 라며 물었다.

 

 그동안 무슨 암으로 고생했는데 시골에서 가게를 하다 보니 헬퍼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정기적인 치료를 못받아 화를 키웠다고 한다. 다음날 해밀턴의 한 교회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얼굴 한번 보자고 했는데…” 이렇게 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다니… 심한 충격을 받았다. 캐나다의 장례 문화에 생소했기에 죽은 사람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기도 했지만, 이어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쩌란 말인가?’

 

 슬픔에 젖은 그의 아내와 두 딸을 보며, ‘만약 내가 이곳에서 저렇게 죽게 되면 내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이 사람은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배웅하는데, 나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하는 상상까지 겹쳐지며 여러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 나는 정말 이민을 후회했다. 나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가족들이 힘든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세상은 어려운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자로 잰듯 설계한대로 살아 가지지도 않는다. 그냥 성실하게 부지런히 살다 보면 모자란 부분은 채워지고 아이들은 자라고 주위에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가장 걱정거리였던 영어도 점차 귀에 들리게 된다. 봄이 오면 여름과 가을은 덤으로 가고 겨울은 원래 춥거니 하며 견디다 보면 봄은 또 온다.

 

 유아세례를 받은 나는 혼배성사로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했고, 두 아이 모두 영세를 받았지만, 사실 고국에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하는 얍삽한 생각으로 성당을 다니게 됐다.

 

 사람의 마음이나 습관은 비슷하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사람일수록 생각이나 고민거리는 비슷하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성당 반모임은 초창기 이민생활에서 한인들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거기서 동갑내기 김진우를 만난다. 말수가 적은 친구였는데, 한양 공대를 나와 이곳에서 전자제품 수리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한맘성당 성가대 대장을 한 그는 나대지 않고 조용히 봉사하는 것을 좋아했고, 사는 곳도 근처여서 서로 왕래가 잦았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즐기는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이었다. 좋은 친구는 음식문화도 맞아야 하는데…
 

▲캐나다의 공동 묘지는 타운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스개 소리도 잘했고, 한번도 남을 험담하거나 원망하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영화나 음악도 좋아하고 내가 하는 콘서트에도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많이 도와줬다. 또한 사물을 소화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우리 가게에 가끔 왔는데, 하루는 “황형! 영스트리트(Yonge St)로 올라오다 보면 메이저 맥켄지(Major Mackenzie Dr) 지나서 북쪽 언덕을 넘어서면 고풍스러운 분위기 있잖아”, “거기는 왜?” 하며 생뚱맞은 듯 물었더니, “올해는 거기에 유난히 화분이 많은데, 무궁화가 있어!” 하며 “이곳 무궁화는 고국에서 보았던 연보라 빛의 꽃보다 흰 부분이 많은 것 같아. 꽃잎 안쪽에 진보라 물감을 한방울 떨어뜨린 것 같아”라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토론토에도 무궁화를 화초로 가꾸는 가정이 많다

 

 그 길은 비탈이고 영스트리트에서 올라오다 갑자기 좁아져서 러시아워 때는 교통 정체가 많이 되지만, 운치 있는 곳이다. 오래된 교회와 기념탑, 고목 등이 어우러져 나름의 멋도 있지만,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감상을 잊고 살았는데, 그가 깨우쳐준 것이다.

 

7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나, 지금 가게 앞에 코인 라운드리에 빨래하러 왔는데, 언제 끝나요?”하며 전화가 왔다. “아이고, 그래! 그런데 내가 이따가 약속이 있는데, 어쩌지?” 했더니, “아, 그러면 다음에 보지 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다. 그리고 사흘 뒤 그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금쯤 그가 말하던 언덕의 무궁화도 많이 시들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시들게 마련이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살아 보겠다고 이곳에 와 세상을 먼저 떠난 노승우와 김진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고 야속하다. 그들이 아직 함께 했으면 이제 자식농사도 마쳤고 시간도 많아, 같이 걸으며 추억 조각을 맞출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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