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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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아줌마’가 오면 리츠 크래커 먹는 날
Hwanghyunsoo

 

초등학교 때 서울 성동구 신당동에 살았는데 이웃에 영미네 집이 있었다. 우리 남매가 2남 2녀고 영미네는 1남 2녀였는데, 맏딸인 영미는 내 첫째 여동생과는 한 살 어리고 둘째보다는 한 살 많았다. 그래서 그 영미와 우리 여동생들이 친하게 지냈고, 그러다 보니 어머니들도 자연스레 친구로 지내게 된다.

 

그 집은 시장에서 잡곡상을 했는데, 무슨 과자회사에 콩을 납품한다고 했다. 여동생들이 영미네에서 놀다 오면 비스킷 과자를 한 줌씩 가지고 왔다. 여동생 말이 그 집에는 그런 과자를 박스로 쌓아 놓고 먹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과자 구경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우리들은 영미네 집이 대단해 보였고, 무척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 비스킷은 모양이 전부 찌그러진 것이었다. 알고 보니 과자 제조 과정에서 모양이 불량한 것들을 판매하지 못하니까, 거래처에 싸게 판매한 것이었다. 모양은 좀 그랬지만, 땅콩이 섞인 그 과자는 엄청 맛있었다.

 

어머니는 우리들이 비스킷을 마음껏 먹는 영미네를 너무 부러워하자, ‘영미 엄마’에게 부탁해 그 과자를 사서 옷장에 숨겨 놓고 조금씩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엄마 몰래 숨겨 논 과자를 훔쳐 먹다가 여섯 살 아래 남동생에게 들키고 말았다. 나는 남동생에게 과자를 나눠주며 엄마에게 말하지 않으면, 과자를 몰래 꺼내 먹을 때마다 나눠 주겠다고 달랬고 남동생은 ‘좋다’고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누가 과자를 훔쳐 먹었다.”며 우리를 불러 모았다. 우리 남매는 무릎에 손을 얹고 엄마 앞에 나란히 앉았다. 원래 도둑질은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인데, 남동생이 나도 모르게 과자를 훔쳐 먹고, 어린 나이여서 옷장 문을 제대로 닫지 않는 바람에 결국 꼬리를 밟힌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그 비스킷은 구경을 할 수 없었다. 형제 때문에 애꿎은 자매까지 야단을 맞았지만, 여동생들은 영미네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었으니, 그 비스킷을 실컷 얻어먹었을 게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먼 친척 뻘 되는 ‘미제 아줌마’라는 분이 집에 자주 들렸다. 미제 물건을 보따리에 싸 가지고 오면,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을 불러 모아 물건을 팔아 주었다. 비누, 치약, 화장품, 머플러, 과자류, 사탕, 초콜릿, 버터, 면도기, 티셔츠, 그릇 등 주로 생활용품이었는데 우리는 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들이어서 어른들 틈에 끼어 보고는 했다.

 

그 ‘미제 아줌마’는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 주어 장사가 잘 되어 돌아갈 때면, 우리들 주라고 과자를 슬그머니 놓고 물건 보따리를 챙겼다. 어머니는 난색을 하며 다시 과자를 돌려주려 했지만, ‘미제 아줌마’는 오히려 어머니에게 고맙다며 “이것을 받지 않으면 다신 오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미제 아줌마가 온 날은 미제 과자를 먹는 날이다. 내가 좋아했던 과자는 크래커인데, 불그스레한 과자에 소금 같은 것이 붙어 있고 과자와 과자 사이에 크림이 들어 있어 짠맛과 단맛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과자가 리츠(RITZ) 크래커다.

 


▲리츠 크래커는 1960년대 초만해도 ‘미제 아줌마’에게나 살 수 있는 귀한 과자였다.

 

몇 년 전 뉴저지에 있는 친구를 방문했을 때, 맨해튼은 “걸어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며 전철을 타고 가 걸어서 관광을 한 적이 있다. 그 동안 차를 타고는 여러 번 돌아다녔지만, 걸어서 맨해튼을 보는 일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곳이 첼시 마켓이다.

 

맨해튼 남서쪽에 있는 첼시 마켓은 원래 나비스코(NABISCO)제과의 공장으로 1913년부터 리츠 크래커를 비롯 오레오, 칩스 아호이 등을 생산한 곳이다. 점차 공장을 확장하게 되며 1987년에 공장이 이전하게 되고, 이후 10여 년간 다른 세입자가 들어와 있다가 이 공장 부지를 뉴욕시에서 사들여 1997년 온갖 맛집과 상점들이 입점한 독특한 분위기의 뉴욕 스타일 빈티지 식품 시장으로 바꾼다.

 

옛 공장을 허물어 버리지 않고 예전의 모습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 잘 살펴보면 옛 과자 회사의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혹시 이 친구가 내가 어렸을 적에 리츠 크래커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이곳에 데려왔나?”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뉴욕 맨해튼의 관광 명소인 ‘첼시 마켓’은 원래 리츠 크래커를 만들던 제과 공장이다.

 

실내는 처음 들어서면 어두컴컴하고 번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유명한 제빵, 제과점을 비롯해 유럽, 인도, 아프리카에서 온 이국적인 식재료를 파는 곳, 각종 향신료를 파는 곳, 서점, 요리용품을 파는 곳, 방송사 등 식품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있다.

 

랍스터 파는 곳에서 랍스터와 굴 등을 먹거나 스시 레스토랑에서 초밥을 사서 줄 서서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한국식 라면과 비빔밥을 파는 곳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연간 300만 명이 방문한다고 하는 이 뉴욕의 관광명소인 ‘첼시 마켓’을 2018년에 구글이 사들여 IT사업 관련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해 <푸드네트워크>,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 <뉴욕1뉴스>, 메이저리그 온라인 중계방송 운영 업체 <MLB 어드밴스드 미디어> 등을 유치했다.

 

이제 첼시 마켓은 제과공장에서 식품 시장으로 거기에 IT 산업의 메카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첼시 마켓에 그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운은 어릴 때 먹었던 그 과자의 추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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