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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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곽순옥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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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곽순옥. 1932년에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숭의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음. 서울에서 거주하다가 1966년 홍콩으로 이주해, 나이트클럽 코리아가든을 운영하였고, 1968년 싱가포르로 건너갔다가 1970년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하였음. 1983년 KBS 특별 생방송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 출연 차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음.) 


곽순옥은 1951년 부산 미8군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다. 외국 번안곡과 팝송을 주로 불렀고 당대의 인기 가수 박단마의 그랜드쇼단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58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세계의 휴일’ 무대를 계기로 일반 무대에 첫 선을 보인다. 육감적인 몸매와 힘차고 세련된 고음, 섬세한 감정 처리에 능한 팔색조 같은 창법을 구사해 인기를 받는다. 


그해, 작곡가 박춘석의 작품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를 받아 부르지만 당시에는 큰 히트를 치지 못했다가 1965년에 영화 <남과 북>에 주제가로 사용되어 알려진다. 하지만 그녀는 홍콩으로 떠난 후였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18년이 지나 또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KBS 특별 생방송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의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하며 재회의 시그널로 자리를 굳힌다.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은 1971년 대한적십자사가 남북 해빙 무드에 즈음해 기획한 ‘이산 가족 찾기’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적대적인 남북한 정치 상황은 당시 1000만 명에 달하는 남북한 이산 가족들의 피맺힌 염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12년이 흘러간다. 


1983년, KBS는 대한민국 안에서도 서로 찾지 못하고 있는 이산 가족을 위해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특별 생방송을 기획한다. 본래 라디오에서 10여 년간 해오던 캠페인이라서 어느 누구도 이 프로그램이 온 나라를 뒤집어 놀 줄 예상하지 못했다. 제작진 조차도 한 열 사람쯤 참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하루 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러나 남북한을 떠나 대한민국 안에서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 중에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이 밀려들자 KBS는 닷새 간의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이 만남을 주제로 하는 생방송을 진행한다. 

 

 

 


 
그해 뜨거운 여름, 여의도 KBS 본관은 매일같이 가족을 찾으러 나온 이산가족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가족의 이름을 담은 대자보와 피켓이 방송사 주위와 여의도광장을 도배했다. 피난민인 나의 어머니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긴 줄을 기다려 가족을 찾는 사연을 적어냈다. 그해 11월까지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는 단일 주제로 453시간 45분을 방송했고, 무려 1만189명의 이산 가족이 상봉한다. 


온 국민은 눈물을 흘리며 TV를 지켜봤고, 이 프로그램은 1000만이 넘는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국제시장>에서 리얼하게 재연돼 관객들의 눈시울을 촉촉하게 만든다. 

 


 

 


라디오 드라마 작가였던 한운사가 작사하고 박춘석이 작곡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이 TV 프로그램의 오프닝과 엔딩 곡으로 가슴에 담긴 슬픔의 역사를 완벽하게 전달한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노래가 잊혀질 만큼 세월이 많이 지났다. KBS 본관에 가족의 이름을 붙이고 피켓을 들었던 이들이 지금 얼마나 살아 계실까? 우리 부모의 아픔, 선조의 슬픔이 이 노래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시는 남과 북이 전쟁을 안 해야 하는, 가족이 헤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노래에 녹아 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부른 곽순옥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곽순옥은 벌써부터 우릴 버리질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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