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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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까지 번진 ‘파 그림자’
Hwanghyunsoo

누군가 내 그림자를 팔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나라면 조금 생각하다가 “얼마를 줄 건데?” 물어볼 것 같다. 2백불 정도를 주면 아예 생각도 안 할 것이고, 2천 불을 준다면 “내 그림자를 사서 뭐 할거냐?”고 묻고, 2만 불 준다면,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얼마를 받았나? 궁금해서 알아볼 것 같다. 20만 불을 준다면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하며 바로 팔아 아내와 여행이나 다니겠다.

 그림자를 팔아 부와 명예를 거머쥔 남자가 있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물론 현실이야기는 아니다. 독일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주인공 슐레일이 자신의 그림자를 정체 불명의 남자에게 팔면서 시작한다. 가난했던 그는 그림자를 판 대가로 금화가 마냥 나오는 마법의 주머니를 얻는다. 그는 왕국을 지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지만 그림자가 없어 사회에서 따돌림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로 자신의 왕국에서 쫓겨난다.

그에게서 그림자를 사간 남자는 자신에게 영혼을 팔면 그림자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방랑 길에 오른다. 그는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작가 샤미소는 프랑스의 귀족 출신이지만 프랑스 혁명 때문에 독일로 망명했다. 그리고 평생을 독일인으로 살았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그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경계인일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버리면서까지 돈을 추구하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전달하려 한 것 같다. 19세기 작품이지만, 주인공의 초라한 상태를 보며 그래도 ‘넌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주려 한 것일 게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그림자란 실체가 아니지만, 실체에 속하여 있는 대체로 어두운 부분이다. 그림자는 불투명한 사물을 빛이 통과하지 못하여 생긴다. 그러면 그림자는 누구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다. 이런 그림자는 나에 속해 있으면서 나타나지 않는 나의 어두운 측면이다. 개인으로 말하면 인격의 한 부분이면서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오히려 꺼리게 되는 인격의 어두운 부분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봉사 단체를 위해 자신이 적임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단체를 위해 희생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의 행동이나 말에서는 그의 주장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 진실성이 안 보이고 오히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주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속셈이 드러나 보이는 경우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위선적인 사람으로 보여 신뢰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은 이미 속셈을 읽어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말이나 표정에서 속셈, 진실성이나 진면목을 알아버렸는데, 당사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열을 올리는 꼴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그림자는 대개 이중적인 특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매우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그림자의 중요한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잘 알 수 없기에 스스로는 그림자에 의해 조정 당하거나 시달리기도 한다. 그림자의 이중적 특성을 개인이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이는 그림자가 자아에 속해 있지만, 의식에는 나타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 깊이 위치하는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한 자신을 주장하고 강조할수록 악한 인격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다. 이는 마치 햇볕이 가장 강한 여름의 하지 때에 그림자가 가장 짙은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도덕적인 고매한 인격자라고 알려진 인물이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수치스러운 일로 비난을 받든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바로 이런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난 결과이다.

이런 일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갑자기 부정의 수렁에 빠지고, 도덕적인 결백을 내세우는 사람이 성적 추문을 일으키고, 그리고 고매한 지식인이 권력과 금욕에 눈이 어두워 뭇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이다.

또한, 그림자의 특성은 주로 나와 다른 사람과의 갈등, 편견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대개 동일한 사람이나 대상을 두고서도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상대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는데, 또 다른 사람은 전혀 그런 감정을 갖지 않는다. 친구 중에서도 아무개를 좋아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까닭 없이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경향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와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를 더 가깝게 여기며 좋아하는 경우가 된다. 



이러한 그림자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통하고, 성격이 같은 사람끼리 가까이하게 되는데 집단적 편견으로까지 나타난다. 유교 문화의 잔재로 아직도 지연과 학연, 그리고 혈연으로 뭉쳐 집단이 가지는 편견을 확대시켜 의견이 다른 집단과 팽팽히 맞선다. 지금 우리 고국은 그 집단적 그림자들의 투쟁 싸움터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평소에 존경하는 목사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황현수씨는 좌파에요, 우파에요?” 엥, “… 저는 양파인데요.” 토론토까지 번지는 ‘파 그림자’를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한다. 겨울이 되어 파 값도 만만찮은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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