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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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쉴 때, 몸도 같이 쉬어야 한다
Hwanghyunsoo

 한국의 딸 집에 온지 벌써 십여 일이 지났는데도 시차적응을 못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든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몸의 상태와 기능이 점점 떨어지게 마련이다.

 나에게는 손녀가 둘 있다. 첫째 하엘이가 네 살이고 그 아래 다엘이가 두 살인데, 첫째가 “할아버지, 사랑해요”하며 안길 때면 정말 황홀하다.

“아빠, 하엘이 데리고 병원 갔다 올 동안 다엘이 좀 봐 줄 수 있어?” 아니, 청소나 설거지를 부탁해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 까짓 애보는 일쯤이야, 하며 “그래, 빨리 다녀와”. 추석 연휴 동안 아팠던 큰 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병원에서 다 나았다는 진단서를 받아서 제출해야 된단다.

졸지에 둘째 손녀와 단둘이 됐다. 다행히 잠자는 그네에 뉘어 놓고 묶어 놨지만, 엄마가 나가는 동시에 울음이 터진다. 이거 난감한 상황이다. 그때부터 나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자라, 자라, 자아라, 자라./ 자라, 자라, 자라, 자./ 자아라, 자아라, 자라, 자.” 하지만, 손녀는 더욱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며 달기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아! 이 방법은 아니고, 자장가를 불러야 하겠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나는 자장가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계속 주문을 외워야 한다. “자장, 자장, 자~아장, 자장, 장” 계속 외우다 보니 어디선가 들었던 멜로디다. 어디서 들었지? 아, 이건 찬송가다. 찬송가 멜로디에 가사만 “자장, 자장”이다.

다시 잠을 재우겠다는 심정으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최면술을 흉내내본다. 손녀의 눈 앞에 손가락(검지)을 하늘을 향해 일자로 편 다음에 좌우로 흔들며 주문을 해봤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한참을 울어 댄 손녀도 힘들었는지, 점차 우는 소리가 작아졌다.

아기는 흉내를 잘 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눈을 감고 자장가(?)를 부르면 따라서 눈을 감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네 앞에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비스듬히 누워 주문을 외우다가 내가 졸고 있다. 밤새 시차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는데, 최면술을 걸다가 내가 최면에 걸린 것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여러번 치켜 세우기를 반복한 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손녀도 졸기 시작한다.

사람은 힘들고 피로할 때 몸이 잠을 요구하며, 잠은 스위치가 꺼져 있는 거라고 한다. 스위치가 쉽고 빠르게 꺼지는 것도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피곤해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한다. 시차는 밤과 낮이 바뀌기 때문인데, 즉 자연의 기운은 달라졌는데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자연의 기운이 쉬는 시간은 해가 지면서부터라고 한다. 이 말은 해가 진 이후를 땅이 잠자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 잠을 자게 되는 밤의 시간을 저녁 7시부터 아침 5시까지 잠을 자는 시간으로 보았다. 해가 지면 몸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기들을 재울 때 자장가를 들려주는 이유는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인 엄마의 태반에서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주는 행위라 한다. 엄마의 규칙적인 심장 음과 불규칙적인 몸의 잡음, 아련한 진동 등 리듬있는 적당한 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수면을 방해하는 온갖 잡생각을 잊게 한다고 한다. 포근함을 느낀 아기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껴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이다.

어머니의 태반을 기억하기 어려운 나이여서인지 좀처럼 잠을 못 이룬다. 자연이 쉬는 시간에 몸도 함께 쉬어야 건강한 삶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초롱초롱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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