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55 전체: 273,090 )
소나무 숲에서 느낀 ‘고국의 맛’
Hwanghyunsoo

 

2022년 11월말. 딸이 살고 있는 동탄2 신도시에 첫눈이 내렸다. 예년에 비해 늦은 눈이다. 이제부터 고국은 본격적인 겨울이다. 이곳은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논과 밭뿐이었다는데, 지금은 30층짜리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에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그 사이를 지나는 개울 옆으로 산책 코스들을 만들어 놨다.

산책로 곳곳에 긴 의자와 체육시설 등을 해놓아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평지이고 아파트촌 사이를 며칠 걷다 보니 금방 실증이 났다. 그래서 새로운 산책 코스가 없을까, 찾아보다 근처에 무봉산이라는 곳을 알았다.

내 나라지만 왠지 혼자 산행하는 것이 낯설기도 해서 근처 성남 대장동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마침 심심했는데…”하며 선뜻따라 주었다. 무봉산은 높이가 362m로 낮은 편이지만,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 한다. 이 산에 만의사(萬儀寺)라는 절이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꽤 역사가 오랜 곳으로 고려말 이성계가 이 절에서 위화도 회군을 논의했던 곳이라 한다.

조용하고 아늑한 이 사찰은 수도권 불교 신자들이 마음 수양하러 자주 오는 곳으로 경내에는 삼층 석탑과 사리탑을 비롯해 석조지장보살입상 등의 석조물들이 있다. 사찰 내에는 곳곳에 정원을 잘 가꾸어 놨다. 벌써 꽃들은 져버려 흔적만 있고 덩굴 식물들은 담장을 타고 뿌리를 붙여 가며 타고 오르다가 말라버렸다.

같이 간 친구가 멈추더니 “이거 능소화네…”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 작가인 친구는 뭐만 봤다 하면 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능소화는 7~8월에 피는데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황꽃을 피워요”한다. “별 걸 다 아시네…”라고 했더니, “요즘에는 식물 사진 찍어서 찾아보는 앱이 있어서, 궁금하면 그때그때 찾아보면 된다”고 알려준다.

내친 김에 무봉산에 오르기로 했다. 만의사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등산로 입구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한다. <쉼터>-<헬기장>-<아흔아홉 고개>-<무봉산 정산>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처음 40분은 숨이 차서 10분이 멀다며 쉬었다가 올라갔다. 능선에 오르면 운동을 할 수 있는 넓은 터에 체육시설도 보인다. <헬기장>부터 <무봉산 정상>까지는 내려갔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해 40여분을 더 가야 한다. 토론토에서는 이런 가파른 코스를 다녀보질 않았기에 힘도 들고 땀도 많이 났다.

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제법 불었다. 아직 겨울 바람이 아니어서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바람은 때로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주고 아직도 피어 있는 풀들을 들어올려 빛을 열어 땅에 보낸다. 풀들은 바람 덕분에 밤새 붙어 있던 서리를 날려 버릴 수 있는게다.

이제 땅은 본격적으로 얼어붙기 시작할 것이다. 얼어붙은 땅은 무쇠보다 단단하다. 겨울에는 흙이 물로 인해 꽁꽁 묶인다. 땅이 얼면서 풀과 꽃들은 그 생을 다한다. 생물 중에는 겨울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것도 많다. 얼어붙은 땅은 식물뿐만 아니라 모기나 하루살이, 나무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도 없애버린다.

겨울은 아주 혹독하게 추워야 다가올 봄이 건강해진다. 사람 사는 인생사도 비슷해, 역경이나 시련 없이 젊은 시절을 산 사람들은 늙어서 그리 즐겁지 못한 것 아니겠는가?

 

산길이 좀 편해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대장동은 왜 그리 말이 많아요?”하며 물었다. “아이 뭐, 신도시가 생길 때마다, 다 그런 회색사연(?)이 있죠. 털면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한다. 그러면서 뭔가 한마디 더 붙이고 싶어 하다가, “정치 이야기는 여러 추측이 섞여 나중에는 소설이 되어 버려서…”하면서 말 꼬리를 흐린다.

‘회색사연(?)’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만, 나도 정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이내 주제를 바꿨다. <아흔아홉 고개>가 나타나면서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올라 왔다. <무봉산 정상>에 오르니 왼쪽으로 골프장이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기흥골프장이라 한다. 친구가 “이제 산 어디를 가나 밑을 보면 여기저기에 골프장들이 들어서 있다”며 걱정하듯 뱉는다.

땀도 말리고 물도 마실 겸, 잠시 쉬었다. 고요함 속에 새가 지저귄다. 산을 올라오며 뱉어낸 거친 숨소리가 이 고요함을 거슬리게 한 것은 아닐까? 이 겨울 숲에 살아 있는 것은 바람과 새소리뿐이다. 몸과 마음을 닫으면 숲 속의 새소리는 들을 수 없다. 어디선가 박새가 나타나 내 옆에 앉는다. 잠시 뒤에 또 다른 한 놈이 나타난다. 아마 정상에 오른 사람들에게 꽤나 동냥 짓을 한 듯 익숙해 보였다. 잠시 주위를 맴돌다가 내 꼬락서니가 먹이 얻어먹기는 틀린 듯, 이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박새는 참나무 숲의 터줏대감이다. 숲의 감시자인 박새는 무리 지어 다니며 아주 조그마한 침입에도 울음소리를 낸다. 때로 영악한 박새는 혼자만의 먹이를 지키기 위해 호들갑을 떨어 경쟁자를 따돌린다. 번식력이 뛰어나고 사람이 있는 환경에 비교적 잘 적응한다. 작은 새라서 온순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은 곤충을 사냥하는 육식 조류다. 까마귀나 까치보다는 못하지만, 작은 새 치고는 꽤 지능이 높은 편이다. 대부분 짝을 이루어 새끼를 기르며 살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대략 반 정도의 새끼는 불륜의 결과라고 한다.

 

무봉산은 박새가 좋아하는 참나무도 있지만, 주로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는 한반도 자연에 가장 잘 적응한 나무다. 겨울에도 항상 푸른 빛을 볼 수 있다. 잘 썩지 않으며 벌레가 생기거나 휘거나 갈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소나무 숲은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연적으로 어린 나무가 자라나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린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주위의 큰 나무들을 잘라 준다”고 한다. 마음에 짚이는 말이다. 자연적이지만, 나무의 크기가 일정하고 나무 사이의 간격이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소나무는 각각의 형태도 아름답지만, 모여 있을 때 더욱 고풍스러운 자태를 이룬다.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하고 노래하듯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나무이고 항상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토론토의 숲에서도 가끔 소나무를 보면 반가웠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지 싶다. 무봉산을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힘이 덜 들고 여유로웠다. 덕분에 소나무 숲의 정중하고 엄숙하고 과묵하고 고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국의 맛’, 하나를 더보탠 날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