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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이기철
Byunchangsup

 


세상 속으로
- 이 기 철     

 

 

나는 오랫동안 풀꽃의 생애를 노래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사에 대해서 노래하련다
이제 내 몸이 바라는 곳, 눕고 싶은 곳은
산이 아니라 물이 아니라
병이 있고 근심이 있고 자주 흰 걸레를 더렵혀야 하는
마룻바닥이 있는 집
여름에는 퇴근 길에 수박을 사고 
월말에는 세금을 내러 은행에 가는 마을
이제 나는 이념에 물들지 않은 나무보다 이념을 구겨
호주머니에 넣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선계의 산정보다 아직 청소차가 오지 않은 골목들이 좋다
등을 켜고 다가오는 별을 보면
진흙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겨워진다
제도가 있고 공장이 있고 못 만날 약속이 있는
집 옆에 집, 아, 사람이 살고 있다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영남대 국문과 교수 역임
 시집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등

 

 


아, 사람이 살고 있다

 


 이기철 시인은 학자와 시인의 두 길을 함께 가고 있는 영남의 서정시인입니다. “서정시에의 귀환은 내 주위의 모든 여리고 애틋한 것들의 참다움과 아름다움을 점차 크게 보이게 한다.”고 서정시로의 회귀를 천명한 그는 자연의 조화로움을 노래합니다.

 

 

언덕 너머에 집이 있고 길 건너에 물이 있다
 배추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져서는 안된다
 인간의 말은 너무 난해해
 소들은 풀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귀를 대고 산다
 안 보이는 곳에서 샘물이 솟고
 벌레들은 해지기 전에 가시나무 울타리에 집을 짓는다
 가본 길만 길이 아니다, 어둠 속으로 뻗은
 가보지 않은 길은 얼마나 깊고 싱싱한가
 그곳에 흩어진 마음 조각들이
 저들끼리 모여서 노래가 된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화해로움을 통해 인간들 서로가 화해함으로서 인간성을 회복하여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의 시는 자연의 옷을 입고, 자연의 신발을 신고 더 높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지상에서의 구도자의 노래”라는 평이 주어집니다. 그의 구도자의 노래는 선계의 산정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 병과 근심이 있는 우리들 마을, 집 옆에 집,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념에 물들지 않고, 이념을 구겨 호주머니에 넣을 줄 아는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오늘은 남과 북이 다시 만나는 날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날입니다. … “아,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네.” 사반세기 전, 소설가 황석영이 북녘 땅을 밟고 한 말입니다.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4.3, 4.16, 4.19… 4월은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오늘 4.27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다시 만나, 70년 분단의 고리를 끊고 하나되는, 감격의 <그날>을 향해 물꼬를 트는 역사적인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은 적이 아니라고,
 고통도 쓰다듬으면 보석이 된다고
 나는 얼마나 오래 악보 없는 노래로 불러왔던가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것
 그들이 내 친구라고
 나는 얼마나 오래 여린 말로 노래했던가

 

 내 걸어갈 동안은 세상은 나의 벗
 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모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들
 그들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술 밥, 한 쌍 수저
 식탁 위에 올린다

 

 - 이기철의 <작은 이름 하나라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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