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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줍는 사람들 / 이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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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줍는 사람들 / 이가림

 

 

바르비죵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 복숭아 빛갈로
포구를 물들일 때
하루 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든 아낙네들의 옆모습

 

 

 

 


                   

 

                   1943년 만주 출생, 본명 이계진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전 인하대 불문과 교수
                   시집 <순간의 거울> 등

 

 


 

 

 

기도 드리는 사람들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시를 다시한번 찬찬히 읽으며 마음의 화폭에 그림을 그려 보십시요. 어느 구절에 끌렸는지 찾아 보십시요.


 시인은 조개 잡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밀레의 명화, <만종>을 연상합니다. <만종>은 황혼의 들판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시에서는 황혼의 바닷가가 그 배경입니다. 그 황혼은 저녁 종소리가 들리는 천도복숭아 빛깔의 황혼입니다. 그것은 소리와 색깔을 배합해 빚은, 간결하고 선명한 언어로 그린 한 폭의 그림입니다.


 <만종>이 한 해의 추수를 끝내고 감사하는 기도의 모습을 그렸다면, <바지락 줍는 사람들>은 하루 치의 이삭(바지락)을 줍는 노동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노동의 모습은 곧 기도의 모습으로 인식 됩니다.


무릎을 꿇고 조개를 캐내는 아낙네들의 옆모습에서 시인은 추수, 즉 조개잡이를 가능케 해주신 모르는 분(절대자 / 하느님)을 위해 무릎 꿇어 경배 드리는 기도의 모습을 봅니다. ‘노동은 곧 기도이다’ 라는 서술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노동을 거룩한 기도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인 시인은 제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감동받았던 어느 한 순간의 장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감동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 감동은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입맞추는 간절함입니다. 이는 서구적인 정서와 종교적인 발상에 그 사고가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섬세한 시어의 선택에서도 서구적인 뉴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르비죵’ 이라는 프랑스 마을의 지명뿐만 아니라, 바지락이라는 순수한 우리말과 ‘아낭네’로 발음되는 아낙네의 비음과 모음의 부드러운 부딪힘에서 프랑스어가 연상되는 것은 시인 이가림이 불문학자이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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