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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는 누구인가
Byunchangsup

 

눈 내려 온 마을이 하얗게 쌓여가고, 불 켜진 창들이 조금은 서글픈, 깊고 아늑한 밤이면 생각나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많은 시인들이 어머니를 노래하고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시편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세기로 접어들면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고, 그들의 위상은 실추해 가는 듯 합니다. 이 아버지의 수난시대에 우리들의 아버지를 노래한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며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른 까닭일까.

 

 

 

 시인 김종길 교수가 젊은 날에 쓴 그의 대표작 중의 한 편입니다.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으십니까? 


 이 시의 키워드는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겠지요. 우선 두 이미지가 대비를 이룹니다. <빠알간 숯불>, <붉은 산수유>, <상기한 볼>, <혈액> 같은 붉은 색깔의 따듯한 이미지 위에 <서느런 옷자락>, <서러운 서른 살>, <눈>등 희고 서느런 시어들이 오버랩 되어 더욱 서럽고 애잔한 <서느런 옷자락>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열로 상기한 볼을 식혀주는 어린 날의 <서느런 옷자락>은 ‘아버지 있음’의 따듯함이며, 나이 들어 그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서러운 서른 살의 <서러운 옷자락>은 ‘아버지 없음’의 쓸쓸함일 것입니다. 이 쓸쓸함은 곧 뜨거운 혈액 (혈육의 정)에 녹아 흘러 따듯함이 됩니다. 이렇게 <서느런 옷자락>은 두 겹 (LAYERS)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린 날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이시는 어린 아들에서 이제 아버지가 된 중년의 아버지들 마음 속에 <서느런 시편>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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