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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배경 영화-‘해밀턴 부인’(Lady Hamilt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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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 해밀턴은 누구인가(계속)

 '건강의 신전'에서의 행위는 곧 세련된 상류계층 문화로 자리매김되었다. 엠마는 15살이 되던 1780년 준남작 해리 판쇼 경으로부터 자기의 정부가 돼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이것도 사실은 자기 저택 '업파크(Uppark)'에서 파티를 열 때 식탁 위에 올라가 벌거벗고 춤추는 일이었다.

 

 판쇼 경은 에이미를 그의 정부라고 칭했지만 시쳇말로 '쇼걸(showgirl)'에 다름 아니었고 파티, 술, 사냥 등의 쾌락에 빠져 정작 그녀에게는 무관심했다. [註: 준남작 해리 판쇼 경(Sir Harry Fetherstonhaugh, 1754~1846)은 '얼빠진 플레이보이'로 알려졌으며, 훗날 조지4세 국왕이 된 웨일스 왕자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1825년 9월 12일, 70세가 넘은 나이에 그의 낙농장 하인이었던 21살의 메리 앤 벌록(Mary Ann Bullock, 1804~1874)과 결혼하여 그의 전 재산을 그녀 앞으로 상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바로 이 Uppark 저택에서 '타임머신(1895)'으로 유명한 H.G.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의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했다.]

 

 그런데 다음해 6월에 16살의 에이미는 판쇼의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당시 27세인 판쇼는 '얼빠진 놈팽이'일 뿐 에이미나 그녀의 아이를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에이미는 파티에서 자주 봤던 판쇼의 친구인 찰스 그레빌에게 도움을 청한다.

 

 찰스 그레빌(Charles Francis Greville, 1749~1809)은 명문 프란시스 워윅 백작가의 둘째 아들로 상류사회 사교 때문에 판쇼 경의 파티에 참석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1774~1790년 영국의 하원의원을 역임한 골동품수집가, 원예애호가였고 '멍청하지만 성실하다'는 평을 받았다. [註: 호주산 상록관목 식물이름인 그레빌리아(Grevillea)는 그레빌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또 왕립학회 회원으로서 그가 만든 광석과 귀금속에 관한 목록은 대영박물관에서 구입할 정도였다. 평생을 미혼으로 산 그는 워윅 저택(Warwick Castle)에서 1809년 4월 23일 59세로 사망했다.]

 

 그레빌은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 집에서 키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782년 에이미를 런던 교외에 있는 패딩턴 그린에 조그만 집을 장만하여 자기의 정부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에이미 라이언이란 첫 이름을 버리고 '엠마 하트(Emma Hart)'로 개명시켰다. 아울러 엠마의 어머니 메리 키드도 가정부 겸 보호자로 함께 기거토록 배려하고 그녀의 이름도 '카도건 부인(Mrs. Cadogan)'으로 바꿨다. [註: 패딩턴 그린(Paddington Green)에서 태어난 엠마의 사생아인 엠마 커루(Emma Carew, 1782~1856)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읜 엠마를 키워줬던 그녀의 외할머니가 키웠다. 당시 77세였다. 그후 어머니 엠마를 따라 이탈리아로 가서 가정부로 일하다 1856년 3월 26일 플로렌스에서 73세(또는 74세)로 사망하여 거기에 묻혔다.]

 

 그레빌은 사회생활을 멀리하도록 하고는 엠마 하트와 카도건 부인에게 편지 쓰는 법, 셈하는 법, 상류사회에서의 예의범절과 의상법 등을 가르친다. 얼핏 고마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유는 접대용 기생을 만들어 고상한 상류사회에서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면에서 판쇼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레빌이 초대한 친구들 중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 조지 롬니가 있었다. 당시 젊고 아름다운 새로운 모델을 찾고 있던 롬니에게 엠마는 완벽한 모델이었고, 롬니는 엠마를 모델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이 인기를 끌면서 엠마는 당대 최고의 미녀로 떠오른다. 그러나 모델료는 그레빌이 떼먹었다. [註: 영국 화가 조지 롬니(George Romney, 1734~1802)는 엠마를 모델로 45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엠마가 26살에 윌리엄 해밀턴 경과 결혼하자 이에 실망했는지 이 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녀를 그리지 않았다. 찰스 그레빌은 그 그림들을 죽을 때까지 그의 저택의 벽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이후 1783년 그레빌은 재정적 궁핍을 만회하고자 부유한 상속녀인 18세의 헨리에타 미들턴과의 혼인을 위해, 이미 유명인이 된 엠마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이 탄로나기 전에 그녀를 떨쳐버리기로 결심하고, 영국의 나폴리 주재 대사로 일하고 있는 외숙부 윌리엄 해밀턴 경을 설득하였다. 말하자면 사촌이 삼촌과 엠마를 '성적 유희물'로 거래한 것이다.

 

■ 윌리엄 해밀턴 경의 부인이 되다

 윌리엄 해밀턴 경(Sir William Hamilton, 1730~1803)은 1758년 1월에 캐서린 바로우(Catherine Barlow, 1738~1782)와 결혼하여 금슬 좋은 부부로 소문났으나 슬하에 자녀 없이 1782년 8월 캐서린이 44세로 사망하자 당시 52살의 해밀턴 경은 실의와 슬픔에 차 있던 때였다. [註: 해밀턴 경 부부는 음악회를 많이 열었는데 윌리엄은 바이올린, 캐서린은 하프시코드 또는 피아노포르테를 연주했다. 1770년 14살의 모차르트와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이탈리아 여행 중 해밀턴 경에게 소개되었을 때 캐서린이 모차르트를 위해 하프시코드를 연주하자 모차르트는 "드물게 감동적(uncommonly moving)"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해밀턴 경은 영국 외교관으로 골동품수집가, 고고학자이며 화산학자였다. 1764~1800년 나폴리 주재 대사를 역임하는 동안 베수비우스 산과 에트나 산의 화산을 연구한 업적으로 1770년 영국왕립학회가 매년 수여하는 최고과학업적상인 코플리 상(Copley Medal)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구한 골동품들을 영국으로 가져가 팔기도 했으며 그 중 '그리스 꽃병'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그레빌의 배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엠마 하트(비비안 리)를 이탈리아에서의 새로운 삶을 설명하며 달래는 윌리엄 해밀턴 경(앨런 모우브레이).
 

▲ 영국 나폴리 대사 윌리엄 해밀턴 경(앨런 모우브레이)의 정실 부인이 된 엠마 해밀턴(비비안 리)



▲ 카도건 부인이 포격 소리에 잠을 깬 엠마와 함께 발코니로 나간다. 멀리 연기를 뿜어내는 베수비우스 산이 보인다.
 


▲ 엠마 해밀턴(비비안 리)과 그의 어머니(새라 올굿)가 지켜보는 가운데 해밀턴 경(앨런 모우브레이)이 망원경으로 포격을 하는 넬슨의 함선을 관찰하고 있다.



▲ 나폴리 해협에서 넬슨이 지휘하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공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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