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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3)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사랑”이라는 단어 ㅡ 그 단어에 실려 보내는 엄마의 온갖 바램과 위로가 실려 있었다. 미음을 아주 조금, 세 숟가락 정도 잡수셨다. 잡수시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먹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옆에서 클라빌이 “미세스 홍,”하고 또 부르고 있었다. 엄마는 더 먹고 싶어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자고 싶어하고 있었다. 내가 클라빌에게 눈짓을 했다. 그랬더니, 그가 적셔진 종이 수건으로 미음이 조금 묻은 엄마의 입술을 닦는다. 이러다가 엄마가 영원한 잠이라도 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한 생각이 내 마음에 일었다. 


클라빌이 입술 닦는 것을 마치고 이동 탁자를 끌어내고 있었다. 나는 침대 버튼을 누르며 침대를 뒤로 젖히고 엄마가 누워있기 편한 자세로 침대를 조절하였다. 깊이 긴 잠을 여러번 자시고 기분 좋게 깨어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 또 그러시려니 하는 생각이 나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영원히 잠들 것 같은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엄마를 보낸 지 사흘째 아침이다. 경대 위에 떨어진 배꽃 몇 잎을 본다. 꽃잎들 저 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돌아가시기 전의 그 속삭이는 느낌의 목소리가 아닌 근엄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바위 같고 바다 같은 엄마가 건강했을 때의 어떤 이미지 같다.

 

 

 

보아라,
저 ㅡ 날리는 꽃잎들을,
저들은 곧,
너에게 감사의 열매를
올리리니,
너는 삶의 의무를
다-하라.
저마다가
아름다움은 홀로이
가꾸지만
그것이 드러남은
만남에서이다.

 

품위는 가꾸는 자의
몫이다.

 

 

생소하지만 엄마의 목소리 같은 느낌이다. 순간 엄마가 이 세상에 나의 엄마 역할이 주어져서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라는 개념과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누가 엄마처럼 내게 베풀 수 있을까. 


물론 아버지가 내게 베풀었던 사랑과 비교하면 한 치의 길이 차이도, 한 돈의 무게 차이도 나지 않지만,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면 누구의 것과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다른 것이었다. 또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다른 사랑을 내게 주셨다. 그렇지만 두 분을 같이 놓고 보면 조금도 질에서나 양에서 차이를 둘 수 없었다. 


물론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들리는 듯한 목소리의 뉘앙스나 머릿속에 인각된 내용이 전혀 엄마의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배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아틀란타(Atlanta)에서 온 큰 언니가 오늘 아침에 떠나기에 더 이상 상념에 젖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니를 전송하면서 막 뒤돌아 서는 순간 모과나무에 달린 무수한 빨간 꽃들이 리드 싱어의 “보아라”가 사라져 갈 때 백그라운드 싱어의 코러스로 “보아라, 보아라” 부르듯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엄마의 말씀이 풀 코러스로 진행되고 있었다. 꽃들을 보면서 코러스를 듣는 순간에도 아까 전송한 언니의 차가 모퉁이로 돌아가는 것이 비디오의 슬로우모션 다시보기처럼 보고 있었다.


그저께 성당 장례식에서 들었던 엄 아가다씨의 전송 성가 부름도 그 코러스속에서 들려 오는듯했다. 신부님의 기도소리가 엄마의 text와 겹치면서 울려왔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전에 책에서 읽거나 혹은 영화에서 본 것 같기도 한 엄마의 text는 좀처럼 근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바람이 휙 불며 꽃잎들이 떨어지며 한 문장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장례식 전 날의 연도 때 남편의 헌사 속의 한 문장이었다. 남편의 목 메임이 떠올랐다.

 

그 헌사 속의, “우리 작은아이가 노란 민들레 한 송이를 어머님께 가져다 드리니 어머니께서는 참 좋아하셨습니다.”라고 읽을 때 남편은 목 메이는 것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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