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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캐나다 공군 이야기
songsunho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어언 6.25전쟁이 발발한지 71년이 지났습니다. 캐나다군은 6.25전쟁시 UN군 16개국 중 미국.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 했습니다. 그 당시 캐나다군은 여력이 충분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총병력 2만6791명을 파병했으며, 부상1212명 전사 516명의 희생을 감수 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캐나다군이 6.25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우고 희생을 한 것을 알고 있으나 공군이 파병되어 싸웠던 내용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6.25전쟁시 캐나다 공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캐나다 공군 파병 현황

 제1차로 해군 구축함 3척을 UN해군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캐나다 정부는 그 뒤 한국의 전황이 계속 나빠지자 제2차로 1개의 항공수송대를 파병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캐나다 공군당국은 1950년 7월21일 제 426항공수송대를 정상임무로부터 해제시켜 미국의Mccord 공군기지와 일본의 하네다 공군기지 사이를 왕복 하면서 병력 및 군보급 물자를 수송케 하였습니다.

제426항공수송대 한국전 참가는 비록 후방지원의 형식을 취하기는 하였으나 UN군의 전력증강 문제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캐나다 공군당국은 항공수송대대 이외에 공중전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조종사 22명을 선발하여 미 공군에 파병 근무케 함으로써 UN군의 제공권 확보에 크게 기여를 하였습니다.

(2) 제426 항공수송대대

 1950년 7월초 캐나다 정부는 한국에서의 UN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공군 제426 항공수송대대를 미국 항공수송단(Military Air Transportation Service)의 작전 지휘하에 넣어 한국전쟁에서 필요한 병력과 장비의 공수임무를 담당케 할 것이라고 공식으로 발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캐나다 공군 당국은 이 특별한 작전을 "Hawk" (매) 작전이라

 명명하여 제 426 항공수송대대에 출동을 준비할 것을 명령하는 한편

 미공군 당국과 협의하여 미국 워싱턴주 Tacoma근방의 Mcchord 공군기

 지를 "Hawk" 작전기지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출동준비에 착수한 제426 항공 수송대대(대대장 C.H.Mussels중령)는 연일 철야근무를 계속한 끝에 7월 중순까지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7월25일 대대(4발 수송기 6대로 편성)는 대대장 Mussels 중령의 지휘로 몬트리얼 Dorval 공항을 이륙하여 의례적 행사를 치르고 다음날 26일 Mcchord 기지에 착륙하였습니다.

초기 Mcchord 기지는 무척 혼잡스럽고 질서가 전혀 없었습니다. 당초 1개 전투기 대대가 주둔하던 이 기지가 미국군 항공수송단이 운영하게 된 후부터 갑자기 수많은 장거리 공수작전을 위한 대형 수송기들의 발착지로 변하자 모든 근무시설은 초만원 상태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제426항공수송대대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미국측으로부터 제공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나다의 항공정비 기술자들은 오직 Dorval 공항으로부터 휴대한 장비로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격납고용으로 할당받은 건물도 간신히 수송기1대가 들어갈 정도여서 대부분의 정비작업을 노천에서 비를 맞아가며 실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대에 부여된 임무는 너무나 과중하였습니다. 이행 작전계획은 기대하였던 것보다 2-3배 과중하게 짜인 것입니다.

6대의 수송기와 12명의 승무원들이 하루1만 마일에 달하는 장거리 왕복비행을 하여야 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각 수송기마다 매월 300시간 이상을 비행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보병부대와 바주카로켓 등 무기를 날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전은 1954년6월9일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1954년 6월9일 공수번호 제 599기의 왕복비행을 마지막으로 ‘Hawk’ 작전을 끝낸 제426항공수송대대는 Dorval공항에서 작전 임무완수를 축하하는 의식을 했는데 여기에 참석한 국방장관Brooke Claxton은 대대장병들이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여 캐나다 공군의 전통을 빛나게 하였다고 극찬을 하였습니다.

실로 캐나다 제426항공수송대대가 4년간에 걸쳐 이룩한 공수업적량은 적지 않았으며 총599회의 왕복으로 3만4000시간을 비행한 끝에 1만3000명의 완전 무장한 군인과 7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군수화물 및 우편물을 운송 하였습니다.

그리고 흔히 수송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병력손실 및 화물의 손상도 전혀 없었습니다. 실로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3) 캐나다 F-86 조종사의 활약상

캐나다 공군당국이 제 426항공수송대대를 UN군의 공수작전에 투입한 경우와는 달리 Sabre(F-86형 제트전투기)의 조종사들의 파병은 그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특이 하였습니다. 캐나다 공군당국은 조종사들을 파병하는데 있어서 그들에게 실전경험을 얻게 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때에 1-2명씩 한국에서 작전 중인 미 공군 전투폭격기여단에 순번제로 모두22명을 파병하였습니다.

당시 여력이 없었던 공군당국으로서는 이외의 적극적인 지원 방법을 취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파병동기가 어찌되었던 파병된 캐나다 조종사들이 한국전선의 상공에 출현함으로써 UN공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이들이 ‘MIG 출격항로’(MIG Alley)에서 소련의 신예기인 MIG-15기를 상대로 공중전을 전개한 끝에 최소한 9대를 격추하고 10대 이상을 파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 파병한 캐나다 조종사들은 미 공군 당국과의 협약에 따라 6개월을 복무하게 되었는데 이기간 내라도 50회의 출격임무를 완수하면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종사들은 그들이 배속된 김포공군기지의 미 제4전투폭격기여단과 수원의 미 제51전투폭격기여단의 ‘MIG Alley’ 출격작전이 쉴새 없이 이행되는 가운데 대부분 6개월이 되기 이전에 50회의 출격 임무를 끝내었습니다.

이들 Sabre 조종사들은 대부분이 제2차 대전에 출전하여 많은 전투경험을 쌓은 조종사들이지만 한국에서는 그 전력이 일절 무시된 채로 한 편대의 평 조종사로 새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 안 가서 대부분의 미 공군 조종사들을 능가하는 우수한 기능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1952년 5월에 수원 미 제51전투폭격기여단에 배속된 J.C.A.Lafrance대위는 8월5일 첫 출격에 나섰는데 적기2대중 1대를 즉시 격퇴시키고 나머지 1대를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성공 일보 전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의 비상한 솜씨와 용맹성은 즉시 인정되어 그는 당일로 편대장으로 승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예로, 1952년7월에 역시 수원 미 제51전투폭격기여단에 배속된 J.D. Lindsay 소령은 제20회 출격에 앞서 편대장이 되었는데 그는 50회의 출격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MIG기 2대를 피격하고 또 2대를 격추함으로써 동료들로부터 ‘MIG자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캐나다 조종사들의 이와 같은 놀라운 능력 발휘가 가능했던 것은 물론 그들이 제2차 대전에서 체득한 실전경험과 평소의 훈련의 결과라고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그들의 우방에 대한 지대한 임무완수를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맹과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MIG-15기를 한 대라고 더 격추시키겠다는 강한 일념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MIG기의 독무대인 ‘MIG Alley’로 출격 하였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에 오를 수 있고 현재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잊어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이에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한국전 참전용사의 희생을 감사하고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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