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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感動)
leed2017

 

 서신혜가 쓴 ‘열정’이라는 책에는 조선 전기의 재상 상진(尙震)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진은 세번이나 재상을 하였으나 항상 자기는 시골출신이라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상진의 유명한 일화로는 벼슬을 살기 전에 농부가 소 두마리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어느 소가 더 나은가?”를 물었다가 “미물이라도 자신이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게 아니오”하는 말을 귀에 대고 속삭이는 농부에게 큰 깨우침을 얻었다 합니다. 그는 이 경험을 평생 잊지 않은 채 말조심을 하고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대하였답니다. 나는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황희 정승의 일화로 배웠는데 서신혜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 합니다.

 서신혜에 따르면, 상진은 늘 거문고를 옆에 두고 살았다 합니다. 퉁소나 거문고 같은 악기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감동은 공감을 전제합니다. 공감없는 감동은 없습니다. 내가 음악은 사람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음악만이 감동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감동을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도 아름다운 자연 경치, 한 폭의 미술품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감동은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국면 언제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랜드캐니언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살아있습니다. 캐나다의 록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 고흐의 ‘별이 총총한 밤에(Starry Night)’를 처음 마주 대했을 때도 잊지 못할 감격이었습니다. 유학을 떠나는 날 김포공항에서 난생 처음 타보는 집채만한 비행기가 ‘우르릉’하며 활주로를 미끄러져 이륙하는 순간 그때의 감격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내 생애의 가장 뚜렷하게 생각나는 감동의 순간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들의 순간에 내가 시인이 못된다는 사실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2번, 3번 가보니 감동의 강도는 점점 줄어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 번은 한국의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와서 청중자격으로 갔습니다. 발디딜 틈도 없는 만장(滿場)의 공연장에서 그가 울부짖는 ‘봄날은 간다’에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가 울어야겠다던가 울고 싶어서 운 것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는 것을 어찌합니까.

 비뚤어진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곱고 부드러운 마음씨를 경험하게 하는데는 음악이 다른 어느것 보다도 쉬운 것 같습니다. 벽초(碧初) 홍명희가 쓴 ‘임꺽정’ 전에 나오는 종실 단천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피리의 명인 단천수가 개성 청석령을 지나가다가 임꺽정 무리에 잡혔습니다. 도둑들은 별로 뺏을 물건도 없는 단천수에게 노래나 한곡 불러보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단천수가 피리 몇 곡을 불자 도적들은 고향생각, 두고온 처자식 생각에 눈물을 찔끔거리는 자도 있어서 수령 임꺽정은 급히 피리를 중단시키고 “저 피리부는 단천수는 보내주는게 좋겠다”고 하여 안전한 곳까지 호위 안내도 해주었답니다.

 꼭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만 음악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신혜는 온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킨 한아(韓娥)의 얘기도 했습니다. 한아는 추레한 행색으로 길거리에서 노래하며 밥을 빌어 먹으며 살았습니다. 한번은 한아가 어느 여관에 갔더니 여관 주인이 “그 더러운 행색으로 어디를 들어왔느냐”고 모욕을 주길래 한아는 화를 내는  대신 목소리를 길게 빼서 노래 한 곡을 불렀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왠지 온몸에 기운이 빠져 밥맛을 잃었답니다.

 사흘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기에 안되겠다 싶어 그를 데려다가 사과하고 이번에는 신나는 곡으로 노래를 부탁했습니다. 노래를 했더니 온 마을 사람들이 기뻐서 어깨가 들썩이고 킬킬거리며 웃게 되었답니다. 한아의 노래는 이성이 아닌 감성의 깊은 부분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남자는 보이는 것에 약하고 여자는 들리는 것에 약하다고 합니다. 서신혜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말해줍니다. 개성 황진이의 어미 현금도 진이 못지 않는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18살 때 병부교 근처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내가 다리 난간에 기대어 빨래하는 현금을 내려다 보고 있었답니다. 그 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이어준 것은 사내가 다리 기둥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 이로 인해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어 황진이를 갖게 되었답니다.

 노래가 주는 감동의 사연은 내가 안동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국어시간에 읽은 정비석의 ‘애국가의 힘’이라는 수필에도 나옵니다. 희미한 내 기억으로는 6.25 전쟁 때  어느 마을 주민 전부가 피란을 가고 마을은 텅 비어 있었는데 국군부대가 나타났는데도 사람들이 겁이 나서 모여들지를 않더랍니다. 그래서 애국가를 크게 틀어 놓았더니 하나 둘 운동장으로 모여 들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중학교를 떠나서는 그 정비석의 글을 다시 본 적이 없으니 어느정도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이처럼 사람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감동을 받은 순간입니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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