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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산천
leed2017

 

 이 땅에 태어난 시인(詩人), 묵객치고 전원생활, 시냇물 흐르고 아침 안개가 들판 가득 피어 오르고 종일토록 새 지저귀는 뒷동산을 그리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옛 사람들 중에도 그들이 살던 도시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시골에 지나지 않았을텐데도 “차마(車馬)소리 들리지 않는 한적한 전원으로 돌아가서” 살고픈 염원을 가진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나는 전원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자랐습니다. 전원이라는 말보다는 산골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집 주위로는 100m 안에 사람 사는 집은 보이지 않고 소나무로 겹겹이 둘러싸인 외딴집이니 시골의 시골이었지요.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정정한 소나무와 푸른 강줄기, 하늘에 떠가는 구름 조각 뿐이었습니다.

 그 정든 산천을 떠나 작은 도시에서 더 큰 도시로 옮겨 다니다가 도시의 도시 서울로 와 있다가 캐나다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웠지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의 삶을 그리워하고 시골 사람들은 도시의 삶을 부러워합니다.

 조선 영-정조 때의 선비로 시문학, 정치, 경제, 공학, 의학, 약학, 윤리, 도덕 등 통달하지 않는 학문분야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박학한 천재가 하나 있었습니다.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기고 간 다산(茶山) 정약용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그는 18년 귀양살이를 하며 그의 맏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발 서울의 번화가에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넓히라”고 타일렀습니다.

 “…귀하고 권세있는 집안은 재난을 당해서도 눈썰미만 찡그리지 이내 평안하며 걱정없이 지내지만 먼 시골 깊은 산속으로 낙향하여 버림받은 집안이야 겉으로는 태평이 넘쳐 흐르듯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근심을 못 떨치고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다산이 말하는 서울생활이란 자기같은 폐족에게도 언제고 벼슬에 오르는 날이 오고야 말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시골과 전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얼추 섞어 쓸 수 있는 말이지요. 도시 사람들은 시골생활의 좋은 면만 보고 시골생활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시골생활이라고 매일 단순, 유쾌한 것만은 아니지요. 여름이면 비가 와서 음습하고, 밤이면 모기가 들끓고, 밥상 위로 날파리들이 윙윙거리며, 비위생적이고 지저분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격양가’에 나오는 말처럼 “밭갈고 씨뿌려 밥 해먹고 우물파서 물 마시는 것” 만으로도 그리쉬운 일은 아니지요. 허리가 휘도록 힘든 일을 해야할 경우가 많습니다.

 내 눈을 적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그 산하(山河)가 몹시 그립습니다. 늙으면 꼭 그곳에 가서 이 세상을 하직하는 눈을 감으리라는 꿈을 간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 거기 가서 살아라” 해도 주저할 판. 나도 모르게 도시 사람이 된 것이지요.

 나는 올해로 그 정든 산천에 그리움만 남겨두고 다른 모든 것에는 작별을 고합니다. 거기 가면 여기가 그립고, 여기 오면 또 거기가 그리워지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경자년이 곧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2020년 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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