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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leed2017

 

 2013년 1월 20일에 있었던 미국 제45대 대통령 오바마(Obama)의 취임식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다. 나는 오바마의 정치 색깔을 좋아한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혼혈아가 심리적으로 외롭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커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개세(蓋世)의 영웅이란 바로 이런 인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취임식 분위기는 축하 일색, 모두가 싱글벙글이다. 영부인 미셸은 마치 옛날 영국의 흑기사(黑騎士) 같은 인상을 주는 옷에 영화에서 본 '시바의 여왕'을 연상시키는 분장을 하고 나와서 내 보기에는 곱고, 우아한 맛은 다소 떨어지지만 함박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귀엽다고나 할까. 취임식장으로 걸어가면서 주위에 아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인사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취임식장에서는 인기 대중가수 비욘세(Beyonce)가 나와서 미국국가(Star-Spangled Banner)를 불렀다. 세상에! 대통령 취임식을 하는 그 엄숙하고도 엄숙한 자리에 대중가수가 나와서 국가를 부르다니. 한국 같으면 패티 김이나 조용필 같은 인기 가수가 나와서 애국가를 불렀다는 말인데,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날 취임식장 위 단상에서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나와서 미국의 전승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를, 또 어떤 남자가수 하나는 기타를 들고 나와서 '미국 찬미가(America the Beautiful)'를 불렀다.


 미국에 태어나서 유치원만 다녔어도 다 알고 있을 노래들을 국민 모두가 다 아는 가수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라. 이것이 바로 미국의 멋이요 매력, 힘이요, 생기다. 취임식 같은 자리에서 대중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사소한 일 뒤에 도사린 정신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미국 사람들이 종교처럼 신봉하는 엄청난 시대정신(Zeitgeist)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정신이란 인류평등주의(egalitarianism)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 그리고 그 생각의 초석이 된 주권재민(主權在民: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사상이다. 이 사상들은 1620년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로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사람들의 피 속에 도도히 흘러내려온 정신유산의 DNA인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이런 행사에는 으레 이름난 성악가가 질(質) 높은 노래를 해야 한다. 또 이같이 엄숙한 날에 남자가 이[齒]를 허옇게 드러내며 기쁘다는 표정을 보여서는 안된다. 장례식 분위기 같은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 엄숙함이 지나쳐 비통에 가까운 표정이 전부일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거만하고, 굳고, 엄숙한 표정을 지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예의'로 되어있다.


 몇 년 전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한인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 가본 적이 있다. 간담회란 정겹게 서로 얘기를 주고 받는 것. 그러나 그날의 간담회는 완전히 한쪽에서만 말이 나오는 일방통행이었다. 그날 내가 본 이 대통령 내외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교민 누구화도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고(만일 건넸다면 사과한다) 문자 그대로 돌부처요 망부석이었다. 희한한 간담회. 


 우리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은 지체 높은 어른이 지방 순시를 하다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하면 지체 높은 분이 먼저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닐까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공식적인 행사 중이라면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우정에 대해서 이승수 님이 쓴 <거문고 줄 꽂아놓고>를 보면 일찍이 성호(星湖) 이익이 그의 글 '논교(論交)'에서 옛날 월(越) 나라 민요를 인용한 것이 실려 있다.


‘자네는 수레 타고 나는 삿갓 썼거든/수레에서 내려와 인사를 해주시게/그대가 우산 메고 내가 말을 탔거든/기꺼이 자네 위해 말에서 내리겠네 (君乘車我戴笠 .... 他日相逢爲君下)’


 위의 노래를 보면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으스대던 사람들은 옛날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했으면 할때 우리의 '고유문화'를 내세워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자기들의 계획을 관철해야 할 경우에는 "선진국에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하며 선진국을 끌어댄다. 고유문화와 선진국의 편의에 따라 창(槍)도 되고 방패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요즈음 큰 행사 때는 '서민화'랄까? 거드름을 덜 피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숭을 떠는 거창한 연극이 아니라 국민들을 가슴속에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주는 취임식이라면 나도 기꺼이 박수갈채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20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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