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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투스
kwangchul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계속해 존재하려 한다. <스피노자(1632-1677)>

 

 스피노자를 모르는 사람도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어귀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의 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스피노자를 잘 아는 학자들의 의견은 그가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저마다 고유한 존재의지가 있고, 내일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그 존재의지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명언을 남길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 비옥한 토지에서 자라는 사과나무가 있다. 이 사과나무는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렇다 해도 사과나무가 배나 복숭아를 생산해낼 수는 없다. 간단한 얘기다. 사과나무의 본성은 사과만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스피노자의 유대인으로서의 미래는 매우 고무적이었고, 랍비로 유대인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리라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24세가 되던 1656년 그의 운명을 전환시키는 큰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신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한 범신론적 그의 생각은 유대교의 전통적 견해에 정면으로 거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 세계에서 파면당하게 된다. 그 당시 유대인이 그 사회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만큼 큰 사건이었는데 그 직후 자객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된다. 다행히 화를 모면하기는 하였지만 입고 있던 외투가 단검에 많이 찢어졌는데 그 외투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고 한다. 엉뚱한 구석이 있었나 보다.

 세계가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문명 발달의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유한자인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순간 폭력의 파괴자라는 말이 있다.

 나 라는 인간 하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지구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감수하며 자연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였는지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많은 가축과 물고기와 식물들이 파괴되어 가며 나의 생명을 유지하여 주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아니면 무엇인가에 대해 본의 아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사랑과 기쁨을 가르치는 종교마저 수많은 증오와 슬픔과 전쟁을 불러일으켜 파괴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6백여 년 전 타인과의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되는 필요악과 같은 관계를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스피노자다. 그는 에티카, 윤리학 저서에서 지적인 차원은 물론 감성적인 차원까지 그 문제를 분석해 보았다.

 출퇴근 시간 러시아워(Rush Hour)다.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집에 와 생각해 본다. 분명히 많은 인파 속에 수많은 얼굴들을 보면서 지나갔지만 기억나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무의식 중에 스쳐간 얼굴은 당연히 떠올릴 수 없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어느 순간 우연한 마주침이 일어날 수 있다. 우연히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려진다. 친구와 걸어가면서 웃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얼굴이었어, 혹시 나를 보고 웃은 것이 아닐까? 내일은 재택근무라 출근이 필요 없지만 그녀를 만나보기 위해 출근해야겠다.

 마주침과 헤아림이 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마주침이 무엇인가를 관철하려는 헤아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 이제 우리는 스피노자가 말하려는 코나투스를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힘이라는 의미의 코나투스는 살고자 하는 욕구라 할 수 있다.

 하루를 살더라도 노예의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 즉 주인의 삶을 살려는 의지이다. 자신의 삶을 기쁨으로 만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온갖 역경을 헤치고라도 그것에 충실하려 한다. 기쁨의 충만감이다. 반대로 나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상대를 만날 경우 위축되는 느낌이 들 적이 있다. 슬픈 감정이다.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선택하라. 기쁨과 보람 있는 일의 선택이다.

 슬픔을 몰고 오는 피곤한 순간들이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슬픈 감정이다. 당신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려라.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19세기 말에 피어스(Peirce, 1839-1914)에 의해 제창되고, 제임스(W. James, 1824-1910)에 의해 보급되었고, 나아가 듀이(J. Dewey)에 의해서 전개된 철학으로서 미국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스는 "신이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의 영적인 문제보다는 만약 이런 종교적 관념이 최대의 정서적 만족 내지는 평화를 준다면 그것은 진리다”라 하였다. 교회에 가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것은 참 진리고 그렇지 않다면 버리라는 이야기다.

 이제야 왜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의 그리스도라 하였는지 알 것 같다. 삶에서 매일 만나야만 하는 타자와의 관계를 회피하지 말자.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인 오늘의 나의 사과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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