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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천하
kwangchul

 

1894년 3월28일, 김옥균이 묶고 있던 여관의 주위는 조용하기만 하였다. 그때 이 정적을 깨고 울리는 세발의 총소리는 김옥균을 이 세상에서 하직 하게한다. 이국 땅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에 의해 죽어간 김옥균, 과연 그는 누구이며 왜 같은 민족의 손에 의하여 죽어야만 했을까?

김옥균, 그는 신지식과 신기술을 도입함으로써 근대국가를 수립해보려던 개혁의 선구자였다. 당대의 명문 양반가문 출신이면서도 유교사상과 양반의 존재를 부정한 혁명적 기질을 가진 그는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비통하게도 수구파가 요청한 청군의 개입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3일 천하 만에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비록 그 뜻은 웅대하였으나 절대적인 호응의 밑받침이 없었던 거사는 일장춘몽으로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히게 되었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 운명의 시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던 김옥균, 그래서 후대의 사가들은 그를 가리켜 혁명가라 호칭하기보다는 "개혁의 풍운아"라고 즐겨 묘사하게 된다.

나는 가끔 김옥균이 이끌던 개화당의 거사가 성사되어 우리 힘으로 자주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면 동방의 역사는 물론, 아니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해본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국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결국 대륙 진출을 포기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 조선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 일본과 대응하여야 한다 하였다.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4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그리고 서재필 등 이른바 급진 개혁파들의 주도에 의하여 청나라에 의존하는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던 근대적 개혁 운동이었고, 혁명적인 일종의 쿠데타라 할 수 있다.

신분제 폐지, 입헌군주제 등 근대국가에 맞는 정치, 사회 개혁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에 그쳐 민초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신들과 대립하던 원세개의 청나라 군대에 수적으로 밀려 3일만에 끝나게 된다.

개혁은 무사 안일주의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부가 있으면 도려내서라도 제 방향으로 환원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이념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철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통학교에 다닐 때 듣던 정치 구호가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이다. 그러나 안일과 부정의 타성에 젖은 수구파에선 "갈아봐야 소용없다"고 반격한다. 새것을 거부하며 옛 것을 고집하는 사고방식에선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누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광속에 아직 좋고 오래된 술이 많은데 왜 새 술이 필요하냐고 되묻는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도 오히려, 아직 눈을 깜박거리며 숨을 쉬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체가 청천백일 하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구한말 우리 조상은 개혁을, 더 나아가 혁명을 두려워하였고 저항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의 특수층뿐이었다. 그들 만이 일본의 식민지 하에서 혜택을 받았을 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주 독립을 원하였다.

북미대륙은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 후, 설립된 나라들이 캐나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등이다. 역사라 해보아야 500여 년 미만이다.

단기와 서기는 2,333년 차이가 있다. 금년은 단기 4,356년이다. 그 기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며 공존하였던 민족이 한국민족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장소에서 서로 각기 다른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면서 생존해왔다. 당연히 일본이라는 이웃을 가졌다는 것은 숙명이다. 그러나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다.

지난주, 세계 야구대회 결승전이 미국과 일본의 대결로 치러졌다. 같은 동양사람이면서도 일본을 응원하게 되지 않는다. 일본은, 적어도 지난 일세기는 공존하고 싶지 않은 이웃이었다.

김옥균은 지적하였다. "일본이 동방의 영국이 되려 한다. 우리는 동양의 프랑스가 되어 대응하여야 한다". 그는 129년 전 오늘 3월28일,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고종의 자객 홍종우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해방 이후 우리는 갑작스러이 잊어버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열을 올려왔다. 진정한 민족학의 자세는 무조건의 배척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에 대해선 냉철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기다리는 아침은 늦게 온다. 하지만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떠오른다. (2023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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