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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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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멜로스 사원의 달빛
knyoon

 


 
 

그대가 멜로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파리한 달빛 아래 그 옆에 서서 보라.
환한 대낮에 반짝이던 빛줄기들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튕기다가 허허로운 잿빛이 되는 것을. 
부서진 반달문 위로 까맣게 어둠이 내리면 
이층 창문 손잡이는 모두 하얗게 빛이 나네.
차가운 달빛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려
허물어진 탑 한 가운데로 여울져 흘러넘치네.
버팀벽과 벽 사이를 번갈아 가며
흑단과 상아 뿔로 틀을 짜 주네.
은빛 창문에 테두리로 그려내는 건
그대에게 삶과 죽음을 일러주는 두루마리라.
멀리서 트위드 강물이 사납게 울어제키면
올빼미는 죽은 넋이 누워있는 무덤위로 부엉부엉 울어대네.

 


이제 가 보라 -단지 혼자서, 멜로스를 세웠던
다윗 성인의 허물어진 돌무덤을 바라보렴.
이젠, 집에 돌아와 맹세코 하는 말,
이보다 더 슬픔을 안고 서 있는 모습을 다신 보지 못하리라!

<마지막 음유시인의 노래> 중에서

 

 월터 스콧은 달이 뜨는 밤이면, 그의 애봇스포드 집에서 가까운, 멜로스 사원의 폐허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사원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을 받으며 시를 썼다고 한다. 그곳에서 쓴 <마지막 음유시인의 노래>를 우리말로 옮기며 그 때의 심경을 되뇌어 보았다.
 
 


가톨릭교회를 내쫓고 영국성공회를 창설한 헨리8세가 스코틀랜드의 수도원과 사원과 교회들을 불지를 때 희생된 곳의 하나가 이 아름답고 웅장했던 스코틀랜드 남부 보더 지방의 멜로스 사원이다. 폐허가 된 본관 제단 창살 위의 천장엔 12사도를 조각해 넣은 목각이 신기하게 남아있다. 베틀의 신초리 같이 휜 8모꼴 별자리에 앉아있는 그 사도 들이 그나마 이 폐허의 땅을 지켜주는 듯했다.

 1136년에 스코틀랜드의 성왕 데이비드1세가 재건한 이 멜로스 사원보다 월터 스콧이 손자들에게 들려주려고 <스코틀랜드인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연작을 쓴 곳, 사랑하는 부인 샬롯과 행복한 말년을 보낸 트위드 강가의 그의 집, 아보츠포드 하우스가 더 보고 싶어 우리 부부는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월터 스콧이 트위드 강 골짜기에 지은 꽃동산 같은 집은, 하일랜드와 로우랜드의 경계선상에 있어 두 지방의 고어와 역사 이야기들을 수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수많은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전설 속에, 그리고 들꽃처럼 애잔하고 신선한 그의 시구에 그 고어들을 다시 살려서 썼다. 

 


그는 스코틀랜드 배경의 또 다른 역사소설 <웨이벌리 소설>을 1818년에 시리즈로 냈다. 로맨틱하고 신비스런 그 소설을 읽고 감동이 된 영국 왕 조지4세는 월터 스콧이 작품 속에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상상해서 쓴 ‘스코틀랜드 왕실의 보물’을 에든버러 성안에서 실제로 찾아보도록 허락했다. 
마침내 성안의 작고 단단한 지하실에서1707년 통합 이후 잊혀 진 참나무 궤짝을 찾아내어 그 속에서 1미터가 넘는 보검과 황금왕관을 찾아냈다. 그 보물들은 지금 에든버러 성 역사박물관 안에 ‘야곱의 베개’라 부르는 ‘스쿤의 돌’ 옆에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1818년에 왕실평의회로부터 준 남작의 칭호를 받은 월터 스콧경은 2년 후 조지4세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왕의 환영행사 의전을 맡는다. 
그 때 스콧경은 그동안 영국 법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민속의상인 타탄과 킬트를 다시 입게 하여 스코틀랜드 문화의 상징의 하나를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유럽을 여행하다 건강이 아주 나빠지면서 나폴리에서 요양하고 1832년에 그의 꿈의 궁전, 아봇스포드에 돌아와 영면한다. 
 월터 스콧경이 잊혀져 가는 조국의 역사와 언어를 남기기 위해,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경계선상의 보더 지방에 아봇스포드 하우스(수도원건너편 집이란 뜻)를 짓고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를 쓴 것처럼, 서울 토박이인 우리 부부는 아들, 딸, 손자, 손녀, 며느리들에게 우리나라 표준어인 서울말씨와 글씨로 우리들의 역사와 예전 풍습을 들려줘야겠다.
 큰 손녀 상희가 제 아비 유학할 때 미국에 따라간 것이 네 살 때인데, 샌디아고 대학 안의 학생 아파트에 살면서, 상희는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노래를 불렀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매일같이 웬 노래냐고 제 어미가 나무라면 하는 말, “나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미국 와서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노래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우리는 한국말과 영어로 쓴 어린이 성경만화를 사서 보내주었다. 상희 외에 손자 셋, 손녀 둘이 더 태어날 때마다 한글과 영어와 성경을 동시에 익히는 일석삼조의 교육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선지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손주들은 한국말로 읽고 쓰고 말하고 이메일도 주고 받는다. 
월터 스콧의 집 아봇스포드 하우스는 셰익스피어의 정원처럼 아름답게 가꾼 정원 속에 온갖 역사적인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거실 벽엔 '로버트 번즈와 토론하는 어린 월터스콧'의 유명한 그림이 걸려있고, 연두빛 중국화를 그린 벽지 앞에 스콧의 부인이 켰으리라 여겨지는 하프가 놓여있다. 
9천권 이 넘는 책이 2층 벽까지 꽂혀 있는 서재 안에서 인주갑, 안경, 원고를 넣어둔 책상을 만져보며 스콧이 트위드강을 내다보며 글을 썼다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강물 소리가 들릴만큼 가깝진 않았지만, 긴 담에 붙어있는 작은 쪽문 넘어 분홍 영산홍 꽃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강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오솔길의 큰 소나무 잎새와 보랏빛 들꽃 향기를 맡으며!

 강가에 더 머물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멜러스 사원에서 주워와 쌓았다는 돌문을 지나자, 푸른 농장에 서있던 말 두 마리가 정답게 우리를 배웅한다. 그 중의 한 마리는 스코틀랜드 마상경기 선수인 이안 스터크가 서울올림픽에 타고와서 은메달을 따고 2004년까지 탔던 Sir Whittie라는 경마였다. 
아마 스콧도 Sir Whittie를 타고 이곳에서 2마일 떨어진 멜러스의 달밤을 자주 찾아갔으리라 여기며, 스콧의 소설이름이 붙은 에든버러 웨이벌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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