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가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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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49)
knyoon

죠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잠시 동안 그는 그의 옛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친구와 헤어질 때만 해도 그는 짙은 청색의 더블 양복에, 흰 와이셔츠, 회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옛날에 유행이 지나간 구식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덴 재킷에다 구겨진 바지, 머리 뒤쪽으로 눌러 쓴 모자와 목에 동여맨 손수건, 그리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정 오리털 망또를 걸치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어리석었지. 노동자 계급의 대표가 로마에서는 상원의원의 복장을 하고, 자기 고향에서는 읍장 나리의 복장을 하고서 짐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다니! 자네가 밤에만 여행 다니는 것도 틀림없이 언짢은 일이었을 거야. 이리 앉게나.”


“선 채로 말씀 드리겠소.” 빼뽀네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난 빚을 갚으러 왔소.” 그는 주머니에서 양초 한 개를 꺼내어 돈 까밀로의 책상 위에 내려 놓았다. “이 양초는, 주님께서 나를 난파선에서 구해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억한다네. 그 러시아의 선장이 말한 것처럼 말일세.”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대개는 그런 위기가 지나버리면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지. 난 자네의 그 좋은 기억력을 치하해 주겠네.”


“또 이것은, 악마가 나를 괴롭히려고 보낸 어떤 신부로부터 내가 구조받게 된 것을 주님께 감사 드리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빼뽀네는 길이가 4피트에 직경이 8인치나 되는 또 하나의 양초를 내어 놓으면서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돈 까밀로의 턱이 아래로 처졌다. 


“이건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겁니다.” 빼뽀네가 설명했다.


“크긴 하지만, 그 당시 신부님의 위기를 상정해 보이려면, 이보다 네 곱절은 커야 하겠지요.”


“추켜세우지 말게.” 돈 까밀로가 말했다.


“한낱 시골 신부가 그런 대접을 받을 입장이 못 된다네.”


“시골 신부님들이 개인적으로는 교황님보다 더 위험한 처지에 있게 되니까 그런 게지요.”


빼뽀네가 말하면서 소포와 편지 석 장을 꺼내어 책상 위에 밀어 놓았다.


“이 뭉치들은, 타롯치 동무에게 보내달라고 내게 부쳐온 우편물 입니다. 난 이런 일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부님께 미리 경고 드리겠는데요, 이런 뭉치를 또 받게 되는 날엔, 난 그걸 모두 불에 태워버릴 겁니다.”


돈 까밀로는 우편물을 뜯었다. 그 속에는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돈 까밀로는 그 속에서 급히 편지 한 통을 찾아냈다. 겉봉 주소를 쓴 사람의 필적이었다.


“이 편지들은…”


“신부님, 제가 신부님 일에 간섭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빼뽀네가 신부의 말을 막았다.


“그 물건은 타롯치 동무 소속의 물건들이지요. 타롯치 동무는, 세포 조직 지도자로서 상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는 걸 아시겠지요. 그 물건들은 페라토 동무가 보낸 사진들인데, 나보고 그 사진을 마음대로 처분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 사진 좀 보세요. 우리가 제일 앞줄에 나란히 앉아 있군요? 신부님은 관심도 없으신가요?” 


빼뽀네는 그 사진을 가로채어 자세히 들여다 보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이젠 더 이상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 말게, 상원의원 나리. 페랏토 동무는 내게 또 다른 사진 한 벌을 보냈는데, 틀림없이 비공식적인 걸세. 그 동무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말고 처리해 달라고 했더군. 당에서 그에게 보수를 넉넉히 주질 않는 모양이야. 그는 돈을 벌고 싶어하거든.”


“신부님도 그처럼 치사한 짓을 하실 겁니까?”


“그건 자네에게 달렸네. 만일 우리가 그 동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고, 내게 온 이 사진들을 당 보고서에 제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빼뽀네는 의자에 털썩 앉더니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가 사진을 들여다볼 동안, 돈 까밀로는 두 번째 편지를 읽고 그에게 내용을 들려주었다.


“이 편지는 타반 동무로부터 온 것일세. 그는 나의 좋은 충고에 감사한다면서, 그날의 일은 그의 어머니에게도 기적을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고 했소. 그 ‘세 줄기 밀’을 심어놓곤 매일 들여다본다네, ‘만약에 줄기가 시들면 저는 제 동생이 이제 아주 죽어버렸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썼네. 그리고 상원의원 나리께도 안부를 전하더군.”


빼뽀네는 계속 투덜거렸다.


세 번째 편지는 짧은 내용이었으며 돈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이건 지뱃티 동무에게서 온 거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지뱃티 동무가 집에 도착하자, 그는 그 러시아말 편지를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소. 그 편지는 그가 사랑했던 소녀의 이야기를 쓴 것이었소. 결국 그 편지를 우리말로 번역시켜본 결과, 그 소녀가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되었지. 지뱃티 동무는 그 소녀의 영혼을 위한 미사에 써달라고 1천 리라를 내게 보냈소. 난 그 돈을 그냥 돌려보내고, 그 소녀를 위해 매달 미사를 올려 주겠다고 말하겠소.” 


빼뽀네는 주먹으로 책상을 광 치며 소리쳤다. “어떤 악마 같은 놈이, 당신이 신부라고 그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지요?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그 점이란 말입니다!”


“아무도 그 사람들에게 말하진 않았소.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게 된 거요.”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이?”


“그건 빛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요. 내가 전기 쟁이는 아니니까 더 설명할 순 없소만.” 돈 까밀로가 말했다. 


빼뽀네가 고개를 흔들었다. “잘못은 내게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그 배 위에서 혀를 잘못 놀려, 당신을 ‘신부님!’ 하고 부른 것 같습니다.”


“자네가 나를 그렇게 부른 기억은 없는데.”


빼뽀네는 오리고프 동무가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내가 그 동무를 마지막 본 것은 폭풍우가 이미 지나가 버렸을 때입니다.” 빼뽀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떻게 해서 파도가 그를 바다로 쓸어가 버렸을까요? 우리가 갑판 아래로 내려갔을 때 갑판 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지요?”


“하느님만이 말씀해주실 수 있겠지.”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그리고 하느님만이, 그 불쌍한 동무를 내가 얼마나 자주 생각하게 되는가도 알고 계시겠지.”


빼뽀네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일어섰다. “내가 골라놓은 사진이 여기 있소.” 


“알겠소.”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 양초들은 어떻게 하지?”


빼뽀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큰 초는 난파선에서 탈출한 일을 위해서 바칩니다.” 


“작은 초가 난파선 탈출이라더니?” 돈 까밀로가 일깨워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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