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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43)
kimjinkyu

 

 

(지난 호에 이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동안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20:3)”는 말씀은 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과오를 교정하기 위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인간들은 때때로 다툼에 개입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최대의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모욕을 당하면 왈칵 분을 내고 내자신의 영역을 엄정히 지키고 서서 명예와 권리를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고 강요하며 지배하는, 자기자신을 현명한 자로 여기는 우(어리석음)을 범하기 일수다.

 
그러나 이처럼 사사건건 간섭하는 자는 불필요한 고민거리를 부지기수로 자초하는 우매자이다. 인간들은 분쟁에 말려들었을 때 한 발 물러나서 무기를 놓는 것을 치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여서 “다툼을 멀리 하는 것(그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며”, 전투를 철회하고 논쟁을 중단하며 권리 침해를 용서 해주고 우리와 불화했던 자와 우호를 맺는 것이 영광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창13:8) 처럼 화평을 위해 <다툼을 멀리하고> 항복하며 굴종하고 자기의 정당한 요구로부터 물러섬으로써 자신을 제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곧 사람의 영광이며, 지혜롭고 <영혼>이 살아있는 자의 영광이 된다. 


또한 우리는 게으른 자의 굴레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 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20:4).” 


이 말씀 속에서 나태함과 안일에 대한 애착의 폐단을 살펴 볼 수 있다. 나태한 자는 게으름 때문에 제철에 밭 갈고 씨 뿌려야 하는 극히 필요한 일조차 못한다. 비록 밭 가는 시기가 한 겨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겨울의 문턱에 있는 가을에도 밖에 나가 일하기에는 너무 추운 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 길에 임하고 있는 우리 노년의 크리스천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밭가는 정도의 작은 수고(공동체 안의 봉사)와 찬바람을 쐬는 것과 같은 작은 어려움을 겪을 마음도 없는 자들은 형편없이 게으른 자들이 아닐까!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영혼의 일>에도 무관심한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선한 군사들(성도)은 어려움을 이겨 나가야만 된다. 즉 파종기에 “밭 갈지 않는” 자는 추수기에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밭가는 수고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자는 구걸의 수치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가을에 접어들고 겨울을 지나는 크리스천은 열 처녀 비유(마25;1-12)에서, 등잔에 기름을 예비해 두지 않았던 처녀들은 신랑이 왔을 때 기름을 구하였으나 거절을 당하지 않았던가를 상고하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또한 우리 성도들은 “지나친 칭찬의 폐해”를 알고 처세를 하여야 한다. <이른 아침에 큰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칭찬)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잠27:14)>. 


비록 가장 친한 친구나 따뜻이 대해주는 후원자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칭찬을 남발한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각 사람에게 합당한 칭찬을 해주고, 지식이나 미덕이나 유용성이 뛰어난 자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우리가 받은 친절에 대해서는 감사함으로 사례하는 것이 우리의 당연하고 온당한 도리이다. 


그러나 이것도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하는 정도가 되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모임에서든지, 심지어 그 친구의 면전에서까지 시종 같은 투로 되풀이하고 일찍 일어나 행하는 일처럼 열심히 이 짓을 행하며, 그 친구의 장점을 터무니 없이 확대하고 과장한다면 그것은 비위에 거슬리고 구역질 나는 일이 되며 위선과 흉계인듯한 냄새마저 풍기게 된다.


사람들이 행한 일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더욱 많은 것을 얻어 내려는 데 불과하다. 우리는 주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이런 찬양과 찬사를 우리 친구들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혹자가 생각하듯 축복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난다는 데에는 주하나님께 대한 도리가 암시 되어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침에 찬양 받아야 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칭찬하는 일에 너무 성급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능력과 업적에 대해 너무 일찍부터 추켜 세워서는 안되며, 일단 사귐과 시험을 해 보아야 하는데, 이는 그들로 자만심에 들떠서 게으른 잠을 자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칭찬 받는 일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온당한 칭찬은 그 칭찬에 보탬이 될 것들을 끌어오지만, 무절제하고 무례한 칭찬은 오히려 그 가치를 떨어뜨리기 쉬우며 지나친 칭찬을 듣는 자라는 비난을 면할 길 없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위험은 그 칭찬이 교만에 이르게 하기 쉽다는 점이다. 지나친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려워한 <사도바울>은 얼마나 주의 깊고 복된 분인지를 보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 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고후12:6). 


또한 크리스천은 교제의 유익함을 알고 살아가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27:17).” 즉 우리는 교제를 통해 남과 자신을 아울러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하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서로 지나친 농담으로 시종일관 하지 말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를 더욱 지혜롭고 선한 자로 만들어야 한다(히10:24). 


우리 형제에게 허리를 굽히며 그들에게 대한 존경심을 계속 품는 일 또한 우리에게 매우 큰 이익이 됨을 알자! 이런 것들은 주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사진이고 거울인 복음(Gospel)을 통해서, 또한 지식의 보고를 열어주는 황금 열쇠인 꾸준한 <기도>를 통해서 얻어지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모든 아픔의 고약(膏藥)이요, 모든 질병의 약이 된다. <기도>는 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요구의 제시이며 또한 우리의 소원을 주님에게 알리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감정의 불안을 없애 주며 내적 만족을 부여할 것이며, 우리를 평온하고 침착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다> (사26:3, 시편112:7).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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