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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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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7)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부분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게 되는 유기체 모델에 있어서는 전체와 부분 그리고 부분과 부분들의 관계는 일즉다, 다즉일의 관계로 거기에는 자타라든가, 내외라든가, 선악이라든가, 귀천이라는 관념이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거룩한 신으로 섬기게 했던 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함으로써 인간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하셨다. 


즉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시고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겨 온 방식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예수님을 결국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지 못하고 목자와 양 떼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을 자기 밖에 존재하는 두려운 존재로 자신의 운명을 그의 손 안에 쥐어진 절대적 통제자로만 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온갖 기적과 포도원의 비유나 사람의 몸이 곧 성정이라고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것처럼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 안에 사람이 거한다고 보면 하나님은 단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뜻이 자신의 법과 뜻이 되도록 자신을 비워야 하는 과제가 성도들에게 주어지게 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게 된다. 


성도가 속한 교회나 개인이 속한 사회나 인류가 속한 우주자연을 유기체로 보게 되면 거기에는 자타라는 관념도 없고, 선악이나 귀천으로 분리될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관념도 없고, 로마인이나 희랍인이라는 관념도 없고, 흑인과 백인이라는 관념도 없고, 종교와 종교라는 관념도 없어져 어떤 이웃이든 자기 몸에 붙은 지체로 사랑하게 된다. 


무조건 사랑과 용서라는 성경의 대의가 여기서 나타난다. 기독교인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거나 기독교인이 이웃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거부한다면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그들이 유대인임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흔한 돌로도 유대인을 만들 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오만을 책망하신 것과 같이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 임을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비록 음행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도 정죄하시지 않으셨다. 오른손이 왼손을 정죄하지 않는다. 머리가 발을 귀천으로 나누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 사회라는 그리스도의 몸, 우주라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모든 것과 한 몸이 된다.


필자가 이 글에서 선(禪)을 기독교 성경과 결부시킨 것은 기독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유기체로 보는 것처럼 불교 역시 천지만물을 하나의 거대한 망과 같은 상호의존적 유기체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은 모두 무념행을 시사한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무념행을 위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라 하거나 불교에서 천지만물을 일즉다, 다즉일이라는 총체적 관계에서 보거나 자연과학에서 사람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사람이 있다고 하는 연합설에서 보면 사람의 본질은 무아이며 공이다.


거기에는 어떤 경계나 분별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보면, 비록 문화나 종교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본질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의 교회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대답 위에 세워졌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그 대답은 베드로 사신의 대답이 아니라 베드로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독교는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반석으로 건설되었다. 베드로는 그 말을 한 이후에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적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로 자신의 말이 될 때 구원이 있다. 


자신이 양 떼 중의 하나로 목자의 뒤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는 단계를 넘어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로 성도가 된다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을 자신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 본심으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과 안으로 성품을 보아 동요하지 않게 한다”는 좌선이 기독교인들에게도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어 성령이 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간교한 생각으로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지금 처한 현주소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사람이 임의로 지어 붙인 명칭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거기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따로 없는 것과 같이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인간이 만든 경계도 있을 수 없다.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는 단순히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은 불복종 때문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에 있다. 지금도 그렇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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