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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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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없는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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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둥근 달이 중천에 떠있어야 할 시간이다. 비구름이 잔뜩 몰려있는 캄캄한 하늘은 어두움에 짙은 무게까지 덧칠하고 있었다. 떡방아를 찧는 행복한 토끼는 물론 화안하게 큰 웃음을 웃는 여인상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추석 사진만 여기저기 들추던 컴퓨터 위에 몇 해 전 대보름날의 전면월식이 펼쳐졌다. 조금도 이지러지지 않은 둥근달이 오른쪽 아래서부터 검은 실띠로 덮이기 시작하여 마침내 달 전부가 검은 항라 같은 구름에 덮여 사방이 온전히 캄캄해지는데 1시간이 걸렸다.

캄캄한 상태에서 1, 2분쯤 머물러 있던 달은 왼쪽 위에서부터 서서히 반대순서로 벗겨지며 다시 밝은 보름달로 돌아오는데 꼭 2시간이 걸렸다. 어두워지는 데는 한 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다시 밝음으로 돌아오는 데는 2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깜깜한 밤하늘에도 구름 뒤에 달이 있다는 사실 또한 그때 보고 확실하게 인증하였던 것이다.

한가위 달이 저기쯤 있을 거라 검지 손을 펴다가 문득 사자성어 하나가 떠올랐다. ‘견지망월’(見指 忘月). 능엄경에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로 ‘손가락으로 달을 보라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달이라는 본질 혹은 주제는 보지 못하고 눈앞에서 건들거리는 손가락만 보는 어리석음을 빗대는 어리석은 물음인 줄로 단순하게 이해하였었다. 

무심 중에 인터넷을 열어 ‘견지망월’을 찾아보았다. 세상에! 이 성어가 이처럼 많은 분야에서 뜨겁게 회자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법당에서 교회에서, 정치 경제 사회의 크고 작은 단체에서 숨겨진 참 본질은 터득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헛된 논리로 끌려가는 설법, 설교, 정치가, 주재자를 질타하고 있었다. 그 해설들은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했다면 그는 손가락을 따라 당연히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달은 안 보고 그 앞에서 어른대는 손가락만 보았다면 그는 지엽적이거나 말단적인 것에 얽매어 본질이나 실상을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달을 보던 시선을 돌려 다시 손가락을 보며 이를 달 모양이라 여긴다면 어찌 둥근 달만을 모르는 것이겠느냐. 그는 또한 손가락도 모르는 것이니라 (능엄경)라고 풀이하였다.

해설의 중점은 *지엽이나 말단에 얽매어 실상을 보지 못한다. *본질을 깨우쳤으면 수단은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되었다. 문제는 본질을 깨우쳤으면 수단을 잊어버리라는 해설을 악용하는 경우가 만연하다는 평에 있었다. 소위 메시지(밝은 달)에 대한 공격이 어려우면 메신저(손가락)를 공격하라는 역발상의 악습이 무고죄의 남발을 불러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인 것이다.

순간적으로 직업의식에 따른 전율이 온 몸을 훑으며 지나는 것을 느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한 행위는 달을 보여주려고 손가락을 치켜드는 일을 일삼지 않았는지. 이론적으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사실적으로 습득시키기 위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열성을 기울이지는 않았을까. 작가로서의 나의 글은 어떠했는가. 저건 달이다. 어둠을 비추는 화안한 달, 뿐만 아니라 슬픔에 잠긴 달, 풍요로운 웃음의 달, 어두운 골목길 동행자의 달, 절구 찧는 토끼의 낭만적인 달, 얼굴 가득 웃음을 띤 행복한 달.

달에 감정을 실어 하얗게 빨갛게 칠을 하며 나의 감정을 이입하려고 손가락을 마구 흔들어 댄 경우는 얼마나 많을까. 학생들은, 독자들은 진짜 달을 알아차리고 진실을 담아냈을지 의문이 들었다. 새삼스럽게 그들의 편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어두움에서 다시 밝아지는 둥근달이 되는 데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리듯 나는 아주 느리게 그럴싸한 이치 하나를 발견하였다. 우주만상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광대한 것이라고. 섭리에 의해 존재하고 운행되는 천지만물을 다 이해하기엔 인간은 너무 제한적이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발 나의 학생들, 독자들은 견월 망지(見月 忘指). 달만 보고 손가락은 보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었으면. 지혜와 지식이 충족하여 본질을 이해하고 습득함은 물론 감정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쁘고 바른 마음의 사람이면 얼마나 좋으랴.

달도 손가락도 없는 깜깜한 달밤에도 구름 뒤에 달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교감하는 동반자가 작가이고 교사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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