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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61)
jinkyukim

 

(지난 호에 이어)
징계하는 아버지만이 아버지다운 아버지라는 사실임을 알자. 현명하고 좋은 아버지치고 그가 비록 남의 자식의 잘못을 눈감아 버릴지라도 자기 자식들이 잘못할 때 묵인해 주는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해 부자(父子)라는 인연 때문에 또한 자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잘못보다는 특히 자기 자녀들의 잘못에 대하여 더욱 민감한 법이다. 


그러니 하늘 아버지는 어떠할까! 죄를 지었는데도 책망 받음이 없이 사건이 무사히 무마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슬픈 표시인 것이다. 그렇게 된 자는 아들이 아니라 <사생아>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주여, 주여”라고 울부짖는 “잎”들만으로는 안 된다. 시작이 잘되고 장래성이 보이는 “꽃”으로도 안 된다. <열매>가 있어야만 한다. 나의 생각, 말과 행동이 <복음>과 빛과 사랑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나무가 높고 길고 덩치가 큰 나무일수록, 그 나무의 수명이 길면 길수록 그 땅이 받는 해(Harm)는 더욱 클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 버림” 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믿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내렸던 심판처럼, 포도원에 있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처럼 포도원 밖으로 뽑혀 버림을 누가 당할 것인가. 우리들, 참된 크리스천들은 육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형제 관계로서의 합당한 칭호를 부르자.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 “형제여”라고 부르고, 순결한 이는 회개자에게 “형제여”라고 부르자. 우리는 참회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시기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탕자가 회심하여 주하나님 품 안에 서는 구원 받은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심하기 전의 바울(사울)은 탕자였으며 “교회”를 “파괴”함으로 하나님의 <살림>을 삼켜 버렸었지만 회심한 이후에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양의 은총과 영예를 받았다. 


탕자(동생)를 질투한 큰 아들처럼 “질투하는 성도들”을 참을성 있게 대하시는 주하나님 아버지의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에서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밝게 빛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세리가 주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처럼 겸비와 굴욕적인 자세로 죄를 회개하는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께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충만해 있었고, 진실성과 겸비심이 그대로 나타났고 그의 심령은 찢어지고 통회하며 순종하는 옷으로 입혀 있었다. 자기의 죄에 대하여 의분을 느끼고 <가슴을 쳤다>.


이에 반하여 바리새인은 자기의 금식과 십일조의 공로를 강조했다. 스스로 높은 체하는 교만한 사람은 주하나님의 대항자이므로 분명히 낮춰질 것이다. 스스로 낮추는 겸비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있어서 높임을 받는다. 


주하나님의 영광은 교만을 배척하고, 겸비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주하나님은 모든 선한 것의 소유자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은 기쁘신 뜻대로 그의 축복을 주실 수도 있고 거두실 수도 있다. 


우리는 늘 복음 안에서, 나의 심령 안에서 악한 눈의 본질인 시기(envy)를 제거하여야 한다. 눈은 종종 죄의 출입구가 된다. 다른 사람의 선에 대하여 불쾌감을 가지며 또한 그들이 해를 입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악한 눈이다.


악한 눈은 우리들에게 대한 곤고이며, 하나님께 대한 분노이며, 우리의 이웃에 대한 악의이다. 우리는 “큰 날”을 기다려야만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 주님이 장차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가 오실 것을 소원하거나 종종 그의 오심에 대해 생각하는 것, 또한 언제나 그가 오시리라는 것이 확실하고 또 가까이 이르렀으며 그 시간은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기대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밤>이다. 또한 우리는 항상 <복음>을 깨닫고 깨어있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시는 주님은 “언제” 올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정녕 내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주님을 기대하도록 해 주신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22장 20-21).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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