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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52)
jinkyukim

 

 

(지난 호에 이어)
우리 성도들은 인생의 무상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근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하나님은 진실로 생명의 큰 근원이시다. 왜냐하면 그가 “생기를 인간의 코에 불어 넣으셨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호흡을 시작하고 그때부터 생명의 덧없음과 더러움에 부딪쳐야 한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다”(욥기14:1). 이것은 생명의 덧없음을 뜻한다. 이것은 <하와>라고 불리는 첫 번째 여인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든 살아있는 자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유혹에 속아서 최초로 범죄한 이 여인에게서 우리모두가 태어났다. 따라서 우리의 날들을 짧게 하고, 슬프게 하는 죄와 타락이 그녀로부터 유래되었다. 여자는 약한 그릇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어머니를 닮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욥기25:4)”. 깨끗한 시냇물이 더러운 물 줄기에서 나오거나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나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결한 자손이 부정한 부모에게서 나올 수 없다. 


우리의 습관적인 타락은 우리 부모로부터 받은 우리의 성품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그것은 우리의 뼈 속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의 피는 합법적인 범죄로써 획득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전병으로 더럽혀져 있다.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4:4)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인간 생명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꽃이며 그림자이다” (욥기14:2). 꽃은 시든다. 그것의 모든 아름다움은 곧 시들어 사라져 버린다. 그림자는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그 존재는 곧 사라지고 밤의 장막 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어느 것도 신뢰할 수 없다. 우리 인간 생명의 짧음과 불확실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은 <사는 날이 적다>. 여기에서 생명은 달이나 년 수로 측정되지 않고, 날 수로 측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날에 우리의 마지막이 올지 확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날 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으며, 처음 조상들의 날수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적다. 그것을 영원과 비교할 때는 더욱 적다. 그런고로 사람은 때로 나오자마자 “쇠하여지고”,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요람에서 죽으며 이 세상에 와서 그 일을 하자마자 즉, 그의 손에 쟁기를 잡게 되자마자 곧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의 불행한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사람은 짧은 생을 누릴 뿐 아니라, 슬픈 생도 누린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지내는 날 수가 얼마 안 된다 할지라도, 그 적은 날 수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다. 이 짧은 날들 동안에 “괴로움이 가득하다”. 즉, 수고하거나 투덜거리면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하면서 괴로워할 뿐만 아니라, 괴로움이 가득하다. 분노나 초조, 그리고 당황스러움 등을 맛보지 않고 지내는 날은 하루도 없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러한 것을 많이 느낄 것이다.


사람은 “동요가 가득하다”. 그의 날이 적다는 사실은 그것이 끝나게 되리라는 예상 속에서 그에게 번민과 불안을 가져다 주며, 그는 항상 그의 생명에 대한 의혹에 매달려 있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날 수가 이처럼 괴로움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그 날 수가 적다는 것, 영혼이 육체 속에 갇혀 주님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기간이 영원하지도 또한 길지도 않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우리의 날 수는 많을 것이며, 괴로움에서 완전히 떠나고 또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현세의 슬픔을 보상해 줄 것이다.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죄악성에 대해 생각해 볼 때 행동적인 범죄는 천성적인 타락의 자연적 소산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죄>라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모든 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는 인간생명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욥기14:5) 즉, 우리의 생명은 끝날 것이다.” 땅 위에서의 우리의 날 수는 무수한 것이거나, 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효를 셀 수 있는 날들로서 곧 끝날 것이다.


우리가 얼마 동안 살고 언제 죽을 것인가는 주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 결정되어 있다. 우리 달의 수효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써, 결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권능의 뜻과, 결코 속일 수 없는 그의 전지전능하신 시야 아래 놓여 있다. 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생명의 종결을 명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의 수명은 그의 손 안에 있다. 


자연의 권능은 주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서 움직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행동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처벌하시고 선을 상 주는 일을 정하신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한계를 우리는 뛰어 넘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뜻은 변경될 수 없고, 그의 선견지명은 오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의 체질을 알고 계시며, 그것을 참작하시고, 그러한 체질로 인한 우리의 본성을 참작하실 주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김으로써, 큰 고통 아래서도 어떤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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