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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사회로 나아가자면
gigo

 

 윤종호 칼럼

 

 세뇌 교육은 밖의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의도하는 효과를 높인다. 하지만 인간성에 반하는 그런 교육은 외부 환경이 바뀌면 그 효능도 사라진다. 일본 제국은, “영미귀축(英美鬼畜)에 항복해 종노릇 하느니, 일억 신민이 벚꽃처럼 피었다가 일제히 옥쇄(玉碎)하자”라는 사고를 주입했다. 그런데 미군이 진주한 후 옥쇄는커녕 모두 미군에 아부하며 잘 따랐다.

일본인 특유의 위선과 이중성이 잘 드러난 사건이다. 일본 군국주의, 중국공산당, 김씨 왕조 등은 인간성을 짓밟고, 지배 집단의 폭압 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악마 집단들이다. 도덕성이나 품위 같은 고상한 가치는 그들의 관심 사항도 아니다.

백성에게 야비한 수법을 쓰는 악마적 영혼이 좌파에만 있던 것도 아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 전두환의 신군부가 무고한 시민을 때리고, 고문하고, 죽이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독재자의 손발 노릇에 충실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던 사법 시녀들은 아직 아무도 반성할 줄을 모른다. 그런 이들이 요즘 때를 만났다고 생각하는지, 입에 발린 말 몇 마디로 변신을 꾀하는 게 뻔뻔스럽다.

그들의 특권이 위축될 상황에 부닥쳐서, 보수언론과 힘을 합쳐 앙탈하는 모습은 가관이다. “내가 누리는 기득권은 죽어도 놓지 못한다.”라는 패악질의 또 다른 모습 같다.

1960~’98년에 진전을 본 한국의 민주혁명은 죽음도 겁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몸을 내던져 쌓은 금자탑이다. 그것은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민권승리였다. 뭐든 잘난 척하는 일인들은 권위에 맹종하고 예속하기 좋아하는 천성 때문에, 꿈꾸기도 어려운 신기루일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어느 분이, “한국인들이 잿더미 위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은 치하할 만하다. 그러나 남북 대치 상황에서 민주정치까지 쟁취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것은 경제적 성공보다 더 어렵고 고차원적인 일인데, 그들은 동시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위업을 이루었다.”라는 술회를 남겼다.

군부 내 하나회 회원들이 주동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그들은, 1980년 5월 반항하던 광주 시민 수백 명을 학살하고, 정권도 장악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 장교집단을 쫓아내는 것으로 민주혁명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니, 이로써 32년간 지속한 군부 통치는 끝났다.

나랏돈 수천억 원씩을 훔쳐서 정계의 물주가 되어, 국회의원 10~20여 명씩을 거느린 일본식 금권정치를 획책한 전 씨. 노 씨를 반란죄로 구속기소 했다. 거산(巨山)의 그 결단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함께 한국이 선진 사회로 발돋움하게 반석을 놓은 변혁이었다.

아직도 껌딱지 같이 눌어붙은 기득권 세력의 거센 저항을 보노라면, 그게 혁명적 변화를 부를 이유가 될 것 같다. 묵은 풍속, 관습, 방법 등을 모두 바꾸어 참신한 사회로 거듭나던 <1848년 프랑스 2월혁명>처럼, 한국은 그간 소홀했던 과제들을 척결해야 할 사회 변혁의 단계에 와있는 것 같다.

출생에서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특혜와 기득권을 누리던 윤석열이 대선 후보로 뽑혔다. 그가 홍준표를 이긴 데는 <국민의힘> 당원들이 민심을 거슬러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게 주효했다.

취직해서 결혼하고 싶고, 내 집도 갖고 싶은 20~30세대가 활기찬 꿈을 품을 수 있어야 사회에 생기가 돌고 희망도 생긴다. 청년층의 기대는 홍준표 쪽으로 기울었지만, 감정적으로 한풀이한 듯한 노장층의 결집 세를 당하지 못했다.

공권력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사법의 잣대를 구부려서 사사롭게 휘둘러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에 그악스럽게 날을 세우던 검찰총장 윤석열의 “공정”, “정의”란 잣대는, 진작 본인과 처가와 동료 검사들의 수많은 비리 의혹엔 한없이 자애로웠다.

사법 영역의 일꾼들이 법 집행을 함에 서로 장단을 맞춘 듯 자의적(恣意的)인 이중성으로 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직무유기요, 국가사회를 좀먹는 고약한 장난이다.

어쨌건 이번 대선은 이재명과 윤석열의 대결로 좁혀졌다. 산적한 과제 앞에서 유권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서민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후보가 누굴까? 내뱉은 말을 자주 바꾸던, 믿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구였나? 실용성 있는 공약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후보가 누군가? 그들의 행적을 찬찬히 뜯어보며 판단할 일이다.

혁명이 반드시 총소리를 내고 피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심히 불평등하여, 특권층만 계속 혜택을 누리게 한다면, 그런 편협한 제도는 부숴버려야 한다. 독버섯 같은 비리나 불합리한 현상을 고쳐서 공정한 환경을 만들자는 운동이 바로 사회혁명이다.

홉스의 표현같이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뿐”이면, 그건 지옥이다. 화합과 상생의 평화를 꿈꾸기는 불가능한 곳이다. “한국의 빈부격차,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데, 출산율은 가장 낮다.”라는 현상은 위의 잘못들을 방치한 결과로 생긴 부끄러운 지표들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살맛을 느끼게 개선하여 “헬 조선”이란 비아냥이 나올 수 없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똑같이 1인 1표의 권리를 보장한 기초 위에 펼치는 화합과 상생의 한마당이다. 피 흘려 이룬 민주정치도 눈을 부릅뜨고 지키지 않으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이 나온다. 옛 노랫말같이 “자유 평화 평등 행복이 가득한 희망의 나라”로 다 함께 가려한다면, 지금 이성적(理性的)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인 듯하다. (202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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