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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사선(死線)에 서서!!-레이 강(스카보로)
gigo

 

 

 죽음은 선사시대 이전 고대 때부터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 같다. 피라미드, 고인돌, 그리고 종교의 천당과 극락들이 죽음과 관계있고, 셰익스피어의 명문도 죽느냐 사느냐 죽음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런데 년 전에 친지들 모임에서 나는 “장례식을 생략하고 관도 목재소에서 관목을 구입하여 제작 사용하면 좋겠다”고 하니 너무한 자기 비하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야기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월남전이 한창 과열되어 사단급 전투부대인 맹호부대가 파병된 것이 이 해였다. 따라서 정국도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이에 대비해 최초로 DMZ 방책작업이 계획된 것이 그 해 여름이었다. 우리 부대에서 A, C, 2개 중대가 차출되어 A 중대장이 지휘하고, C 중대의 소위인 내가 보좌관으로 작전에 투입되었다.


동부전선 900고지에 임시숙소를 마련한 후 곧 작업을 개시해 여러 고지를 넘고 원시림을 지나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였다. 능선을 따라 일렬횡대로 북면 경사로 중간까지 내려가 나무를 벌목하여 X자형 방책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지뢰다' 하는 병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시 '중대 철수' 하고 외쳐 모두 위로 올라가는데 A 중대 쪽에서 큰 죽음이 나면서 한 병사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 대퇴부가 절단되는 치명상을 당하였다. 


부상자를 업고 모두 능선 위로 올라왔다. 경험과 전례가 없던 작업이라 위생병이나 들것, 응급 장비도 없이 왔으므로 우선 임시 들것을 만들어 6명이 들고 나의 인솔하에 급히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회생불능의 치명상이어서 우리는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정신없이 떠나려는 순간 마지막 절규를 하는데 너무 처절하여 이 지면에 쓸 수가 없고, 그것이 더 큰 충격을 주어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하고 혼미한 상태로 숙소에 도착하였다. 


운반병 6명은 도착 즉시 사라져 버리고 나와 주검만이 남겨졌다. 그의 마지막, 이 순간! 형제 부모의 절실한 보살핌이 필요하고 위생과 보호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이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되어 굳건히 곁에 서서 지켜주지만 아무 응급기구도 장비도 없어서 방임 그대로 놔둔 채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괴로운 상황에 처해졌다. 혼자 서 있으니 많은 상념과 후회가 엄습했다. 


사전 현장을 확인 정찰도 안하고 무리하게 지뢰밭으로 투입시켜 이 젊고 사랑스러운 젊은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속삭이며 깊은 슬픔에 잠기지만 망자는 아무 말도 없다. 산천도 침묵하여 새소리 하나 없다. 구름도 무심하다던가 봉우리에 머물다 말없이 떠나간다. 


한참 후 그 봉우리에서 본대의 병사들이 누구 하나 말없이 수백 명이 몰려 내려온다. 그런데 중대장이 오자마자 분리된 다리를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인제 여기 와서 뒤에 천천히 오면서 수거해 올 것이지 그러나 군대는 이유가 없는 법, 위급 시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 


병사 4명을 차출하여 다시 그곳을 가는데 왜 그리 멀고 힘 드는지. 현장에 도착하여 대검으로 흙 표면을 긁어 지뢰를 확인하며 그 부근까지 갔으나 수풀이 우거지고 기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지형이 너무 광활하고 험하여 임무 수행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 후 중위로 진급하여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소위 때 지원하였으나 소식이 없어 중위 진급 후 직접 육본에 가서 지원하니 일주일 만에 명령이 떨어졌다. 사령부 부근에 배치되어 부대 앞을 지날 때 저 멀리 야산 능선 아래 아전화장장이 설치되어 붉은 화염이 간혹 보인다. 


그 옆에는 사단 각지에서 수집(군대용어)된 전사자들이 일렬로 놓여져 있다. 멀리 외국에 나와 싸우다 총탄에 맞아 몸부림치다 죽어서 여기 비닐포대에 싸여 일렬로 누워있다. 그 푸르고 활기차고 명랑했던 그대들, 명령에 그렇게 순종하고 착실했던 그대들, 고향 부모형제를 항상 생각하며 어려운 임무를 묵묵히 견뎌온 그대들.


그대들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의 부모님을 남겨두고 그대들은 왜? 비닐 부대에 싸여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눈물 없이 그 앞을 지나칠 수 없다. 젊은 위관시절부터 이런 경험을 해서 그런지 이곳 캐나다의 장례식장에서 광채가 번쩍이며 잘 조각된 관을 볼 때 정서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앞에 언급한 것이 나의 요구다. 과연 너무한 자기 비하인가? 물론 친지들의 정서는 나와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유언으로나 엄격한 요구는 할 수 없고 다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장례사에게 문의한 일도 없으므로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제 인생의 긴 여정을 지나 여러 번 사선을 넘고 어느덧 내 인생의 마지막 삶, 마지막 사선에 서서 먼저 간 전우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누워있는 국군묘지를 둘러본다. 


이곳이 나의 안식처, 이제 권위주의와 계급의식을 버리고 그들의 맨 뒤, 한쪽 구석에 그들과 같은 규모의 터와 비석을 세워 그들과 항상 함께하며 한강 상류에서 매일 아침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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