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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에 핀 꽃들의 순간/이남수/문협회원
gigo

 

 


2000년 6월 25일 나는 아이들과 서울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남편이 학업을 마치고 4년 만에 귀국이었다. IMF 직후의 서울 분위기는 아주 우울해 보였다 그나마 배워온 영어를 테스트하고 싶어서. 영어 가이드 시험을 보았다. 다섯 과목에서 한국사, 지리 영어 등의 과목은 그리 힘들지 않았기에 비교적 쉽게 시험에 통과하였다. 결혼 전 내 꿈은 외국인에게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겐 두 가지 코드가 복합적으로 내 삶을 관통하고 왔던 것 같다. 역사와 영어 그리고 문화, 최종적으로 “배워서 남 주자”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자원봉사로 수원화성에서 외국인 안내를 하였다. 마침, 2002년 한일 양국 공동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불교계에서는 외국인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을 위하여 템플 스테이 영어 자원봉사자를 많이 모집하였다.
학부 1학년 겨울에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5박6일 불교 수련회를 다녀온 기억이 참 좋았다.

 

그때는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직지사에 도착해 일주문을 들어서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담한 맞배지붕 너머로 기와지붕이 산능선처럼 이어지고 그 낮은 담장 위로 내리는 흰 눈의 춤추는 낙하, 장관이었다. 수련회 끝날 즈음에 우린 3,000배에 도전했다. 거의 밤중 내내 2,800배 가까이 갔다. 나중엔 내 무릎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 학부 4년 내내 답사 여행을 가면 절 답사는 빠질 수가 없었다.
특별히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의 아름다움과 늦가을 산사에서의 호젓함을 사랑했었다. 그리고 서산 마애 삼존불의 그 천진한 미소는 나를 웃게 하였다.
그래서 곧바로 자원봉사자에 지원하였다. 1박 2일 연수를 통해 충남 수덕사에서 불교 기본과 발우 공양, 다도 수업, 그리고 연등 만들기 등을 배웠다. 당시 나는 수원에 살고 있어서 수원 용주사 봉사자로 배정을 받았다. 수원 용주사는 조선의 정조 임금이 수원 화성을 건설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 사도 세자의 위패를 옮기고 모신 곳이다. 수원 용주사는 크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소수 인원이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면 일일 코스, 아니면 1박 2일 코스로 진행하였다.

 

어느 주말 캐나다에서 온 세 명의 여자들이 용주사 템플스테이를 왔다. 절하는 법을 배우고, 예불에 참석하고 발우공양을 하였다. 그 과정이 이 사람들에겐 좀 낯설고 어색하게 보였던 것 같았다. 딱 먹을 만큼만 덜어가되, 공양도 침묵 가운데 명상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마지막 남은 김치 한 점으로 물을 부어 자기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어야 했다. 
”우리는 각자 개인이되 모든 것이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 한 톨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서양인에게 좌식문화는 쉽지 않은 자세이고 더불어 108배를 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도전으로 보였다. 무릎을 꿇고 나를 온전히 바닥에 엎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천주교 사제 서품식에서 온전히 자신을 낮추는 의미로 바닥에 자신을 엎드리는 절대 순명과 닮았을까… 그들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살아오면서 가장 참된 지혜는 겸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 40대 중반의 제니는 최근에 이혼하고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에 서울에 왔고 우연히 템플 스테이를 신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요한 마음으로 녹차를 마시면서 그녀의 힘든 상황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스님은 그녀의 아픔에 조용히 위로를 보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고통을 조금씩 녹여냈다. 해 질 무렵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해가는 모습이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난히 고즈넉한 절 풍경 속에 가끔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그 평화가 그녀의 닫힌 마음을 자기도 모르게 열게 한 것 같았다. 여행 중 만난 낯선 이에게 우린 어쩌면 좀 더 쉽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 것 같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한번은 우리말로 템플스테이 체험을 안내하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의 고등학교 아이들에겐 낯설고 신기한 체험이었다. 그래도 비교적 아이들은 절하기 108배 하기, 발우공양, 다도 체험, 그리고 연등 만들기도 쭉 재밌게 참여하였다. 저녁 예불시간에 불타오르는 노을이 대웅전 주변을 물들이면서, 그 순간 반야심경 독송과 함께 목탁 소리만이 이어지는 그곳에 묘한 적막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진공상태이다.
천년고도 경주로 답사여행을 갔을 때, 감포 감은사지 가던 가을날의 황금 들판을 걷다가 느낀 그런 기분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가족여행으로 아이들과 함께 간 경주 석굴암에서 마주친 엄정하면서도 강렬한 부처님의 그 눈과 마주쳤을 때, 그 순간이고 찰나 같았다. 그때 직지사에서 받았던 수계식에서 주어진 법명은 대각심이었다. 

 

‘글쎄 40년이 넘어 지난 내 마음엔 큰 깨달음이 있었을까’ 나에게 물어본다. 요즘 내 귀밑과 이마에는 흰머리가 올라오고 있다. 삶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인제야 나에게 말한다. 이세상에 영원한 고통도 즐거움도 없다, 다만 변한다는 단 하나의 법칙만이 영원하다고, 일체가 제행무상이라는 것임을. 
세상은 지구촌화되고, 서로의 세상은 경계가 무너지면서 가상의 세계까지 넘나들고 있다.
복잡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며칠간의 산사체험은 자성의 시간을 제공하는 피난처이며 깊은 산속 옹달샘같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눈 내리는 전나무 숲속을 거닐면서, 모든 길이 끊어진 그 고요한 적요를 맛보고 싶다. 내가 가끔 느꼈던 진공상태의, 고요속에 핀 내 인생의 꽃같은 순간들이다. 찰나에서 영원으로 향하는 시간여행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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