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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on
프랭크의 수석과 목조각 공예와 모니카의 케나다의 삶을 주제로 살아 나가는 생활상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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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올 학생들과 보금자리 찾기
evergreenon

유학 올 학생들과 우리의 보금자리를 위해서 그 동안 한국 에서는 유학을 올 조카와 남편 친구의 딸들이 유학 수속을 밟고 있었다. 서류를 완전히 제출하고 난 뒤에 어느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학생들 수속이 다 끝나 학교도 결정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실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이 이제는 지리도 밝고 주위에 터를 닦아 놓아 편해서 가능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지역으로 학생들 유학할 수 있는 학교를 알아보려 했지만 이 지역은 신 도시로서 유학생을 유치하지 않는다는 시 교육위원회의 정책이 있어서 이곳으로는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이젠트에 부탁을 하여 그곳에서 알아보고 난 뒤 주소를 주면 그곳으로 찾아가 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연락을 받고 남편과 나 그리고 두 아이와 같이 유학생을 받겠다는 승인을 한 학교를 답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주위에 집을 사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찾아가는 장소가 처음이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너무나 먼 것처럼 느껴졌고 또 행여 고속도로 상에서 학교와 가까운 출구를 놓칠까 봐 바짝 긴장 되어 있었다. 다행히 고속도로와 학교가 근접해 있어 쉽게 찾을 수가 있었고 우리는 학교 주변을 둘러보고 몇 번이고 주택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다운타운으로 이어지는 원웨이인 메인 스트리트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들어갔다. 건물들은 미시사가와 비교해 보면 이곳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여서 모든 빌딩이 구 건물이고 집들도 낡고 험했다. 우리가 살아 가야할 주택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학교 주변을 맴돌아 보았다. 이곳 역시 너무 낡은 집에다가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그런 집들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구 동성으로 이곳에 집을 사느니 미시사가에 그냥 살겠단다. 그리고 아이들 수송만 해 주면 되지 우리 모두가 낡고 험한 이곳으로 올 필요가 무엇인가 하고 반문을 하는 것이 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남편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나중에야 이야기 했다. 남편의 꿈은 한국에 있을 때도 전원주택을 지어 농촌에 살고 싶은 게 그의 꿈이 였고 실지 농촌에 농장을 퇴직 후를 대비해서 사두었었다.. 우리는 간단한 점심을 끝내고 그곳에서 그 지역 지도를 한 장 산후 무작정 15-20분 정도 거리의 외곽 지 쪽으로 둘러 보자고 했다. 우리가 살고있는 내륙 지역은 정말 산을 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이들은 언덕처럼 생긴 것도 산이라고 한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온타리오 호수를 끼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그야말로 이곳은 산이다. 이산이 병풍처럼 이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산을 중심으로 밑은 다운타운 이고 위는 Upper Mountain으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지도를 따라 유학 올 학생들을 중심으로 무조건 Upper Mountain쪽으로 갔고 이 거리 저 거리를 헤 짚고 다녔다. 그런데 Upper Mountain 을 경계로 해서 집의 외모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용모가 많은 차이가 났었다. 다운타운 보다 무언가 달라 보이긴 했다. 너무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는 서녘에 지려 하고 있었다. 이때 그런대로 내 시야에 그럴듯한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시간이 너무 된 것 같아 나는 이정표만 보고 거리 이름을 메모지에 표기해 두곤 오늘은 이만 철수 하자고 제의를 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지역을 맨 마지막으로 떠날 때 메모해둔 거리 명을 달라고 해서 주었다. 남편은 거리 명을 검색엔진에 입력해 주변을 찾고 있었고 나는 한인 전화 번호부를 빌려다가 거리 명이 개제되어 있는 주소의 전화 번호를 모두 적었다. 전화로 대충 물어본 그곳의 집 값은 미시사가 신도시 보다 약간 싸고 전화로 알아본 주변 지역에는 좋은 학교도 많이 있다는 희망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이곳 큰 몰에 가면 Rental News지나 주택구입에 관한 책들이 일주 단위로 무료로 배포하고 있어 그것을 이용하면 편리하다는 것이 였다. 다음날 아침 우리 온 가족은 우리의 제2의 보금자리를 찾으러 다시 나갔다. 무엇 보다도 우리가 어제 가본 방향 근방의 큰 몰에서 주택에 관한 무료 주간지를 구입하고 아이들의 권유로 오늘은 어제 가보지 않은 쪽의 노선을 택해 찾아 보기로 했다. 유학 올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를 출발해서 더듬어 내려 간 길은 Wilson Street를 끼고 있는 Ancaster라는 자그마하고 소박한 도시였다. Ancaster를 향하는 그 길은 오르막 길로서 좌측에는 높은 산을 끼고 반대편은 도시 귀퉁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전경이 한국의 고향길 의 모퉁이를 도는 듯한 그런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양의 산세는 카나다 내륙 지방에서는 사실 그렇게 흔치 않았다. 무엇 보다도 맘에 드는 거리였다. 남편도 동의 하였다. 오늘도 이렇게 해서 이 주변 지역이면 좋겠다는 가족들의 찬성으로 우리는 저녁을 해결하고는 곧바로 오늘 구입해온 주택 주간 정보지를 이용해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Ancaster지역에 For Sale이라고 나온 곳은 모두 표시 하면서 집 선택의 문을 좁혀 나갔다. 맘에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남편이 그곳을 마크를 하고 집에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는 부분들을 한번 더 확인을 한 후 E-mail주소로 주택 구입에 대한 관심을 내용으로 E-mail을 발송했다. 다음날 부동산 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자 부동산 업자 였다.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가 아주 큰 회사로서 많은 정보를 갖고있기 때문에 우선 만나서 얘기 하자는 것이었다. 약속한 장소에 우리 온 가족은 다시 나갔다. 그리고 부동산 브로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 5분 후 나타난 부동산 브로커는 30대를 바라보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분 이였다. 자신은 고향이 이곳이고 우리가 어제 알아 두었던 거리명의 이름을 딴 Mohawk College 부동산 학과를 졸업하여 이곳에 근무한다고 했다. 우리 차를 큰 몰의 주차장에 주차 해두고 자신의 차로 움직이자는 제의를 하기에 우리는 쾌히 승낙을 하고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 한분 을 소개 시켜 주길래 우리는 인사를 했다. 겉으로 보기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꼭 마음씨 좋은 시골집 할아버지 같이 생기셨다. 여자 부동산 브로커는 관심 있는 집과 지역 등을 상세히 묻고 나더니만 이걸 바탕으로 컴퓨터로 출력하라고 나이가 드신 분에게 자료를 넘겨 주었다. 그런지 얼마 후에 약 20여장의 집에 대한 정보가 게재되어 있는 문서들이 출력되었다. 그러고는 여자 부동산의 설명으로 이분이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집을 구경하도록 도와 주실 분이시라는 말을 남겼다. 나중에 우리는 이분의 차 안에서 그분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받았다. 자신은 그 여자분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월급을 받는다고 하였다. 아울러 여자 부동산 브로크 이분은 나이가 젊은데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는 최고로 인기도 있고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집을 사게 된다면 Lucky라는 것이다. 그리고 흥정도 정말 잘 하시는 분이라서 믿음성이 간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집을 보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간 사인 펜으로 출력 표에 가위 표시를 하면서 다음 집, 또 다음 집 이렇게 하루종일 우리는 집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다음 집 보러 가는 중간에 눈요기를 하러 Millinaire집은 어떤 것인가를 잠시 들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정말 환상적인 집들을 보았다. 그 주변으로는 PGA가 열렸다는 골프장 주변으로서 영화 속에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약 5분 거리로 마지막으로 보여 주는 집이 지금 내가 이 수기를 쓰고 있는 집이 될 줄이야. 제일 먼저 이 집을 남편이 제일 좋아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을 별로 싫지는 아니했지만 내 머리 속에는 아직 영주권을 받을지도 불확실 하고 또 비자 연장이 몇 개월이 나올지도 불 투명한 속에서 솔직히 집이 너무 크고 부담 서러웠다. 원래 내 생각으로는 뒤뜰에 야채 조금 심을 수 있는 공간과 방이 4개 또 화장실이 2개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라고 혼자 예상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 집 뒤뜰에 나무로 잘 짜여진 텃밭을 마음에 제일 들어 하고 또 지하실은 In law (법적으로 사람이 살수 있도록 정식적으로 정부나 시에 신고한 지하 주거지) 상태로 올 세라믹으로 바닥 마감 처리를 해두었고 부엌, 거실,화장실,방, 창고 ,손님 접대용 Bar 등 완벽에 한 가정이 완벽에 가깝도록 살기 편하게 꾸며 놓은 그곳이 다음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이 집이 마음에 있다고 운을 띄우고 이미 정해져 있는 값에 얼마나 디스카운트가 가능한가에 대해 물었다. 그때 그는 다시 이 집을 사려는 데 얼마를 예상하고 있는가라고 오히려 물어 왔다. 우리는 이 가격이 좀 비싼 것 같다고 말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가격을 제시했다. 사실 그는 가격 흥정의 결정권이 없다. 그래도 남편은 이런 외국에서 집을 구하는 게 처음인 것을 말하고 결정권은 없지만 통상 어느 정도를 디스카운트 해야 성사가 되는지에 대해 귀띔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정식적으로 팔려고 하는 가격에서 완전히 다운을 시켜 실지 나에게는 버거운 가격이 였기 때문에 성사 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가격을 적어 넣기로 남편 몰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때가 1999년 12월 20일이었다.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되돌아 와서 서류를 완전히 작성하고 보증금으로 1,000불을 예탁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싸인 을 마치니 여자 부동산 브로커의 얘기로 내일 오후 4시쯤에 집으로 연락을 해주겠다는 말과 자신이 최선을 다해 흥정을 해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토론토에 있는 아빠 친구와 약속이 되어있어. 그 집을 향했다. 점심을 맛나게 먹고 난후 4시까지 돌아가야 한다고 서두러니 무슨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컴퓨터로 인쇄된 집을 보여 주면서 설명을 했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도 물론 되었다. 은근히 나의 마음속은 친구분 이 집이 비싸다고 사지 말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욱 정직하지 않을까. 그런데 뜻밖에 집으로 서둘러 가서 전화를 받아 보라는 것이다. 그의 얘기로는 만약 그 값에 그런 집을 구한다면 정말 잘 구입하고 거의 공짜로 줍는 것이다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나보다 이곳에서 몇 년 오래 산 사람이고 경험이 있으니 신빙성도 있었다. 그 순간 나도 귀가 솔깃해 졌다. 거의 시간을 맞춰 집에 와서 옷을 갈아 입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의 전화 받는 내용에서 나는 부동산 브로커임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든 채로 나에게 물었다. 몇 천불 더 쓰고 이 집을 살 용의가 없느냐고 물었다. 집 소유주들의 말에 의하자면 같은 집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은 지하실을 꾸미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었다는 거였다. 사실 우리가 보았을 때 여느 세라믹과는 달리 이태리 두꺼운 세라믹 이였으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사실 친구분 댁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차 안에서 만약 몇 천불을 더 쓰더라도 살수 있으면 사겠다는 그런 의향을 교환 했었다. 사실 이는 우리 부부의 각본이라면 각본일 수가 있었다. 왜냐면 본 소유주가 내놓은 가격에서 얼토당토 않게 많이 낮춰서 가격을 적어 놓았기 때문에 몇 천불 정도는 쉽게 추가할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남편은 분명하게 부동산 브로커의 살 의향에 대한 질문에 Yes라고 답변을 했다. 그러면 내일 다시 나와서 서류를 다시 작성을 해서 흥정을 하러 또 가야 하며 몇 천불 더 쓰고 이게 당신들의 집이 된다는 100% 보장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회사지만 여러 브로커가 얽혀 있어 어떤 고객을 유치해서 빨리 성사를 시키면 그 걸로서 그들은 끝을 내기 때문에 한시가 급하다고 내일 반드시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또한 바로 다음날이 크리스마스가 이어지는 연휴 시작 점이고 연말 연시가 겹치기 때문에 상당히 바빠지고 중간에 갭이 많이 생긴다는 추가 설명 이였다. 그리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사고 져 하는 이 집을 팔아 주겠다던 부동산 회사와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것이 임박 했었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신들이 팔아 주지 못했기 때문에 타 회사로 넘어 가든지 아니면 그에 대한 돌아오는 이익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적어지게 된다는 것은 나중에야 듣고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남편과 둘이서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하여 새로 흥정할 가격 밑에 다시 싸인 을 하고 부동산 브로커는 즉시 그 서류를 갖고 그들과 협상에 나섰다. 우리는 집에서 결과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게 우리집이 되려면 어떻게 하든 되는 것일 게고 우리는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바로 전날 우리는 부동산 사무실로부터 “ 축하 합니다. 두분 깨서는 200 Meadow Brook Dr, Ancaster Ontario. L9G 4P5의 집주인이 되셨습니다 “ 라는 연락 이였다. 남편은 그 동안 고마웠다고 부동산 브로커에게 정중히 얘기를 하고 언제 식사를 함께 하자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