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추천업소
추천업소 선택:
추천업소 그룹 리스트
  • 식품ㆍ음식점ㆍ쇼핑1
  • 부동산ㆍ건축ㆍ생활2
  • 미용ㆍ건강ㆍ의료3
  • 자동차ㆍ수리ㆍ운송4
  • 관광ㆍ하숙ㆍ스포츠5
  • 이민ㆍ유학ㆍ학교6
  • 금융ㆍ보험ㆍ모기지7
  • 컴퓨터ㆍ인터넷ㆍ전화8
  • 오락ㆍ유흥ㆍPC방9
  • 법률ㆍ회계ㆍ번역10
  • 꽃ㆍ결혼ㆍ사진11
  • 예술ㆍ광고ㆍ인쇄12
  • 도매ㆍ무역ㆍ장비13
  • 종교ㆍ언론ㆍ단체14
donyoo
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유동환
CFP, DY & Partners Inc. 대표
416-391-3793 ext.201
Fax: 416-391-5639
[email protected]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54 전체: 184,259 )
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16)-잔 타일러(2)
donyoo

 

자칭 대통령 취임(1841)

미 헌법 2조 1항에 의하면 대통령 유고나 불능시에 대통령직무를 부통령에게 유임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법은 1967년 2월 10일 수정헌법 25조가 실효될 때까지 실행되었다. 수정헌법에 의해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고 신임 대통령은 차기 대선까지 상원의 동의를 받고 부통령을 임명하게 되어있다.

1841년 4월 5일 새벽에 해리슨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접수한 타일러는 4월 6일 새벽 4시에 워싱턴에 자리잡은 호텔에 숙박하며 대통령직에 선서를 하고 해리슨 내각을 소집하여 자신의 직함을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데니얼 웹스터 국무장관은 헌법에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대통령임무를 유임 받을 수 있지만 대통령직함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직함 사용은 내각의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타일러는 웹스터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는 내각은 사임하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내각은 그의 결정을 따랐다.

4월 9일 타일러는 취임선언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6월 1일 미 의회는 그가 10대 대통령직함으로 임무수행을 하는 사안에 동의했다. 자칭 대통령이 된 타일러는 미 대통령역사에서 유고로 직함을 갖고 임무수행을 한 9명의 부통령 중 첫 케이스를 만들었다. 9번째 리처드 닉슨 대통령 사임으로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는 수정헌법 25조에 의한 결정이었다.

 

변심, 독선, 탄핵소추(1841-1843)

연방은행을 복귀시킨다는 약속을 하고 위그당 후보에 올라 자칭 대통령자리에 오른 타일러는 헨리 클레이가 주도하는 미연방은행 복귀 제정안을 두번씩이나 거부했다.

1841년 9월 11일 클레이의 영향력으로 위그당 내각은 웹스터를 제외하고 전원 사임을 했고, 9월 13일 위그당은 당 배반과 독선을 일삼는 타일러를 당에서 제명 처분했다.

1841년 연방정부의 적자는 1,100만 달러가 되었고, 각 주정부의 적자는 연방 도움없이 계속 늘어가고 있었다. 타일러는 관세를 높이지 않고 연방토지를 공매하여 연방수입을 올렸으나 은행의 은행역할을 하는 연방은행 없이 정부의 적자를 해결할 수 없었다.

타일러가 위그당이 제안하는 관세인상을 두 번씩이나 거부하자 위그당은 1842년 7월 하원에서 타일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1843년 1월 127대 83으로 탄핵소추안은 기각되었다. 이로 인해 타일러는 미 대통령 역사에서 첫 번째로 탄해소추를 받은 대통령이 되었다.

 

텍사스주 영입(1843-1845)

1836년 3월 2일 텍사스공화국은 멕시코공화국으로부터 독립되었고 텍사스 거주 미 개척인들을 중심으로 텍사스를 미국에 영입시키는 제안을 했으나 미 상원에 의해 기각 당했다.

애덤스, 벤 뷰런, 클레이를 중심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위그당 정치인들은 텍사스주가 영입되면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주가 증가된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잭슨과 포크를 중심으로 노예제도를 선호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은 텍사스를 영입할 경우 멕시코가 영국과 연합하여 미국과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추측하여 영입을 반대했다.

1837년 경제공황으로 텍사스 경제가 침체되어 샘 휴스턴 텍사스 대통령은 영국의 중재 하에 멕시코와 분쟁을 방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1843년 이 기회를 엿본 타일러는 텍사스 영입을 계획했다. 그는 텍사스 영입의 공로를 이용하여 1844년 대선에 재선을 꿈꾸고 있었다.

1844년 4월 타일러는 물밑작업을 통해 휴스턴 정부와 텍사스 영입조약을 만들어 6월 미 상원에 제출했으나 상원은 위그당을 중심으로 기각했다. 이로 인해 텍사스 영입제안은 1844년 대선에 화두가 되었다.

무소속의 타일러는 민주당에 입당을 원했으나 거절당해 대통령후보에서 탈락되었고 텍사스 영입을 선거공약으로 세운 민주당의 제임스 포크가 12월 4일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선이 끝난 12월 타일러는 상-하원 다수결로 텍사스 영입을 통과시키고 1845년 3월 1일 텍사스 영입조약에 서명, 3월 3일 하원에 통보하고 4일 11대 포크 대통령 취임식 일에 대통령 임기를 마쳤다.

타일러 공로에 의해 텍사스는 1845년 12월 29일 미 합중국의 29번째 주로 영입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