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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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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 (56)-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8)(The Founding Fathers of United States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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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프랭클린(1)

 

 

 

 


 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 중 프랭클린은 워싱턴 다음 2인자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아버지가 워싱턴이라면  26년의 나이 차이를 고려하여 프랭클린은  미국의 할아버지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본다.


프랭클린의 생활신조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 13항목의 생활신조를 지키고 매일 반성 점검한다고 했다.


1.절제   2.필요한 말 외에는 침묵  3.질서 4.결정 5. 검소 6. 근면  7.진지함 8.공정 9.중용
10.청결 11.침착 12.순박 13.겸손


 그의 생활신조는 230여 년이 지난 현세에도 필요한 생활처신이라 할 수 있다. 


인쇄및 신문발행


 23세의 프랭클린은 휴 메레디스와  1729년 인쇄사업을 하며 펜실바니아 가제트 신문을  입수 편집하여 펜실바니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신문으로 만들었다. 1732년  푸어 리차드 알마낙 연보를  편집하여 매년 1만 명의 부수를 발행했다. 그의 사업은 번창하여  갑부가 되었다. 1753년 영국 식민지 우체국장이 되었고 독립선언 후 미연합국의 우체국장이 되었다. 


 그의 신문은  뉴욕까지 우편으로 배달되었고 13주까지 통신망이 펼쳐지고  사업은 계속 커져갔다. 특히 연보를 통해 프랭클린은 격언 속담 등  인용구를 재치있게 편집하여 미국민들을 계몽했다.  150페이지 책 한권 분량의 인용구는 현세에도 개인처세는 물론 애국심과 단결심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국민들의 민도를 만들어주고 있다. 

 

부로 가는길

 
 프랭클린은 1732년 발행한 ’WAY TO WEALTH’ 책자를 통해 1. 근면 2. 확신 3. 검소 4. 자선 5.경험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여 누구든지 부를 축적할수 있다고 하였고 후세 미국 부호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신탁을 통해 자선단체를 만드는 기틀을 만들어 미국식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게 하였다.


피뢰침 외 생활품 발명


 프랭클린은 1741년 열효율을 높여주는 프랭클린 난로를 발명하여 개척민들에게 겨울의 포근함을 안겨주었다. 


 그는1749년 피뢰침을 연구 실험하여 1753년 실험 결과를 신문에 게재하였다. 그후 1760년 피뢰침을 건물에 설치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인류의 건축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1784년에는 이중촛점 안경을 발명하여 노안과 근시안의 안경을 하나의 렌즈로 만들었다.


그는 특허를 내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다고 유리 하모니카 등 발명품을 계속 내어 놓았다. 그리고 인쇄사업으로 부자가 되어 돈에 애착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번창하는 인쇄사업을 동업자에게 맡기고 발명과 정치 특히 외교에 몰두했다.


인지세 반대운동


 세계적으로 알려진 프랭클린은11년간 영국에 머물면서 영국의회를 설득하여 영국 인지세의 부당함을 설득시켰고 영국과 신생 미국의 화해와 유대관계로 미국민을 영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다 조오지 3세의 고집을 막을 길이 없어 1775년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 상원에 보고했다.


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를 초안한 토마스 제퍼슨을 도운 프랭클린은 1776년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5인의 한 사람으로 역사를 장식했다. 영국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영국의회의 본질을 잘 파악한 프랭클린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주 프랑스 특사


 1776년 프랑스 특사로 파견된 프랭클린은 온화하고  천재적인 재치능력으로 프랑스 국민들을 사로잡고 특히 프랑스 과학자들과  귀족부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 그들은 헤어스타일도 털모자 쓴 프랭클린의 머리를 모방할 정도였다. 귀족부인들과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어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가들과 접촉을 하여 그들을  설득시켰고 라파옛과 함께 루이 16세를 설득하여 프랭클린은 프랑스의 무기원조에 이어 프랑스와 동맹을 맺게 하여 1781년 워싱턴 총사령관이 승리를 이끌게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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