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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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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 - 사도 도마
daekim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내가 그의 손의 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자국에 넣으며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손을 보고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너는 나를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0: 24-29)

 

어느 기관이나 단체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들 중에도 회의적이며 부정적인 각도에서 보고 듣는 바를 판단하는 제자가 있었으니 그가 곧 도마였다.


도마는 빌립, 나다니엘,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마찬가지로 갈릴리 지방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도마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에 대하여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에는 열두 제자의 명단에 도마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그의 행적에 관해 네 번에 걸쳐 언급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였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4일 정도 걸리는 곳에 계실 때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는다. 나사로는 예루살렘에서 오리쯤 떨어진 작은 마을 베다니에 살았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로서 예수님은 그들 셋을 무척 사랑하셨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그들 집에 머무시곤 하셨다. 하지만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에 접하시고도 예수님은 즉시 베다니로 가시지 않고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신 후 나사로가 병들어 누워있는 베다니로 가려 하시자 제자들의 놀라움은 컸다.


예수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 선언하시자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것은 죽기를 자청하는 것과 같았다. 예수께서 그곳에 다시 가시면 그 자신은 물론 제자들도 죽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런 까닭에 제자들은 베다니로 가시겠다는 예수님을 이구동성으로 만류한 것이다.

 

그때 도마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0:16)고 나섰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 앞장서는 것은 베드로의 몫인데 도마가 돌연히 일어나서 예수님과 함께 가서 죽자고 외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항상 의심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도마가 아닌 사려 깊고, 용감하며, 충성스런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두 번째로 도마에 대하여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후 그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실 때였다.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갈 수 없는 곳으로 가시겠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예수님만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른 제자들이었기에 예수께서 가시고 나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고 그들을 위로 하신 후 그가 아버지의 집으로 먼저 가시는 것은 그들이 있을 거처를 마련하기 위함이라 설명하시며 “이제는 내가 가는 길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으신다.


이때도 도마가 선뜻 나서서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하고 반문한다. 이 물음에 답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였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하늘나라로 향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귀한 진리를 우리가 알게 된 것은 항상 남의 눈치만 살피던 도마의 직설적인 질문 때문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도마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다. 불현듯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신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못 박히셨던 손과 창에 찔리셨던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이 그때 거기 없었던 도마에게 예수께서 오셨었다고 전해주자 그는 자기가 직접 예수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주께서 살아나셨음을 믿을 수 없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가 “의심 많은 도마”라 불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마가 그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동료들의 말을 못 믿어서도 아니었고, 믿음이 약해서도 아니었다. 그 당시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도마가 한 말은 정상인의 합리적인 의심의 표현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후 제자들을 다시 찾으셨을 때 자리에 앉아있는 도마에게 “네 손으로 내 손을 만져보고 옆구리에도 넣어보라.” 말씀하신다. 도마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 아뢴다. 도마가 한 이 신앙고백은 “주는 그리시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다음으로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간주된다.


요한복음에 도마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 디베랴 호수로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을 찾으셨을 때다. 그날 새벽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게 하여 153마리나 되는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후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분부하셨다.


그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함과 동시에 베드로를 그가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임하여야 할 복음전선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신 것이다. 그때 도마는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 중의 하나였을 뿐 특별히 담당한 역할은 없었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도마는 팔레스타인 북부에 위치한 Osroene에 갔다고 한다. 유세비우스가 Osroened의 수도 Edessad에서 발견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있었다.


주후 13년부터 50년까지 그 나라를 통치한 Abgar왕이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 받던 중 유대 땅에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는 예수라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서신을 보내 부디 오셔서 그를 병마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예수님이 서신을 갖고 온 사신에게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바를 보면서도 나를 믿지 않는데 나를 보지도 않고 믿는 네게 복이 있을지어다. 네게로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했는데 나는 유대에서 사명을 마친 후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 분에게로 가서 내 제자 중 하나를 네게 보내 네 병을 낫게 하고 너와 그곳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겠노라.”(Eusebius: "The History of the Church from Christ to Constantine", P. 67)


유세비우스의 계속된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동료 사도 유다를 보내 Abgar왕의 병을 고쳐주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유다와 도마 두 사도가 Osroene와 인근 국가인 Armenia에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한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그 지역과 인접한 동방교회와 앗시리아 교회사에 도마가 초기의 주교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주후 200년경에 쓰인 “도마행전”(The Acts of Thomas)에는 도마가 인도까지 가서 선교한 것으로 되어있다. 도마와 함께 인도까지 동행한 나다니엘과 유다는 인도에 남고 도마는 거기서 중국 북경까지 가서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인도로 돌아온 도마는 수많은 그곳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며 선교에 전념했다는 것이 유세비우스의 증언이다.


주후 62년부터 69년까지 도마는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간에 걸쳐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많은 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바울 못지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 도마와 그의 일행은 1만7,000명 이상을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며, 나병환자 230명을 낫게 했고, 250명 맹인의 눈을 뜨게 했으며, 220명의 중풍환자들을 치료해주었으며, 죽은 사람을 살린 수만도 19명에 달했다고 한다. (A. Matthius Mundadan: "Sixteen Century Traditions of St. Thomas Christians", PP. 61-63)


인도에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며 사도 도마는 주후 72년 7월 3일 어느 동굴에서 기도하던 중 기독교가 힌두교를 능가하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의 창에 찔려 중상을 입고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근처 교회까지 가서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드린 후 숨졌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전해주는 도마의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 베풀어 주신 자비와 은총을 감사합니다. 이제 나의 영혼을 받아주옵소서.”였다.


“의심 많은 도마”로 알려진 도마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굳건한 믿음 위에 서서 평생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다 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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